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7)"..'잃어버린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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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7)"..'잃어버린 길'을..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6.12.19 00: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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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입성기)외돌개-월평마을,해군기지가 가로막은 아름다움

 

 7코스 시작점이 바뀌었다

궁금증이 풀렸다.


지난주(12월10일) 깜쪽같이 사라졌던 6코스 스탬프포스트는 이날 제주올레사무국에서 대대적인 코스개편에 따라 다른 곳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아마 쇠소깍으로 들어오는 다리쪽으로 옮겨진 것 같다.

그리고 6코스 마지막을 힘들게 했던 삼매봉 코스는 6코스가 아닌 시공원과 함께 7코스에 포함돼 시작점이 제주올레사무국이 있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베이스캠프)로 옮겨져 있었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베이스캠프)..7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또한 바다쪽과 시내쪽으로, A와 B코스로 나눠졌던 코스도 하나로 통합돼 있었다.

특히 15일부터 AI(조류독감)로 인해 올레21코스는 일시 폐쇄됐고 2코스, 13코스는 일시 우회 조치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내가 걸어야 할 코스가 제외된 게 다행이었다.

일단 나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로 가서 7코스 출발스탬프를 찍고 외돌개로 향했다.
3km라고 쓰여진 이 구간은 지난주 코스가 개편되기 전에 이미 걸었기 때문이다.

제주시에서 정확히 08시30분에 차를 몰기 시작해 12월17(토요일)일 외돌개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레7코스를 걷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경이었다.

올레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로 알려진 제주올레7코스.
예전에 모임에서 이미 두어번 걸었던 곳이지만 맨 처음 올레길을 걸어봤던 코스라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는 올레를 잘 모를 때였고 이날은 올레를 다시 새롭게 느끼는 걸음이기에 이 코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고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어느 집 벽에 낙서하듯 7코스라 쓰여진 그 상징적인 그림은 사라지고 없었고 연두색 페인트만 칠해져 있었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다.

 

7코스의 시작은 바다위에 떠있는 섭섬과 어우러진 그 바다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7코스는 그 인기를 나타내듯 외돌개구간에 들어서자  오전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했다.

외돌개가 보이는 초입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사진 찍어 드릴까요?”라고 말한다,
"올레꾼이냐"고 물었더니 "한번 걷고자 해서 걷는 중"이라는 한 중년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서로 사진을 나눠 찍고 걷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서곤 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곳에서 4명의 아주머니들이 번갈아 사진을 찍으려고 해서 내가 단체사진을  몇장 눌러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외돌개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까지 가는 동안 이날도 중국인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이 코스는 처음부터 중간지점까지는 섭섬과 문섬이 코스를 돌때마다 숨바꼭질 하듯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카메라를 유혹했다.

바다에 홀로 서 있는 범섬이 멀리 보이는 이곳 바다경관은 사실 그 어떤 곳보다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드디어 외돌개가 제대로 보이는 지점에 도달하자 제대로된 명승이 나타났다.

외로운 바위섬, 외돌개는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외돌개

외돌개는 높이 20m 폭은 7-10m의 돌기둥이지만 검고 구멍이 많은 현무암에 비해 회색이며 구멍이 작고조밀한 조면안산암(천지연 조면안산암)으로 이뤄져 있다.

이 천지연 조면암은 서귀포 남성리 천지연 폭포 일대 서귀포항 입구 등에 분포하며 지금으로부터 12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외돌개는 고려말 최영 장군이 원나라세력(목호)을 물리칠 때 범섬으로 달아난 잔여 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바위를 장군모습으로 변장시켜 물리쳤다고 하여 장군바위로도 불린다.

일명 '장군석' 또는 '할망바위' 로 불리기도 한다.

뭍과 떨어져 바다 가운데 외롭게 서있다 하여 외돌개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된 할머니의 애절한 전설이 깃들어 있어 `할망바위`라고도 불린다.

바위끝에 사람의 머리처럼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고 그 왼편으로 할머니의 이마와 깊고 슬픈 눈망울과 콧등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고 쩍 벌어진 입모양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외치며 찾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외돌개 바로 밑에는 물위에 떠있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이는 할머니가 돌로 변한 후 할아버지의 시신이 떠올라 돌이 된것이라 한다.

뒤로는 선녀바위라는 기암절벽이 돌이 되어버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안스러운듯 병풍처럼 펼쳐서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설화에 의하면 고려말 최영 장군이 제주도를 강점했던 목호(牧胡)의 난을 토벌할 때 외돌개 뒤에 있는 범섬이 최후의 격전장 이었는데 전술상 이 외돌개를 장대한 장수로 치장시켜 놓았다. 그러자 목호들이 이를 대장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여 모두 자결했다는 두개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제주웰컴센터)

국가지정문화재로 명승 79호다.
외돌개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경관중의 경관이다.

