[향토문화] 14~15세기경 집단 묘지 가능성.. 금성리 고려시대분묘발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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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14~15세기경 집단 묘지 가능성.. 금성리 고려시대분묘발견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8.2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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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유력계층의 묘일 가능성이 있고, 하원동 탐라왕자묘에서 발굴된 유적 및 유물과 비슷

금성리 고려시대분묘발견지

 

위치 ; 애월읍 금성리 금성교회 북쪽 마을안길. 금성리 버스정류소 서쪽 금성5길로 들어서서 약 200m 지점 오른쪽 골목.
시대 ; 미상(고려시대 추정)
유형 ; 유물산포지

금성리_유물인골(천지일보)

 

금성리_선사유골출토지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오수관 매설 공사현장에서 고려말~조선초기로 추정되는 유해들과 당시 유물들이 대거 발견었다.

금성리 오수관 매설공사현장인 금성교회 인근에서 터파기 공사 중 포클레인이 오수관을 매설하기 위해 모래땅을 약 2m 깊이로 길게 파는 작업 중에 사람 뼈로 추정되는 물체가 노출됐다.

공사 인부와 경찰 관계자 등이 구덩이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모래를 제거하자 골반 뼈가 드러났다. 이어 두개골과 갈비뼈, 쇄골 등 인체를 이루는 뼈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1m의 깊이에서 땅속에서 고려시대 말기 유물인 청자매병 1점, 청자대접 2접, 청자접시 2점, 청자소호 1점, 청동사발 2점, 청동숟가락 1점, 조선초기 분청접시 2점 등이 출토됐다. 유물들은 매우 양호한 상태다.


이와 함께 백골 시신 1구가 발견되는 등 최근 이 지역에서 총 4구의 백골 시신이 잇따라 발견됐다. 경찰은 30대 여성과 성별미상 아이를 포함 3명 이상의 유골이라고 판단했다.

시는 이 지역이 14~15세기경 집단 묘지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20일과 3월27일에도 같은 공사장에서 백골상태의 유해가 1구씩 발굴됐다. 이번에 발견된 유해는 모두 6구로 두개골·턱뼈·치아·갈비뼈 등이며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매장돼 있었다.


제주고고학연구소는 유물들은 유골과 함께 묻힌 부장품으로 14세기 당시 금성현 및 곽지현 유력계층의 묘일 개연성이 있다고 밝히고, 공사장에서 유해와 유물이 함께 출토된 점과 2×7m 넓이에 유해 4구가 매장된 점 등을 감안하면 14~15세기 집단묘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지역에 당시 금성현 및 곽지현이 있었는데 14세기 그 마을의 유력계층의 묘일 가능성이 있고, 하원동 탐라왕자묘에서 발굴된 유적 및 유물과 비슷하다.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은 매장지역이 모래습지여서 유골 등의 보존상태가 우수하다고 말했으나, 일각에선 유골의 부식 등을 감안, 수백 년 전 매장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번 유해와 유적들이 발굴전문가가 아닌 공사업체와 경찰에 발견돼 꺼내지면서 정확한 매장형태나 방법, 발굴지점 등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유물 발굴과 유골 DNA조사 후 ‘여말선초 유력계층 묘’의 진위여부가 판명될 예정이다.

유력계층의 묘일 경우 제주인 생활상과 신체 변화 등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재)제주고고학연구소 수장고에 보관 중이며 유골은 제주대학교 법의학교실에 안치돼 있다.


1995년 금성리와 곽지리 경계구간의 도로확장공사 중 3~4세기 석축과 함께 유골 2구가 발견된 적이 있다. 도로 확장 공사과정에서 돌로 쌓아 만든 석축과 함께 엄마가 아이를 업은 자세로 묻힌 유골이 발견되어 행정당국이 마을주변 탐문결과를 토대로 4.3 때 희생된 주민인 것 같다고 결론지어 공동묘지에 매장했다.(제주의소리 110504, 뉴시스 110504, 제민일보 110505, 제주일보 110505, 110509)


