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7-1)"..'하논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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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7-1)"..'하논의 길'을..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6.12.25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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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월드컵경기장-제주올레여행자센터, 서귀포다움 사라진 아쉬운 길

 


걷는다는 것은 보임이다.
그리고 개척이다.


제주올레를 다니면서 느껴지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주도의 거대한 격변의 흐름이다.


올레가 만들어 질 때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제주는 이미 많이 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올레가 거기 있으면 뭐하는가.
걸어보지 않고 느껴보지 않는 한 올레를 우리는 지킬 수가 없다.


올레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제주도를 지킬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사실 올레를 걸으면서 제주도는 올레만 갖고도 충분히 제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걷지 않는한, 그리고 제주를 제주답게 지키기 위한 애정이 없는 한, 제주도는 넓고 넓은 개발하기에 딱 좋은 미개척지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제주도의 고충이 또는 강력한 유혹이 숨어있는 것이다.


올레를 걸어보지 않으면 제주도는 늘 이런 공포의 개발 논의에 떨 수 밖에 없다.


"올레를 걸어보라.
그래야 제주도가 보인다.
그리고 그 후에 제주도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권유를 한다.

 

올레7-1코스는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부터 제주올레여행자센터가 있는 곳까지 시내를 관통하며 시작하는 코스다.


시작부터 멀지 않은 엉또폭포까지의 서귀포 신도시 코스는 신천지가 만들어진, 제주도라는 의미는 싹 사라진 의혹의 길로 변해 있었다.

엉또를 지나자 본래의 올레길이 나타났을 뿐 그 길까지의 올레는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레7-1코스는 당연히 하논의 길이라고 명명하고 싶었다.

하논이야말로 기후변화 식물상 등 제주도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보고의 땅이기 때문이다.
이날 멀리서 보았던 하논과 가까이 들어가 본 하논은 완전히 달랐다.

세계에서도 드물게 볼수 있는 희귀한 마르형 분화구..


하논에는 논도 있고 감귤밭도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절과 성당터도 있었지만 물이 흐르는 곳에 생명체는 없었다.

하논의 길 7-1코스는 하논 하나만으로도 그런 의미를 전해준 소중한 길이었기에 나는 하논의 길이라 부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동안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12월24일..실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아침에 보통 8시30분이면 '출발..'하며 차에 올랐던 것과 달리 24일은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괜히 미적거렸다.

제주시는 지난 2-3일 계속 추웠고 이날 아침 날씨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침에 기상하니 몸은 더욱 무거웠다.
의무처럼 토요일마다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라도 작용한 것일까..

 

실은 시간이 될 때마다 올레를 하나씩 걷기로 작정한 일이 매주 토요일이면 당연히 가야하는 것처럼 그런 부담을 스스로 주고 있는 것도 문제이긴 했다.

이날 느긋하게 잠자리에서 오전 8시30분쯤 일어난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하루쯤 쉰다한들 누가 뭐랄 것인가.

그런데 커피를 마시려고 준비하면서 난 이미 포트에 커피를 담고 있었다.

어제 챙겨놓은 올레수첩과 걸을 때 입을 옷 등..

간식꺼리를 넣으면서 말했다.

“일단 가서 결정하자..걷고 싶으면 걷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오자..”

가는 동안 희한하게도 한번도 빨간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한걸음에 시작점인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몸은 벌써 기분좋은 걷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7-1코스 출발점에 도착해서 첫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정확히는 10시9분이었다.
나는 이를 10시10분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그리고 큰 길을 건너 아파트촌이 보이는 혁신도시쪽으로 들어섰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길..동산길이다.
여기는 예전에 이곳에 서면 서귀포시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경이로운 곳이었다.

 

이제 그런 모습은 다 사라지고 어느덧 호텔과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도 가도 서귀포시의 옛모습은 하나도 없다.

이런 곳에 산다고 한들 행복할 것인가..하는 생각만 들었다.

오르고 올라 동산꼭대기쯤에서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서귀포 앞바다가 보일까..?
전혀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단지가 아름다운 서귀포 앞바다를 다 막고 서 있었다.

조금 더 가니 거대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공사안내문조차 없었다.

 

 

 

이곳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제주다움이 다 사라진 이곳은 그저 답답한 서귀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멀리 군함 하나 없는 해군기지가 보이는 곳을 조금 지나니 숲속올레가 나타났다.

