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문학] 사랑과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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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사랑과 영혼
  • 안종국 기자
  • 승인 2016.12.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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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의 전형- 에로스와 프시케의 전설

 

 에로스와 프시케. François Pascal Simon Gérard

사랑과 영혼을 주제로 한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는 그리스의 고대시대 말기인 헬레니즘기를 지나 제정로마시대에 형성되어 루키우스 아폴레이우스의 라틴문학인 ‘황금 당나귀’에 삽입된 것이다.

아폴레이우스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근처 마다우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복한 가정 출신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웅변술을 배웠고, 그리스로 여행해서 플라톤 철학을 배웠다. 그리고 시와 점성술, 음악에도 심취했으며 동양종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공부를 끝내고 로마로 가서 법조계에서 일했으며 서른 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푸텐틸라라는 미망인과 결혼한다. 그런데 푸텐틸라는 아테네 시절 함께 공부했던 폰키아누스라는 친구의 어머니로 재산이 많았고, 미모도 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으며 그의 친구가 죽자 마술을 부려서 그리했다는 누명을 썼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뛰어난 웅변술로 무사히 무죄로 선고되었고 카르타고에 정착하여 도시의 지식모임을 선도했다. 도시의 정식 웅변가가 되기도 하였으며 그가 배운 지식을 전파하고 수많은 강연을 하였다. 말년에 저술한 ‘황금 당나귀’는 전형적인 그리스적 서사문학으로 종교적이며 신비적인 내용이 풍부한 역동적 서술로 격찬을 받았다.

에로스와 프시케로 일변되는 ‘사랑과 영혼’은 아폴레이우스의 작품에 가장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에로스가 단편적인 조연의 역할을 넘어 본격적인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프시케와 함께 이끌어 가고 있으며, 사랑이 육체적 결합을 넘어 혼으로서의 문제를 가미하여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에로스는 원래 일방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상대의 육체를 탐욕하고 배려와 존중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 배설의 사랑은 결국 비극적이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애욕이라는 욕망의 소유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시대의 보편적인 성애관과는 달리 에로스와 프시케는 매우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보여준다. 즉 애욕이 아니라 진정한 영혼의 깊은 사랑과 헌신의 미덕이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간의 존중적 사랑은 고대그리스의 남녀관을 변모시키며 새로운 원동력으로 등장했지만 곧이어 등장한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명제앞에 다시 침잠하게 된다.

 

 프시케의 승천.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기독교는 중세기에 철저하게 에로스를 육욕으로 배척하고 차원 낮은 것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가페’라는 새로운 사랑의 개념을 채웠다. 흔히 신의 내리사랑이며 베푸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내재된 육욕과 애욕을 넘어선 인간들의 친밀한 정신적 결합의 사랑조차 완숙되지 못하고, 이분법적인 기독교의 성스런 사랑과 인간들의 천박한 사랑으로 배척된 면도 없지 않다.

바로 여기에 남녀사이의 중세기적 비극이 존재한다. 육체의 사랑과 정신적 영혼의 결합은 그 통일적 완결성을 다듬지 못하고 아직도 육체만을 탐하거나 위선적인 조건의 결합인 제도의 결혼이 사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은 주관적이고 복잡한 경험에 속한다. 객관적인 사랑의 정형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여러 상이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그저 동일하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의 얼굴을 갖고 있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라고 해도 결국은 생물학적이고 육체적인 성애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동시에 사랑은 육체를 뛰어넘는 요소도 함께 들어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동화적이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신화가 되기도 한다.

사랑과 신, 혹은 사랑과 영혼의 문제는 그래서 인류의 끝없는 화두와 문학의 주제가 되어왔고, 여전히 우리는 그 해답을 잘 찾지 못하고 있다. 프시케와 에로스의 신화는 바로 성욕과 인간의 마음을 아우르는 전형적인 사랑의 이상주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에로스의 욕망이 우리를 소유하지만 동시에 육체적인 에로스를 지배하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황금당나귀’에 실린 에로스와 프시케의 전설

 

 에로스와 프시케

옛날 어느 왕국에 세 딸이 있었다. 셋은 모두 아름다웠으나 특히 막내딸이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의 이름은 프시케였는데, 아름다움은 멀리 외국에도 소문이 퍼져 여러 이웃 나라의 사람들은 그녀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 올 정도였다.