제주고고학연구소가 애월읍 금성리 하수관 설치 공사장 인근 유골 발견지에 대해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고려말에서 조선초 시대 때 사용되던 도자기류 등이 발굴되는 등 이 시대에 해당하는 집단 묘역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골 발견 당시에는 발견된 인골이 너무나 완벽하게 남아있어 제주 4·3 당시 학살터라는 이견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됐었다. 발굴팀은 유골이 완벽에 가깝게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모래지역인 사구에 매장되면서 인골 보존에 적합한 환경조건(알카리성 토양조건)을 갖춤으로써 매우 양호하게 인골이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발굴된 인골은 모두 15구로, 모래층을 파고 들어간 토광묘(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유해를 장치하는 묘)에서 온전한 인골 11구를 확인했고, 하수관거 공사과정에서 훼손된 인골 4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장품이 확인된 묘는 4개로 분청사기접시, 분청사기인화승엽문접시, 백자대접, 청동숟가락, 유리구슬 3점, 분청사기인화국화문대접, 몽고병 등이 확인됐으며, 이들 묘의 인골과 부장유물은 기존 하수관거 공사과정에서 발견된 4구 이상의 인골, 유물과 서로 접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묘역에 부장된 도자기류의 사용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대략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전반에 해당된다.


발굴팀은 하수관거 정비사업부지내 분묘 유적 10여기는 일정하게 같은 방향을 두고 나란히 조성된 집단묘역이며, 부장유물이 2~3점식 고르게 부장된 점, 피장자의 연령대가 영아·유아·청년·장년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일대 사구층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해당하는 집단묘역이라고 설명했다.(제주일보 111102, 제주도민일보 111102)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제주고고학연구소(소장 강창화)는 2011년 하수관 설치 공사 중에 인골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436-11번지 일원 200㎡를 지난 2012년 7월30일 이래 발굴조사한 결과 땅을 파고 시신을 묻는 토광묘로 판단되는 14기의 무덤과 석곽묘로 추정되는 분묘 1기를 확인하고, 이들 내부에서 15개체에 이르는 인골을 수습했다고 18일 말했다. 한라일보에서는 ‘분묘 내부에서 21개체의 인골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21개체 중 3개체는 성인, 나머지는 청소년, 어린이로 추정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9-10월에 실시한 긴급 발굴조사에서는 무덤 12기와 11구에 이르는 인골, 그리고 분청사기 대접 및 접시, 청동수저 등의 유물을 확인했다. 출토 자기를 볼 때 이들 무덤은 고려말 조선초(14-16세기)에 집중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올해 조사까지 금성리 고분군에서는 총 26개체에 이르는 인골을 찾았으며, 이 중에서도 성별 구분이 가능한 것은 여성이 5개체, 남성 3개체로 나타났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조사단이 김재현 동아대 교수(고고미술사학 전공)에게 의뢰해 실시한 인골 분석 결과 놀라운 점은 연령대별로 성인은 5개체에 불과한 반면 영아, 유아, 어린이는 13개체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올해 조사에 국한할 때 15개체 인골 중 성인은 3개체이며 나머지 12개체는 영ㆍ유아나 어린이로 추정됐다.


인골의 머리가 놓인 방향은 크게 북동쪽과 동쪽, 남동쪽의 세 가지로 구분됐지만 14호 무덤은 북쪽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덤 출토 유물로는 도자기류와 청동제 비녀, 청동숟가락, 골제 장신구 등이 있으며, 4호분에서는 팔찌로 추정되는 구슬 9개, 청자대접 등 다량의 부장유물도 출토됐다. 유아묘로 추정되는 1호 분묘에서는 특이하게도 너비 11㎝ 안팎인 백합조개 4점이 포갠 상태로 시신 오른쪽 허리 부근에서 발견됐다.


조사단은 "올해 조사한 묘역은 지난해 금성리 436번지 일대에서 발굴한 묘역과 같은 공동묘지로 판단되며 만든 시기는 14-16세기를 중심으로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재현 교수는 지난 15일 열린 발굴조사 1차 자문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려말~조선초에 해당하는 다량의 인골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매장분묘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어른, 어린이, 유아, 영아 등의 인골이 집단 매장된 공동묘역으로 확인된 점은 형질학적·유전자학(DAN) 분석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검출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한라일보, 제주의소리 121218)
《작성 120405, 보완 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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