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왜구 방어 진 설치..고산1리 차귀진성동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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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왜구 방어 진 설치..고산1리 차귀진성동문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9.07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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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은 동문 서문 2개소가 있었고, 성 안에는 3채의 건물이 있었다

고산1리 차귀진성동문터
 

遮歸鎭城東門址
위위치 ; 한경면 고산1리 2236-2.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진성)

고산1리_차귀진동문터

 


차귀진은 효종3년(1652) 봄에 이원진 목사가 앞에 차귀도가 있으므로 이를 의지하여 침략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진을 설치할 것을 아뢰어 설치하였다.

여수(旅帥, 약 125명의 병력)를 두었는데, 병력은 조방장 1명, 치총 2명, 성정군 132명으로 총 135명이었다. 숙종1년(1675)에 여수를 파하고 조방장(助防將)을 두었다.

숙종32년(1706)에 송정규(宋廷奎) 목사는 이를 만호로 승격시켰으나, 숙종42년(1716) 황구하(黃龜河) 어사가 형편을 살펴보고 만호를 파하고 다시 조방장을 환원하였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성문은 동문 서문 2개소가 있었고, 성 안에는 3채의 건물이 있었다.(제주의 방어유적 109~110쪽)
《작성 1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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