그렇게 그들은 그녀를 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던 경의를 그녀에게로 돌렸다. 이렇게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이 쏠리자 아프로디테의 제단은 돌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특히 그 처녀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고 길 위에 꽃을 뿌려주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프로디테는 불사의 신들에게 표해야 하는 경의가 한낱 인간을 찬양하는 데 집중되자 분노가 일었다. 그리하여 아프로디테는 그녀로부터 아름다움의 명예를 지키고 인간 처녀가 자기의 아름다움을 후회하게 만들고자 했다.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를 불러 들였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로스여 저 교만한 미녀에게 자신의 미모를 후회하게 해 다오. 그녀가 받는 벌이 심하면 심할수록 나에게는 좋은 복수가 되리라. 저 교만한 아가씨의 가슴속에 가장 천한 자에 대해서 연정을 품게 하거라."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요청에 따라 준비를 했다. 아프로디테의 정원에는 샘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물맛이 달고 하나는 썼다. 에로스는 두 개의 호박 병에 두 가지 샘물을 각각 담고서, 그것을 화살통 끝에 매달고 프시케의 침실로 찾아 갔다.

침실에서 프시케는 자고 있었는데, 에로스는 먼저 쓴 샘물을 그녀의 입술 위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이 물방울을 마신 사람은 사람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옆구리에 황금 촉이 달린 화살을 갖다 대는 순간, 기척을 느낀 프시케가 잠에서 깨어버렸다.

에로스는 순간 몹시 당황하여 자신이 들고 있던 화살로 스스로에게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금화살은 처음 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에로스는 부상을 입은 줄도 모르고 프시케의 머리 위에 기쁨의 향기로운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이렇게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은 프시케는 그 후부터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아름다움을 칭찬받았으나 왕족이나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그녀에게 청혼하는 자가 없었다.

그녀의 두 언니들은 이미 오래 전에 왕자들과 결혼을 했는데, 프시케는 고독하게 홀로 방을 지키며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경멸했다. 그녀의 부모는 프시케가 신들의 노여움을 산 것으로 생각해 아폴론의 신탁에 질문을 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변을 얻었다.

"그 처녀는 인간에게 시집을 갈 수 없도다. 그녀의 미래의 남편은 산꼭대기에서 기다리는 괴물인데, 신이나 인간도 그에게는 반항할 수 없도다."

이 무서운 신탁에 그만 크게 놀란 그녀의 부모가 슬픔에 잠긴 것을 보고 프시케가 말했다.

"왜 이제야 저의 신세를 슬퍼하세요? 도리어 사람들이 저에게 부당한 명예를 주어 아프로디테라고 불렀을 때 이미 슬퍼했어야 해요. 그런 칭호를 받아서 벌이 내린 것이에요. 저는 운명에 순종하겠어요. 저의 불행한 운명이 지시한 저 산 위로 저를 보내 주세요."

이렇게 하여 프시케는 장례식과도 같은 혼례행렬이 사람들의 비탄 속에서 산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 이르자 사람들은 그녀만 혼자 남겨 놓고 안타까워하면서 슬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프시케의 결혼식. 에드워드 번 존스

혼자 남겨진 프시케는 공포에 떨며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제피로스가 나타나 그녀를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골짜기로 실어다 주었다. 그러는 동안 마음도 진정되었다. 그녀는 풀숲에 꽃이 무성한 둑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상쾌한 마음으로 눈을 뜨자, 주위에는 커다란 나무가 우뚝 솟은 아름다운 숲이 있었다. 프시케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숲 한가운데서 샘을 발견하였는데, 그 샘에서는 수정과 같이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샘 곁에는 굉장히 큰 궁전이 있었는데, 그 우아하고 장엄함은 신의 솜씨로 만들어진 것처럼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프시케는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보이는 물건마다 그녀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황금 기둥은 반원형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고, 벽은 사냥의 대상이 되는 짐승이나 전원 풍경을 그린 조각과 그림으로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의식용 큰방 외에 여러 가지 보물과 자연과 예술이 빛은 아름답고 귀한 집기들이 방마다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왕이시여, 당신이 지금 보고 계신 것은 모두 당신 것입니다. 당신이 듣고 계신 이 목소리는 설령 들리지 않더라도 당신의 하인인 우리들의 목소리랍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분부에도 복종할 것입니다. 이제는 당신의 방으로 가셔서 푹신한 침대 위에서 편히 쉬십시오. 또한 목욕을 하시려거든 하십시오. 저녁 만찬은 아름다운 테라스에서 드시도록 하세요.”

