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내리 펭세빌레불턱
위치 ; 고내리 서쪽 해안도로 형원수산 북쪽 환해장성 옆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생산기술유적(어로유적)
제주해녀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문헌을 살펴보면 1105년(고려 숙종10) 탐라군의 구당사로 부임한 윤동균이 ‘해녀들의 나체조업을 금지한다’는 금지령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전부터 해녀가 존재했음이 분명하다.(뉴스쉐어 120511)
‘불턱’은 바닷가 바람을 가릴 위치에 돌담으로 둘러 만든 해녀의 대기처이자 휴식공간이다. 옷을 갈아입거나 ‘잠수-질’이 끝나면 꽁꽁 얼어붙은 몸을 ‘불-턱’ 화기에 풀어 녹이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상군(최고급 잠수)으로부터 잠수질 기법과 예절, 바다에 대한 지식 등을 배우는 교습소이다.
물질 경험이 풍부하고 노장층 해녀 중 기능이 가장 뛰어난 해녀를 ‘상군(上軍)’이라 하며 ‘상군-불턱’은 그들만이 사용한다.
원로 잠수를 ‘대상군(大上軍)’이라 불러 그녀의 말은 잘 지키고 규율을 스스로 강요한다.
‘군(軍)’이란 해녀의 위계질서를 군대처럼 엄격히 다룬다는 함의(含意)로 본다.(제주일보 110531)
환해장성을 의지하여 겹담을 쌓아 장방형으로 만들었으며 불턱 안에는 물질도구, 옷, 땔감 등을 올려놓았던 팡돌이 가지런히 남아 있다.
이 불턱은 고내리의 다른 두 불턱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시멘트 자국이 없이 순전히 돌로만 겹담으로 쌓아 만들어졌다. 입구는 북서쪽으로 나 있다.
1960년대초에 만들어 1970년대 후반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요즘은 현대식 시설(해녀탈의장)을 이용하고 있어 재래식 불턱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작성 1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