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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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
  • 김종덕
  • 승인 2013.10.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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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학생들의 식생활과 식사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주일동안 먹은 음식을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과제물을 내준 적이 있다. 일부 학생들은 끼니별로 자신이 먹은 음식을 목록으로 적어냈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어 있어 많은 학생들이 사진으로 찍어 제출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나 사진에 나타난 식사의 내용을 보면, 매우 놀라울 정도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루에 두 끼 정도 식사를 하고, 대부분 먹는 것도 변변치 않다. 제대로 된 음식보다는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고 있다.

학생들의 부실한 식생활을 보면 한편으로 안타깝지만, 다른 한편으로 걱정이 된다. 자식 벌되는 학생들이 음식이 몸과 정신,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모르고 식사를 대충하는 것이 안타깝다.

종종 부모님들께 이 사실을 알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학생들의 부실한 식사가 걱정이 되는 것은 지금 당장도 그렇지만, 저렇게 부실하게 먹은 학생들이 앞으로 몇 년 있으면 아기 아빠와 엄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우리의 미래 세대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이러한 식생활을 빠듯한 용돈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좋은 것을 먹기에는 용돈도 넉넉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용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학생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된다.

다른 범주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학생들의 경우도 음식과 식사에 대해 낮은 순위를 두고 있다. 주어진 용돈으로 다른 비용을 먼저 쓰고, 나머지를 음식에 지출하는 식이다. 또 집에 먹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이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된 이유를 여러 가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정식사의 감소나 음식교육의 부재도 한 몫을 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당연히 아침식사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또 가정이나 중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음식교육이 실시되고 있지 않아 학생들은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 또 조리방법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음식을 경시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어려서부터 들어온 삶의 기본요소 세 가지를 지칭하는 의식주라는 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의식주 표현에 익숙해지면서 학생들의 사고에 음식보다 옷(외관)을 더 중시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그것이 음식과 식사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의식주라는 표현이 고착화된 것은 유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의,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입는 것이 먹는 것보다 우선하는 언어습관을 가져왔고, 그것이 한자 문화권에서 의식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7세기 사상가 관중의 저서에 '의식족이지영욕(衣食足而知榮辱)',즉 '입고 먹는 것이 충족돼야 명예와 수치를 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입는 것이 먹는 것보다 앞에 나온다.

현대 중국어에선 '식의주'가 '의식주'보다 더 자주 쓰인다. 북한은 김일성 전 주석의 지시로 1984년부터 '의식주' 대신 '식의주'를 쓰고 있다. 중국과 북한 모두 식량공급이 어려움을 겪은 사회의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원래 중국과 북한에서도 의식주라고 썼는데 식량문제가 다급해지자 의식주를 식의주로 바꾸어 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식주를 식의주로 표현을 바꾸어 쓰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식주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가운데 음식에 대한 경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므로 식의주라는 표현을 통해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처럼 음식을 소홀히 하는 왜곡된 소비 유형을 개선하려면,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고,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가정에서 식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학교에서 일찍부터 음식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일상생활에서 옷보다 음식이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의식주를 식의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해야 한다.

음식은 옷과는 차원이 다르다. 음식과 청바지는 결코 동급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 누구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명을 지속할 수 없다. 음식은 생명에 관련된 것이다. 음식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청바지는 생명과 관련이 없다. 청바지를 꼭 입어야 하는 상황에서 청바지를 입지 못하면 그것은 불편한 수준에 머문다. 청바지를 입지 못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요즈음 학생들은 브랜드가 있는 청바지를 사기 위해 음식에 지출하는 돈을 아낀다.

언어는 사고와 행동의 집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식의주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은 의식주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에 비해 음식을 옷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음식을 대충 먹지 않고, 식사를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음식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된다. 용어가 갖는 이러한 영향 을 고려하여 이제 의식주를 식의주로 바꾸어 부르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히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어린아이들에 대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종덕 교수는


   
▲ 김종덕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객원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글과 강의, 인터뷰 등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알리고 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슬로푸드 운동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으로 한국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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