이 외돌개 지점만 지나면 부산한 길은 사라지고 오롯한 올레길이 이어진다.

 

지난주에 올랐던 삼매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니 경관지역을 온통 차지하고 선 호텔인지 팬션지대가 가득 서 있다.

나는 그 답답한 모습을 바라보기보다는 바다를 향해 걸었다.
외롭게 홀로 바다에 떠 있는 범섬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덜 황량하기 때문이다.

그 길을 나오니 주차장이다. 이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 시내쪽을 조금 걷다보니 바다쪽으로 다시 길을 안내한다.


속골유원지가 안내된 곳으로 따라 내려갔다.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니 그곳에는 대륜동에서 만들어놓은 스토리우체통이 앙징맞게 놓여 있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를 넣어주세요’라고 쓰여진 안내판 아래쪽에는 가족애, 미락원, 우정, 지고지순, 대의, 보내지 못한 편지, 등의 제목의 편지함이 놓여 있었다.


속골은 계곡이 바다까지 이어져 마을주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곳이라고 안내돼 있다.
물이 참 고왔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수 없는 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이제 숲속길과 바다올레길이 연이어 이어진다.
자갈밭 올레길을 걷는데 단체 올레객들이 뒤를 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은 유독 단체로 걷는 올레꾼이 많았다.
학생단체 모임단체 수십명이 올레길을 줄지어 걷는 모습 또한 보기에 참 좋다.

 법환리 좀녀(해녀)마을

조금 걸으니 이제 법환리마을로 들어섰다.
해녀상이 보이고 문화관광부가 지난 2003년 4월에 선정한 문화.역사마을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서귀포좀녀(해녀)마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도내 최남단 해안촌으로 현재 제주도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어촌으로 좀녀들의 삶과 전통생활문화가 생생하게 보존.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걷다 보니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최영장군전승비가 세워져 있어 흥미로웠다.
1374년 목호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최영장군을 삼도도통사로삼아 토벌을 담당케 하여 마지막 격전을 벌였다는 표지석이 세워진 것이다.

그런 법환리마을을 지나 해안올레를 걷는데 주황색 조끼에 일본말로 잔뜩 쓰여진 옷을 입고 범섬을 모델로 작은 돌을 아주 가까이서 찍고 있는 외국인을 만났다.

 

 세르비아에서 온 자전거여행객

나는 잠시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했더니 포즈를 취해 주었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일본말은 조금 한다고 하여 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에서 부산-인천-제주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세르비아사람이었다.
“제주가 아주 작다”고 말한 그는 “날씨가 매우 좋다”며 본인은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며 월요일에 유럽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잠시 긴장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명함을 하나 주고 “혹시 뭔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고는 헤어졌다.

그는 바다올레가 이어진 길 입구에서 다시 만났는데..
"자전거는 갈 수 없고 걷는 사람만 갈 수 있다"며 돌아 나오고 있었다.

바다올레로 들어서니 자전거는 역시 끌고 갈 수가 없는 곳이긴 했다.

자전거 세계여행 3만km 주파가 목표인 듯 한 이 세르비아인에게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는 했지만 헤어지고 난후 이름과 나이를 묻는 것을 잊어 조금 아쉬웠다.

 

이어진 바다올레의 주인공은 단연 범섬..
이제 멀리 해군기지가 보이기 시작하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또 단체로 올레를 걷는 이들과 만났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저 섬이 서건도예요"라는 소리에 썩은섬(죽은 고래를 발견했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었던 서건도를 지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건도

물이 들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수 있는 곳이라는 서건도..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한달에 10차례에 걸쳐 앞바다가 갈라지는 제주판 '모세의 기적'을 나타내는 곳이다.


서귀포시 서건도(일명 써근섬)로 알려진 유명한 섬이다.이 바다 갈라짐 현상은 보름이나 그믐에 규모가 특히 크며 5월 26일, 28일, 9월 7일, 11월 5일, 8일, 12월 3일, 7일의 사리기간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다가 갈라지게 되면 좌우 10m 이상 넓어진 갯벌이 드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서건도를 왕래하면서 신비감을 맛볼 수 있다.

서건도는 수중화산으로 섬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갖는데 고고유물까지 발굴된 적이 있어 앞으로 테마관광지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면적은 13,367㎡이며, 육지와의 거리는 300m이고, 제주월드컵경기장 인근해안(강정동)에 있다.