차라리 이런 길이 낫다.
엉또폭포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길은 전혀 서귀포다운 길이 아니었다는 실망감 때문이었다.

아쉬움 반 답답함 반..그 길을 걸으면서 한라산과 길가에 하나씩 서 있는 예쁜 집들로 위안을 삼으면서 그 길을 지나자 대로가 나타났다.

곧 12km가 남았다는 표식이 나타났고 엉또폭포 입구로 들어서는 길로 들어섰다.
비가 온 다음날이면 장관을 연출한다는 엉또폭포.

 

 

 

엉또폭포는 말만 들었지 비가 온 다음에야 생기는 폭포이니 시간을 맞출 수도 없고 해서 이날 처음 가 본 곳이다.

그 웅대함이라니..

산 같은 바위가 우뚝한 그곳에서 마음껏 엉또를 눈으로 스캔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물이 없는 엉또폭포는 아쉬웠지만 그 웅장함을 본 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웠다.

이곳을 나오는 올레길은 경사진 곳에 귤을 심어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감귤밭과 연결이 돼 있었다.
예쁜 감귤밭 한가운데를 뚫고 돌아나오게 된 길..

엉또의 또하나의 매력이었다.

엉또를 지나 다음 코스를 따라 잠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계속 나를 따라온다.

 

까악까악 거리며..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는 까마귀에게 잠시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사진을 한 장 찍어 주었다.
예쁜 것..환영까지 해주다니..

걷다 보니 다시 숲속 올레로 들어서는 길이 나왔다.
5km 지점..이제 3분의 1 정도는 걸었나보다.

어둡고 좁은 숲길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걸었다.

그 숲길을 나오니 바로, 어디서 많이 본, 돌위에 쓰여진 중잣성이라고 쓰여진 표시가 나타났다.

어쩐지 돌담이 많다고 했다. 이곳은 중잣성이 상당히 널리 분포돼 있는 곳이었다.
중잣성이라고 쓰여진 것만 서너 개나 보일 정도로 많았다.
아마 더 많은 곳에 이 글이 쓰여져 있을 것이리라.

 

잣성이란 제주에 남아있는 일종의 국영목장을 말한다.


1소장부터 10소장까지의 잣성은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목장이 해안가 평야지대를 포함한 섬 전역에 흩어져 있어 농경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말들이 넘지 못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담경계다.

잣성은 세종 11년(1429년) 고득종(영곡공)의 건의에 의해 상호군 박호문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적부를 조사하게 하고 세종 12년(1430년) 2월 도안무사 장우량에 명해 한라산 중턱 165리에 걸쳐 돌담을 쌓기 시작해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설치된 국영목장을 10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토록 하는 10소장 체제가 갖추어졌고 10소장 위.아래 경계에 돌담을 쌓았는데 그것이 바로 잣(잣담)이다.

잣성은 그 위치에 따라 상잣, 중잣, 하잣으로 나누어지고 한라산 중산간지대를 위 중간 아래로 크게 3등분해서 돌담으로 빙 둘러쌓은 것이다.

가장 먼저 쌓아진 것이 중산간 150-250m 일대의 하잣이고, 18세기부터는 한라산 깊이 들어간 말을 잃어버리거나 얼어죽게 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해발 450-600m일대에 상잣이 축조되었다고 한다.

해발 350-400m 일대에 만들어진 중잣은 상잣과 하잣 사이의 공간을 돌담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제주문화유산답사회 해설)

 

돌이켜 보니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나는 1시간30분여를 물 한 모금 먹지도 않고 한번도 쉬지 않고 걷고 있었다.
난 잠시 그 중잣성이라는 돌 위에 앉아 물도 한모금 마시고 커피도 한 모금 하고 귤도 하나 까서 먹으면서 잠시 쉬기로 했다.

땀을 조금 식히고 이어진 들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숲속길이 나온다.

그곳에도 하얀 글씨로 중잣이라고 써 있는 모습이 또 보였다.

사실 이 중잣성 표시가 나중에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아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문제의(?) 고근산입구가 나타난 것은 중잣이 보인 바로 그 직후였다.

 

고근산 입구를 들어서자 남은 거리 9km라는 표지도 있었고 올레표시도 깃발 하나가 숲속 안길 방향으로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올레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왼쪽으로 가 봐도 없고 오른쪽으로 가 봐도 없었다.