프시케는 소리만 나는 그 시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포근한 털 침대 위에서 푹 쉬고 목욕을 하고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 앉았다. 그곳에서는 급사나 하인들이 일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식탁이 마련되고 그 위에는 맛좋은 음식과 감미로운 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연주자에 의해 음악이 연주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한 사람은 리라를 탔는데, 천상의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남편은 밤이 어두워야만 찾아왔고, 날이 밝기 전에 나갔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사랑에 충만하였고, 그녀도 순식간에 애정이 생겼다. 그녀는 떠나지 말고 얼굴을 보여 달라고 종종 간청하였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자기를 볼 생각은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왜 나를 보고 싶어 하오? 나의 사랑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을 갖지 마시오. 그대가 나를 본다면 두려워할지도 모르고 숭배할지도 모르나,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만을 나는 그대에게 원하오. 나는 그대가 나를 신으로서 숭배하는 것보다 같은 인간으로서 사랑하기를 바라오.”

이러한 말을 들으면서 프시케는 마음을 잡았고, 신기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부모님과 언니들을 생각하자 프시케는 마음이 괴로웠고, 그 훌륭한 궁전도 감옥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남편이 왔을 때, 프시케는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마침내 언니들을 불러보아도 좋다는 승낙을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제피로스에게 부탁해 언니들을 데려오게 했다. 프시케는 언니들과 서로 끌어안고 반가움을 나눈 후, 언니들의 손을 잡고 금으로 만든 자기의 궁전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목소리만 들리는 수많은 시종들로 하여금 언니들의 시중을 들게 하여 목욕도 시키고 음식도 대접했으며, 여러 가지 보물도 자랑하였다.

프시케가 자기들보다 훌륭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 언니들은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녀들은 프시케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특히 그녀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프시케는 그가 아름다운 청년이요, 낮에는 보통 산에 사냥을 나간다고 답변했다, 언니들은 답변에 만족하지 않고, 프시케로 하여금 자기는 아직껏 한 번도 남편을 본 일이 없음을 고백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녀들은 그녀의 가슴에 의심이 가득 차도록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폴론의 신탁이 네가 무서운 괴물과 결혼할 것이라고 예언 하였으니, 너의 신랑이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필시 괴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너의 남편은 무섭고 괴상한 뱀으로서 한동안 너를 맛있는 음식을 먹여 기른 다음에 삼켜 버릴 것이라고 말 한단다. 그러니 너는 등잔과 날카로운 칼을 준비하여 남편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겨 놓았다가 그가 깊이 잠들거든 등잔불을 켜고 네 눈으로 사실을 알아보거라. 만일 네 신랑이 괴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머리를 베어 너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단다.”

프시케는 처음에는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언니들이 떠나자 자신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프시케는 등불과 날카로운 칼을 준비하여 남편이 보지 못하도록 침대 밑에 감춰두었다.

그가 첫잠이 들었을 때 프시케는 몰래 일어나 등잔불을 켜고 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서운 괴물이 아니고 신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매력 있는 신이었다. 그의 금빛 머리는 곱슬 거리면서 눈빛같이 횐 목과 진홍색 볼 위에서 물결치고 있었고, 어깨에는 이슬에 젖은 두 날개가 눈보다도 희었으며, 그 털은 보들보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의 얼굴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등불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 불붙은 기름 한 방울이 그만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잠자던 에로스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상황을 살펴 본 에로스는 프시케를 바라보다가 말 한마디 없이 횐 날개를 펴고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에로스의 정체를 알기위해 불을 켠 프시케. 에티 윌리암스

프시케도 황급히 그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창틀에서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에로스는 프시케가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어리석은 프시케여. 이것이 나의 사랑에 보답하는 짓인가? 나는 어머니의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고 너를 아내로 맞았는데, 너는 나를 괴물로 여기고 나의 머리를 베려고 생각하였단 말이냐? 너는 나의 사랑의 요청의 말보다 언니들의 말을 들었으므로 그들에게 돌아가라. 이제 나는 영원히 너와 이별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과 의심은 함께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슬픔에 전율하는 프시케를 버리고 가버렸다. 그녀는 그렇게 울다가 한참 후에야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궁전은 물론이고 정원도 없어지고, 자기가 언니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부터 가까운 들판에 있는 것을 알았다. 프시케는 언니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가 당한 재난을 다 이야기했다. 질투심이 가시지 않은 언니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슬퍼하는 척했다.