바닷물이 갈라지면 서귀포 해안에서 걸어서 들어갈수 있는 섬으로도 유명, 해안에서 섬까지 걸어가는 동안 조개와 낙지 등을 잡는 재미로 체험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서건도는 기원전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파편과 동물뼈, 주거흔적 등이 발견돼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이곳에서 보니 멀리 해군기지가 눈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군기지는 조그만 경비정 한척이 보일 뿐..한가한 모습이었지만..
가까이 가면 또 어떤 모습일까.

조금 걸어가니 남은 거리가 7km라는 표시가 나무에 붙어 있었다.

드디어 강정앞바다다.

이곳은 바닷길로 걷다가 악근천으로 올라가는 길이 계곡을 따라 나 있었는데..해군기지가 있어서인지  예전처럼 아름답지가 않았다.


악근천이 흐르는 곳에서는 아예 길이 막혀 있었다.
물이 차서 가지 못하는 것인지 출입을 막은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길은 바다가 아닌 마을 윗쪽을 향해 걷도록 안내되고 있었다.
건너편 눈앞에 중간스탬프지점이 보이는데..

 

악근천
   

악근천은 가내천,소가래천, 악근천 악근내로 불리웠던 곳으로 크기가 큰내(강정천)에 비해 작지만 큰 내에 버금간다 하여 버금가는 또는 다음을 가리키는 아끈을 내의 이름으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악근천은 바로옆 강정천만큼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은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사계절 내내 흘러 내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은어와 천연기념물인 원앙새의 서식지가 있는 청정수역이다.

 바닷가우체국

 바다를 바라보며..

이곳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 다리를 건너니  다시 바다로 이어진 길로  이어진다.

두번째 중간스탬프를 찍는 곳.. 9km지점인 바닷가우체국에 도착했다.
강정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올레꾼과 탐방객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듯 보이는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름답기만한 바다를 벗삼아 먹는 식사는 참 여유롭기만 하다.

그곳에서 한가한 점심을 먹고 다시 강정천을 따라 숲속길을 올랐다.
은어서식지로 유명한 곳.

강정천은 제주도의 일반하천과 달리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른다.
서귀포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려 여름이면 즐겨 찾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

이같은 강정천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강정천 다리에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수도 없이 걸려 있었다.

강정천

 삼거리식당

길거리마다 해군기지 반대현수막과 투쟁을 밝히는 구호 투성이다.
해군기지반대투쟁본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아직도 진행형인 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 잠시 사진을 찍고 해군기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옆길을 따라 걸었다.
‘공사중 우회하시오’라는 무시무시한 안내판 옆에는 ‘생명평화 강정마을’이라는 마을표식이 초라하게 안내돼 있었다.

벌써 아파트형 관사가 많이 들어서 있어 예전에 봤던 강정마을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공사가 진행중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엄청난 규모의 공사판이 된 이곳은 대도시가 하나 들어선 모습이었다.

 
 

작은 골목길에 있는 삼거리식당을 지난 큰 길로 나오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불당이 있었고 구럼비바위를 바라보던 강정포구는 그저 초라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도무지 상상이 안될 정도로 강정은 해군을 위한 대도시개발의 천국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서 나는 이 7코스의 길을 ‘잃어버린 길’로 정하기로 했다.

 

올레가 왜 그곳으로 연결돼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마 성산지역에 제2공항이 들어서게 되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상이 될 정도였다.(이 내용은 본지에  "해군기지 가 보니..제2공항 보인다"는 제목으로 환경포커스 기사로 달리 보도했다)

해군기지가 있는 곳은 절대로 올레가 될 수 없는 길이다.


씁쓸한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해군기지를 지나 바다올레길로 들어서니 멀리 군산과 산방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이 가까워진 것이다.
바다로 이어진 돌밭길을 따라 걷다가 밖으로 나오니 반갑게도 3km가 남았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이제 1시간 정도면 월평마을에 도착하리라.

 

 

조금 더 걸어가니 차는 못가게 막고 걷는 이들에게만 허용된 바닷길이 나왔다.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이고 조용한 바다는 평화를 이야기하듯 고요하다.
옆으로 돌아가니 아름다운 월평포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가에는 수십명의 낚시꾼들이 낚시에 여념이 없었다.
곱기만 한 길..
드디어 월평포구다.
아주 작은 포구지만 센 곳..
그 풍광이 장난이 아니다.

 월평포구

13km지점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한편의 소풍을 가는 섬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끌고 소풍가듯 작은 섬들이 점점이 나들이를 하는 곳이다.