나무는 가득 하고 가시덤불에.. 큰일이었다.

길 닮은 곳이면 그냥 걸어가 봤다.
길이 아니었다.
계속 숲속길에서 헤맬 수 밖에 없었다.

방법이 없었다.

길은 나타나지 않았고, 비상수단이 필요했다..

그냥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돌담-중잣성을 몇 개나 건넜는지 모른다.

 

숲속에 들어가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올레길에서 그렇게 헤맬줄 누가 알았겠는가.

엉키고 설킨 가지들..
그곳에서만 길을 찾아 30분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중잣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다녔을 것 같고..
일단 무조건 밝은 곳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드디어 찾은 광명의 길..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와 보니 고근산 정상 쪽은 오른쪽에 보였지만 바로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 그쪽으로 길을 찾아가야 했다.

가다보면 올레깃발이 어딘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이 당신에 대해 관심 정도 갖는다고 했다고 시험을 한 것일까..

길을 잃은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제 길을 찾게 해 주신 걸 보면 신은 분명히 나를 많이 사랑하신다.

계속 옆으로 걷다 보니 저 멀리 작은 등 같은 것이 하나 보이는 듯 했다.
가까이 더 가 보니 분명 동그란 등이었다.
산에서 보이는 등이라면 분명 길이 있다는 얘기다.

조금 더 옆으로 나아갔다.
그곳으로 힘들게 걸어가니 드디어 가로등과 함께 붙어있는 올레깃발이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고근산을 오르는 중간지점쯤 돼 보이는 산책길에 들어서자 힘이 다 빠져 버렸다.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산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만약 밤이라면 분명 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뻔 했다.
더욱이 숲속길에서는 길을 찾기 좋게 더 많은 표시를 해주는 게 옳다.

고근산으로 오르는 길은 특히 고바위였다.
나무계단을 따라 높이 오르는 길이었다.
하지만 걸어야 하는 길이 길지가 않아 걸을만 했다.

드디어 서귀포 앞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
탁 트인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서 봤다.

 

 
     
 

이곳 고근산은 보기 드문 분지형태의 분화구를 갖고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아주 예쁜 분지였다.
올레길은 이 분지를 한바퀴 돌아 정상으로 이어진다.

한라산이 눈앞에 보였지만 백록담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호젓한 산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고근산은 나무와 들길 분지 한라산 서귀포 앞바다 등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고근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도 나무로 박은 산책길을 만들었지만 아주 좁았다.
그러나 오름으로서는 아주 멋진 모습..남자답고 미남으로 보이는 오름이다.

 

고근산은 서귀포시 신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오름으로 산정부에 얕은 원형 분화구를 갖고 있다.
표고 : 396.2m, 비고 : 171m, 둘레 : 4,324m, 면적 : 1,204,428㎡, 저경 : 1,140m다.

남동사면 중턱의 `머흔저리`라고 하는 곳은 예전에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 곡배하던 곡배단(哭拜壇)이 있다.


남서사면 숲비탈에 꿩사냥 하던 개(강생이=강아지)가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지는 강생이궤라는 수직동굴이 있다.


주요식생은 오름 중턱에 삼나무, 편백나무, 해송,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이 조림되어 있고, 정상부근에는 자연석과 어우러져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산철쭉 등이 식생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고근산, 더러는 호근산, 고공산이다.

원래가 한자명인지도 모른다. 범섬(虎島)이 가까이 보이는 마을이라 하여 虎近里(호근리)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견해 쪽에서는 虎近山, 마을이름을 원래부터 好近好根으로 보는 쪽에서는 好近山, 好根山 근처에 산이 없어 외롭다는 데서 孤根山, 이밖에 古公山, 古近山, 固根山 등 예로부터 가지가지로 표기돼 왔으나,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孤根山으로 정착된 듯 하다.
`고근`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공산`은 `고근산`의 변음으로 보이고, 古公山, 古空山은 그 변음을 한자 표기에 반영한 것이다.

민간에서도 `고공산`이라 하는 사람이 많다. 고근산은 호근에 있는 산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라고 하나 후대의 민간어원설이다.

이 오름의 굼부리는 전설상의 巨神 설문대할망이 심심할 때면 한라산 정상부를 베개 삼고, 고근산 굼부리에는 궁둥이를 얹어 앞바다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물장구를 쳤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제주관광공사 홈페이지)

 

고근산을 다 내려오니 7km가 남았다는 표지가 나타났다.
이제 반 정도를 걸은 것이다.