 

 정체가 알려진 후 프시케를 떠나는 에로스. 콜롬벨

언니들은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그 신이 자기 둘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이라 생각하고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올랐다. 그리고 산정에 이르자 제피로스를 불러 자기를 받아들이고, 그의 주인에게 데려다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면서 산정에서 뛰어내렸으나 제피로스는 그녀들을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바위에 부딪치며 몸은 조각난 채로 떨어져 죽었다.

한편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식음을 전폐하며 밤낮없이 방황하였다. 그러자 멀리 높은 산 정상에 멋진 신전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곳에 자신의 사랑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는 찾아 올라갔다. “나의 사랑, 나의 남편은 저곳에서 살고 계실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밀의 낟가리가 쌓여 있었는데, 묶은 것도 있고 묶지 않은 것도 있었으며, 간혹 보리 이삭이 섞여 있기도 했다. 낫과 갈퀴 및 그 밖의 추수할 때 쓰는 여러 농기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프시케는 이들을 정리해서 종류별로 정돈해 놓았다. 그것은 어떤 신이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그곳은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었는데, 이 여신은 프시케가 신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보고 다음과 말했다.

“오! 가엾은 프시케야. 비록 나는 너를 아프로디테의 미움에서 지켜줄 수는 없으나, 그녀의 기분을 누그러트릴 방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다. 너는 아프로디테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겸손과 순종으로써 용서를 빌어라. 그러면 아마 네게 은총을 베풀어 너의 남편을 다시 찾도록 해줄 것이다.”

프시케는 데메테르의 말을 따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프로디테의 신전으로 갔다, 무슨 말을 해야 노한 여신의 마음을 풀 수 있을까 하고 곰곰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결과는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노한 안색으로 대했다.

“가장 불성실한 여인이여, 너는 주인을 섬기는 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느냐? 아니면 네가 이곳에 온 것은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아직도 병석에 누워 있는 너의 남편을 보기 위해서냐? 너는 밉고 비위에 거슬린다. 그러므로 네가 남편을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밖에 없다. 나는 너의 가정부로서의 솜씨를 시험해 보리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자기의 신전의 창고로 인도하도록 명령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가 총애하는 비둘기의 모이로 많은 밀, 보리, 기장, 완두, 콩이 쌓여 있었다. “저녁이 되기 전까지 이 곡식들을 같은 종류별로 모두 가려 놓도록 하여라.”

이렇게 말하고는 아프로디테는 떠났다. 홀로 남은 프시케는 일거리가 너무 많은 데 놀라서 멍하니 곡식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시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아 있는 동안, 에로스는 들판의 주민인 조그만 개미를 선동하여 프시케에게 동정심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개미 무리의 지도자는 여섯 개의 다리가 달린 모든 졸개들을 거느리고 곡식더미에 접근하여 전력을 다하여 부지런히 곡식을 종류별로 가려내어 구분해 주었다. 그 일이 끝나자 개미들은 순식간에 그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프로디테는 황혼이 가까워지자 머리에는 장미 화관을 쓰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신들의 향연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프시케에게 명령한 일이 다 끝난 것을 보고 부르짖었다.

“못된 계집 같으니, 이것은 네가 한 것이 아니고 남편을 꾀어서 시킨 것이지? 어디 두고 보아라. 너도 네 남편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면서 프시케에게 저녁식사로 검은 빵 한 조각을 던져 주고 가버렸다. 다음 날 아침,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불러 말했다.

“저쪽에 보이는 물가에 나무들이 늘어서 있지. 그곳에 가면 양들이 양치기도 없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데, 모두 금빛 모피를 몸에 걸치고 있다. 거기로 가서 양이 걸치고 있는 모피에서 값진 양모드를 모아 가지고 오너라.”

프시케는 이 명령을 최선을 다해서 이행하리라 마음먹고 냇가로 갔다. 그러나 강의 신은 갈대로 하여금 노래 부르듯 속삭이면서 말했다.

