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지역식량체계
상태바
희망의 지역식량체계
  • 김종덕
  • 승인 2013.10.21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덕(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이 칼럼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생명의 기반인 우리의 농업과 먹을거리가 위기에 처해 있다.

먹을거리를 공급해온 우리나라 농업이 저가의 수입농산물이 판을 치는 가운데 영농을 통한 재생산이 되지 않자 점점 더 비중이 줄어들고 있고, 젊은이들이 영농계승을 기피하면서 농업의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식량자급율이 가장 낮은 상태에서 농업의 비중저하가 갖는 위험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외환위기 시기에 낮은 식량자급율로 인해 큰 희생을 치룬바 있다. 수입 먹을거리가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각종 인스턴트 및 냉동식품 등의 소비가 늘어나는 가운데, 식중독을 포함한 식원성 질병이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개인 및 사회의 의료비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가 위기라는 사실도 모르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현대 먹을거리의 위기는 이른바 세계식량체계와 관련이 있다. 세계식량체계는 세계적 수준에서 먹을거리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세계식량체계는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 산업, 생산자, 소비자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에서 주요 행위자는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 산업이고,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식량체계의 객체에 불과하다.

이 식량체계에서는 경쟁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외부에 비용을 전가하면서 싼 식량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는 생산자를 떠나 수천 킬로미터, 수만 킬로미터 이동된다.

각 국가 간에 푸드 스왑 즉 불필요한 먹을거리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생산되어 공급되는 먹을거리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보다는 곡물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 등의 이익이 우선 고려된다. 세계식량체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단절되어 있다.

생산자는 자기가 생산하는 농산물을 누가 섭취하는지에 대해 알 수 없다. 소비자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했는지 모르는 채, 상품이 된 먹을거리를 구매하여 섭취한다.

따라서 양자 간에 지원과 배려가 이루어질 수 없다. 먹을거리의 위기를 야기하는 세계식량체계는 그 체계의 유지를 위해 엄청난 숫자의 전문가를 동원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광고와 홍보 전략을 사용하고, 체계의 유지를 위해 엄청난 정치자금을 대고, 심지어는 비판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먹을거리 비방법 등을 제정하여 이용한다.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세계식량체계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기에 따라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세계식량체계의 객체인 생산자와 소비자자 서로 떨어져 있어 세계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에 의해 지배되고 이용된다.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곡물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하게 되면, 우리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새로운 식량체계를 가질 수 있다. 세계식량체계와 비교했을 때 지역식량체계는 희망 그 자체이다.

지역식량체계는 생산자, 소비자, 지역사회, 지역경제, 환경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역식량체계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으며, 지역차원에서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가 이루어지는 식량체계이다.

지역식량체계는 생산자가 먹을거리를 지역 소비자를 위해 생산하고, 소비자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구입하는 식량체계이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먹을거리의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진다. 지역의 종자, 토양, 온도, 강수량 등에 의해 작물이 선정되며, 생산도 지역 소비자들의 필요를 반영해서 이루어진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식량체계의 주체이고, 중요한 행위자다. 지역식량체계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농기업, 식품 산업, 곡물 메이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생산과 소비활동을 할 수 있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어, 생산자는 소비자의 요구나 필요를 반영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와 생산방식을 아는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을 구입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물리적·사회적 거리가 짧아 생산자에게 먹을거리 판매대금중 보다 많은 몫이 돌아가고, 소비자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식량체계를 통제할 수 있고, 양자 간에 배려와 지원을 할 수 있다.

지역식량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상생이 이루어지는 식량체계다. 지역식량체계는 먹을거리 판매대금이 지역에서 순환되기 때문에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경제에 이롭게 작용한다. 또 농산물의 이동거리를 줄이고, 상호 배려하는 가운데 농약 등이 적게 사용됨으로써 지구 환경에도 이롭게 작용한다.

지역식량체계가 잘 운용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산물을 매개로 만나는 농민시장, 소비자가 생산자의 위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지원농업, 지역먹을거리를 이용한 기관급식, 각종 직거래 등이 자리하게 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통제하는 식량체계가 자리할 수 있다.

이러한 희망의 식량체계가 자리할 수 있도록,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 지자체, 시민단체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김종덕 교수는


   
▲ 김종덕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객원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글과 강의, 인터뷰 등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알리고 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슬로푸드 운동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으로 한국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