나는 월평포구의 이 작은 바다에 떠 있는 암석들을 가장 좋아한다.
가족들의 착한 대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느낌은 이 지점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숨어있는 비경들..
바다가 참 평온한 날이었다.
걷고 또 걷고..찍고 또 찍고..


작은 섬..이같은 바다의 여를 바라보며 자연의 경이를 배운다.
작은 숲속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종점이 가까워졌다.


마을안으로 들어섰다.
직진을 하니 마지막 종점인 송이슈퍼에 다다랐다.
3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시간은 오후 2시58분경이었다.

 7코스 종점이다

이제 외돌개로 돌아가면 된다.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니 버스는 한 대만 오고 그 버스를 타고 삼매봉입구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단다.

이곳에서 버스를 한 30여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삼매봉입구에서 내려 다시 걸었다.
7코스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범섬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드디어 4시경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빼려하자 주차관리 아저씨가 오시더니 “주차료가 많이 나왔네요”라고 말한다.


“올레를 걸었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면 7천원은 받아야 하는데 제주도민이니까 3천원만 내라”고 한다.
3천원을 주차료로 내고 제주시로 향했다.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는 철학자 미셀 세르가 “수동성에 대해 야만적인 것의 다른 형태라고 했다”며 이를 설명한 글을 남겼다.

 “이러한 일상의 노력, 멀고 먼 목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부추김 그리고 유익한 땀방울을 통해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어린 시절과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틀에서 해방된다.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쓴 것이다.


또한 “걸으면서 몽상하기란 쉽지만, 걸으면서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쓰고 있다.

그는 “걷는다는 것은 꿈꾸는 자에게 더욱 관대하다‘며 ”심사숙고할 때와 달리 몽상은 일단 끊겼다가도 별 어려움없이 다시 그 길을 이어갈 수 있다”고도 했다.

더욱이 그는 “나는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능적이고 실제적이고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이런 길들은 아무런 몽상도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아름다운 강정마을도 꼭 이러한 마음이리라..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얼마전 제주도에서 강연을 할 때 “제주도를 자연 그대로 놓아두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던 그 말이 떠오른다.

“자연이 아름다워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 되니 이제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려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며 “만약 이런 조건이 사라지게 되면 누가 제주도를 찾겠느냐”는 걱정이었다.

“제주도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내가 계속 제주도를 찾아올 수 있도록 제주를 가만히 놓아두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이날 7코스에서 나는 신은 만나지 못했지만 신의 관심은 느낄 수 있었다.

1코스로 처음 갈 때처럼 가는 길 오는 길 빨간신호등에 걸려 지체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교회(성당)에 한번 나타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교회(성당)에 앉아 신의 관심에 감사를 표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불가지론자(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가 아니라면 누구나 신의 관심 정도는 느끼고 살 것이지만..

다음에 걸을 코스는 7-1코스다.
만만찮아 보이는 길..


그곳에는 또 무엇이, 또 무슨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제주올레7코스
 

(제주올레홈페이지)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작 :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중간 : 켄싱턴 리조트 바닷가 우체국
종점 : 월평 아왜낭목 쉼터, 월평송이슈퍼

난이도난이도 - 중
거리(시간) - 17.7km (5~6시간)

수봉로는 언덕 길이고, 일강정 바당올레에서 서건도 사이 바윗길이 험한 편이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출발하여 법환포구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해안올레.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를 만날 수 있다.

수봉로는 세 번째 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김수봉’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2009년 2월에는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제주올레에서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올레'로 명명했다.

2009년 3월에는 각종 자연현상에 유실되었던 수봉교 자리에 '풍림올레교'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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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준 2016-12-19 14:37:49
사진을 많이 찍다보니 내용에 착오가 있었네요.
내용은 대강 수정했습니다만..
올레를 걷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고복준 2016-12-19 14:07:45
글내용은 악근천인데 사진은 강정천 사진, 강정천 사진에 '아름다움이 사라진 대포동' 이라고 오기, 법환동 올레코스 사진이 강정쪽 설명자료에 삽입되고 있으므로 정정했으면 합니다.

고복준 2016-12-19 14:04:43
7코스에 대해서 잘 읽어 보았습니다. 조금 아쉬운점이 있어서 글을 올림니다. 오타 및 사진안내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으므로 7코스에 대하여 잘 아시는 분에게 사진자료 위치를 변경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내용에 있어서 '조금 걸어서 .... 대포동 바다가 나온다.' 는 '강정동 바다가 나온다.' 로, '바닷가 우체국에 도착했다. 대포동 바다가...' 를 '강정동 바다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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