서호동길이다.
앞에 호근동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보이는 곳을 내려가는데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나타났다.
제남아동센터가 있는 그 입구.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12시40분경이었다.

 

스탬프를 찍고 안내판에 올레꾼들을 위한 쉼터가 있다고 쓰여 있어 일부러 올라가봤다.
그곳에는 그네까지 있는 아주 잘 정돈된 쉼터가 있었다.
서귀포 앞바다도 볼수 있고 보기에도 편안한 공원이 하나 놓여 있었다..그러나 식당은 없었다.

그 길을 따라 시내쪽으로 내려오면서 식당을 찾으려다가..호근동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우동과 준비한 김밥과 함께 요기만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올레길을 걷는 동안 7-1코스에는 올레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산책객이나 관광객들이 보일 뿐 코스를 걷는 내내 한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이어진 호근동마을은 여느 작은 제주도의 마을 그대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누가 결혼을 하는지 마을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동네는 한적한 시골모습이었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마을을 넘어서자 11km 지점에 왔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다시 용당마을을 지나 대로로 들어서면서 남은 거리 3km지점에 들어섰다.
이제 하논분화구가 시작되는 지점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쁜 숲길 올레길이 나타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보니 이곳이 하논의 끝자락이었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하논이 거기에 숨어 있었다니..
하논을 끼고 도는 이 길은 평범한 길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들..낙엽이 수북히 쌓인 이 길은 그저 환상의 길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하논의 모습..
들어가 보면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했다.

봉림사라는 절을 지나 작은 골목길이 나타나고 감귤밭이 이어졌다.
거기에는 또 하논성당터라는 곳도 남아 있었다.

 

 
 
 

이곳은 돌담도 참 특이했다.
아마 지역적인 특성 때문이리라.
제주도의 다른 지역 돌담과도 또 달랐다.

조금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하논분화구라고 소개하고 있는 올레안내판이 나타났다.
하논분화구 깊숙히 들어온 것이다.


논이 이어졌다.
벼는 이미 다 수확했지만 아직도 누런 흔적이 남아있었다.


논이 있다는 것은 물이 있다는 뜻이라 물부터 찾아봤다.
그곳에는 아주 길고 긴 개울이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유심히 찾아보았지만 생명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라 다 숨은 것일까..
개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며 한가지라도 그 생명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논 분화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대한민국 최대의 화산 분화구로, 칼데라 지형이다. 이 분화구는 마르(maar)형 분화구로, 현재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논이 되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일대의 360여 개의 한라산 오름 중의 하나다. 깊이 약 90m, 동서방향 1.8km, 남북방향 1.3km의 타원형 화산체로 3만∼7만 6000년 이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징은 용암 분출로 생성된 일반적인 화산 분화구와 달리, 마르(maar)형 분화구는 용암이나 화산재 분출 없이 지하 깊은 땅속의 가스 또는 증기가 지각의 틈을 따라 한 군데로 모여 한번에 폭발하여 생성된 분화구를 말한다. 지표면보다 낮게 형성된 화산체로, 산체의 크기에 비해 매우 큰 화구가 특징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제주도 서귀포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여건과 빼어난 경관 등으로 2002년 분화구에 야구장 건설 계획을 세웠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철회하는 등 각종 난개발로 인한 하논 분화구의 외형 파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006년 이후 하논 복원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분화구의 생성 시기는 5만년 전으로, 그 당시에는 초대형 화구호가 있었으나 500년 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 화구호는 사라지고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칼데라(caldera, 화구의 일종으로 화산체가 형성된 후에 대폭발이나 산정부의 함몰에 의해 2차적으로 형성된 분지)의 지름은 1km 이상으로 보고되면서 복원을 하면 제대로 된 화구호가 생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논 분화구는 국내에서는 드문 이탄(泥炭)습지로, 응회환 화산체와 분석구(scoria cone)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화산으로 고기후와 고식생 연구 및 기후 변동예측 연구 등의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논 분화구 바닥에는 하루 1000∼5000ℓ의 용천수가 분출돼, 500여 년 전부터 벼농사를 짓는 논으로 사용됐다. 하논은 '논이 많다.'는 제주 말로, '큰 논(大沓)'이란 뜻의 '한 논'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출처 위키백과)

 

 

 

하논길을 따라 계속 나오니 2km남은 지점이 보이고..

