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권의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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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권의 법제화
  • 김종덕
  • 승인 2013.10.2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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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사)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새 정부 들어 4대악 근절이 강조되면서 식품관련 범죄의 적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보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식품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정책은 반길만하다.

하지만 새 정부는 이러한 정책 보다 더 근본적인 식량권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기초한 국민의 식량권을 존중·보호·충족시키는데 힘써야 한다.

식량권이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또 식량권 보장이 국가의 의무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관련법 등에 식량권이 실체적 권리로 명시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국가에 의한 식량보장이 시혜적 차원이 아닌 의무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고 국민들은 식량권에 기초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다.

국가가 식량권을 법에 명시하는 것은 국가의 식량권 보장에 대한 의지로도 볼 수 있다. 법률에 식량권에 관한 권리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을 때 재판가능성이 확보될 실질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법에 식량권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는 식량권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헌법에 식량권이 명시되어 있는 국가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포함해서 40개국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식량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헌법 제34조 1항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에서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1966년에 제안되고 1976년 발효되면서 식량권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UN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권리에 대한 국제 규약’ 11조 1, 2항에 1990년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약속을 통해 간접적으로 국민들의 식량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국내 법률 차원에서는 보건의료기본법과 국민건강증진법 등에서 건강 및 영양에 관한 국민의 권리 및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식량권 보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식량권을 헌법이나 관련법에서 기본권으로 명시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식량보장과 관련된 국가의 책임 있는 정책과 조치를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가 식량권을 법에 명시하지 않게 되면, 국가의 식량보장 정책이 가족과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이 된다.

또 국가의 식량보장 정책이 응급적 혹은 시혜적 성격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리하여 국가가 식량빈곤의 증대, 식량 불평등의 심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또 식량권이 법에 명시되지 않으면, 국민들은 국가에 대해 식량권 보장을 적극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나 지자체에 대해 식량권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식량보장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자급률이 낮은 가운데 세계시장에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의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식량보장이 우려가 된다.

식량과 관련된 세계시장의 여건 그리고 식량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를 감안할 때 국가는 국민의 식량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국민들은 식량권이 기본적 인권임을 자각하고, 국가가 식량권을 법으로 보장하도록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헌법 또는 여타 관련법에서 국민의 식량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또 국가 및 지자체 등이 법에서 정한 식량권 보장을 하지 않을 때의 법적 조치까지 적시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인 식량권 보장을 위해 식량권을 헌법이나 관련법에 명시하기 위한 식량권의 법제화 논의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종덕 교수는


▲ 김종덕 (사)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객원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글과 강의, 인터뷰 등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알리고 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슬로푸드 운동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으로 한국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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