“가혹한 과제를 해야 하는 아가씨야, 위험한 냇물을 건너려고 하지도 말고 건너편에 있는 무서운 숫양 속에 들어가지도 말아라. 왜냐하면 해가 떠오를 무렵에는 그 영향을 받아 양들은 그 날카로운 뿔과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려는 잔인한 분노에 불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낮이 되어 양떼들이 그늘을 찾아가고 냇물의 청명한 정기가 그들을 달래서 재울 때에는 내를 건너도 안전하며, 건너가면 덤불이나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금빛 양모를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강의 신은 프시케에게 그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가 일러준 대로 프시케는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아프로디테가 있는 곳으로 금빛 양모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이번에는 그녀를 죽여서 없애버릴 심산으로 최후의 과제를 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네가 이 일에 성공한 것이 너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네가 일을 잘 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 이번에는 다른 일을 시키겠다. 이곳에 있는 상자를 가지고 에레보스(명부의 세계)로 가서 페르세포네에게 전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여라. '나의 여주인 아프로디테가 당신의 미 (화장품)를 조금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병석에 있는 아들을 간호하시느라고 자신의 미를 약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갔다 오는 데 너무 지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늘 저녁에 얻어온 미를 몸에 바르고 신들과 여신들의 파티에 참석해야 하니, 그 전에는 돌아오도록 하여라.”

 

 에로스와 프시케. 존 로드담

프시케는 이제야말로 죽음이 다가 왔다고 믿었다. 제 발로 직접 에레보스에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급박한지라 프시케는 명부로 내려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하기 위하여 높은 탑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떨어지면 명부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탑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가엾고 불행한 여인아, 왜 그렇게 무서운 방법으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느냐. 이제까지도 여러 번 위험한 경우에도 신들의 가호를 받았으니, 최후의 위험을 그렇게 어리석게 안을 필요는 없느니라.”

그러면서 그 소리는 어떤 동굴을 지나면 하데스의 나라에 도착할 수 있고, 어찌하면 위험을 피하며, 머리가 세 개인 케르베로스를 피하는 방법과 저승의 강을 건너가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뱃사공을 설득시키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부언했다.

“페르세포네가 그녀의 미로 가득 찬 상자를 주거든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은 그것을 한 번이라도 열거나 그 속을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호기심으로 여신들의 미가 들어 있는 비밀스러운 보물을 들여다보지 말도록 하여라.”

프시케는 이 조언에 힘을 얻어, 모든 것을 일러 주는 대로 했다. 그리고 도중에 일일이 조심하면서 무사히 명부에 도착했다. 프시케는 페르세포네 궁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의자와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거친 빵으로 만족하며 식사를 한 뒤에 바로 아프로디테가 요청한 말을 전달했다.

페르세포네는 아까워하면서 미(美)가 담긴 값진 상자를 내 주었다. 그리고 프시케는 온 길을 다시 돌아왔으며,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조마조마하게 명부를 빠져나오자 한없이 기뻐하던 그녀는 안도감과 함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신의 미를 나르는 내가 이것을 좀 가져서는 안 된단 말인가? 나도 얼굴에 발라 사랑하는 남편의 눈에 예쁘게 보이면 안 된단 말인가?”

사랑에 눈이 먼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미가 하나도 없고 명부의 진짜 지옥에 있는 ‘영원한 잠’만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감옥에 갇혔다가 해방되자 프시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길 한가운데 쓰러져 잠자는 시체가 되었고, 아무런 감각도 미동도 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영원한 잠에 빠진 프시케. 알폰스 레그로스

한편 에로스는 이미 상처도 치유되고 사랑하는 프시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마침 자기 방 창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 틈으로 빠져 나와 프시케가 누워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잠을 끌어 모아 다시 상자 안에 가두었다. 그 후에 그의 황금 화살로 가볍게 그녀를 찔러서 깨웠다. 그는 말했다.

“너는 또 호기심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구나. 자, 너는 이제 어머니가 분부하신 임무를 완수하거라, 그 밖의 일은 내가 하겠다.”

에로스는 높은 하늘로 올라가 제우스 앞에 나아가서 프시케를 도와줄 것을 애원했다. 제우스는 호의를 갖고 두 연인을 위해서 간곡히 아프로디테를 설득시켰다. 마침내 그녀도 승낙하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프시케를 천사의 회의에 참석케 하였다. 그녀가 도착하자 제우스는 불로불사의 음식이라고 하는 암브로시아를 손수 한잔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시케는 이걸 마시고 불사의 신이 되어라. 에로스는 이 맺어진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이며, 이 결혼은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고는 둘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이리하여 프시케는 마침내 에로스와 결합했으며, 둘 사이에서 딸이 탄생했는데, 이름은 ‘쾌락’이라고 불렀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결혼. 폼페오 바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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