하논을 벗어나자 다시 마을 안길로 이어진다.
이 짧은 길을 따라 시내로 들어서는 길에서 보는 서귀포는 여전히 우뚝 우뚝 솟아있는 큰 건물들만 보였다.
여전히 서귀포시는 예전 서귀포의 모습은 아님이 분명했다.

 

 

 

 

오른 쪽에 보이는 미나리가 자라는 솜반천을 지나 걸매생태공원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예전에 비닐하우스로 농사를 짓던 곳이지만 서귀포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생태공원으로 변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름다운 휴식공간이 그곳에 작은 계곡물과 함께 휴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곳에 잠시 앉아 남은 커피와 함께 짧은 여유를 즐겼다.

시내를 관통하여 출발점인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08분.
꼭 6시간을 걸었다.

스탬프를 찍고 잠시 앉았는데 올레꾼 하나가 지나가면서 “여행자센터 카페 맥주가 참 맛었어요..”하면서 지나갔다.
6코스를 걸었다는 올레꾼이었다.
남원포구에 차를 놓고 와서 그쪽으로 가야한단다.

나도 버스를 타고 월드컵경기장으로 가야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출발점인 월드컵경기장 광장앞..버스에서 내려 다시 출발점에 선 시간은 16시40분..
정확히 6시간30분이 걸렸다.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는 1권 막바지에 그런 사람 하나를 소개했다.

“생각해 보니 콤포스텔라 길에서 만난 어떤 남자가 떠올랐다. 작년 어느날 저녁, 퓌앙블레에서 조금 지난 곳에 있는 어떤 숙소에서였다.


그가 말했다.
“일흔살이 되니 힘이 달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내게 중요한 몇가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답니다. 올해는 콤포스텔라 길, 내년엔 몽블랑 등정, 이런 식으로 말이죠”


..(중략)..그는 나보다 먼저 떠났는데 나는 절대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따금 숙소에서 나는 바람처럼 다니는 작은 노인 얘기가 들려오곤 했다.“

그는 또 말한다.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이 여행을 준비하고 실현하는 것은 환상의 브레인 스토밍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중략)..


풍부한 역사를 지닌 이 땅을 걷는 것이 나를 세계와 화해하게 해주었다. 길 이곳저곳에서 나는 수많은 유령을 만났다.


트로이전쟁의 영웅들, 황금양털,오스만제국 ..티무르의 군대, 이 '신의 재앙',고르디움과 그 땅이 낳은 아들, 즉 매듭을 묶은 고르기우스왕과 그것을 잘라버린 알렉산드로 대제,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 이들 모두는 신화와 현실 사이에 존재하며 내 발걸음과 생각 하나하나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이 광대한 면적, 이 모든 산과 구렁과 험로들,내가 밟고 다닌 이 초원의 아름다운 풍경은 내 망막에 각인된 채 남아있다.“

 

 

그냥 있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건 회복이다.

홀로 걷는 올레는 나와 세상을 새롭게 만나게 한다.
삶이라는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와 열망을 남긴다.


올레는 그래서 삶을 질문하는 사람에게 답을 줄지도 모르는 순례길이기도 하다.

다음 걸을 코스는 8코스다.

8코스는 내게 이미 도전의 염을 심어준 코스다.

7-1코스를 갈까, 7코스에 이어 8코스를 먼저 걸을까 하며 미리 점검해 본 결과 8코스는 길이도 길고 만만찮은 코스라는 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코스에서 무엇을 또 얻을 것인가..

 

 

 

 

제주올레7-1코스

 

제주올레홈페이지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작 : 제주월드컵경기장 광장 앞
중간 : 서호동 제남아동복지센터 앞
종점 :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난이도난이도 - 중

거리(시간) - 15km (4~5시간)
여느 오름에 비해 비교적 높은 고근산을 오른다.

 


제주 중산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호흡하며 걷는 올레.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작하여 중산간을 거쳐 외돌개로 내려온다. 위로는 한라산을, 아래로는 제주의 남쪽 바다와 서귀포 전역을 조망할 수 있다. 기암절벽과 천연 난대림에 둘러싸인 중산간의 비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제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논농사를 짓는 지역을 지나는데, 논둑길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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