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8)"..'인연의 길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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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8)"..'인연의 길을..(1)"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1.02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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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입성기)월평마을-대평포구,가는 곳마다 펼쳐진 자연의 경이

 

 

 

"걷는 사람은 왕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데는 고통을 당하지만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조립식 소파보다 넓은 공간을 선택한 왕..
나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던 제약과 두려움에서 내 머리와 몸을 해방시키고 싶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많이 걸었고, 참으로 먼 길이었고, 또 많이 헤맨 길이었다.

그러나 8코스는 많은 부분, 인연의 길이라고 불러도 좋을 흡족한 길이기도 했다.

2016년 12월31일.
한 해를 보내며 마지막 코스로 걷기로 선택한 제주올레 8코스.

긴 코스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길게 느껴진 것은 중간에 몇 번 헤맸고 전화기 밧데리 방전으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리라.

제주시에서 오전 9시 출발..
이날 아침 날씨는 매우 흐렸고 기온도 높은 편은 아니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지만 8코스는 남쪽이라 조금은 나으리라 생각하고 떠난 길.

1시간쯤 달려 7코스때 만났던 송이슈퍼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발스탬프를 찍었다.
오전 10시쯤이다.

몸은 무거웠지만 걷기에 나서자 몸이 또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이제 몸이 걷기를 더 즐거워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송이슈퍼앞 월평알동네라 쓰여진 정류소안내판을 지나 조금 걸어가자 진짜 8코스 시작점인 월평 아왜낭목 쉼터 포스트가 나왔다.

월평마을에는 아왜나무 군락지가 있다. 인동과에 속하는 이 아왜나무는 주로 생울타리나 방풍림으로 쓰이는 교목인데 달의 정기가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낭은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이곳에는 마침 아버지와 아들인 듯한 두 사람이 이 출발점에 서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드디어 출발했다.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이 마을 올레길은 월평화훼마을이라 안내돼 있었지만 보이는 것은 대형 한라봉하우스일 정도로 한라봉이 참 많았다.

하우스 그 안쪽으로 보이는 한라봉이 참으로 탐스럽고 보기에 좋은 곳.

노란 감귤을 느끼며 조금 더 걸어가니 고급호텔 안쪽으로 올레길이 이어져 있다.

 
 

입구에는 사유지라 이곳에 들어오려면 고객 외에는 호텔측 허가를 받으라는 안내문이 입구에 쓰여져 있었지만 올레는 그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고급진 호텔..안쪽으로 수영장이 보이는 아기자기한 호텔이었다.
이곳을 빠져 나오자 바로 18km가 남았다는 표시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바로 이어진 코스는, 3층 누각의 거대한 절이 턱 하고 나타났다.
보기에도 엄청 난 크기의 대웅전이 세상을 내려다 보듯 약천사가 그곳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약천사는 대한불교 제주도의 극락도량이다.

예로부터 절터왓으로 불리던 이곳에 1960년 김형곤이라는 학자가 신병 치료를 위해 조그만 굴에서 100일 관음기도를 올리던 중 꿈에 약수를 받아 마신 후 병이 낫자 사찰을 짓고 포교에 전념하다가 입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찰이다.

사찰 이름은 봄부터 가을까지 물이 솟는 샘물과 사철 흐르는 약수가 있는 연못 때문에 붙여졌다.

1981년 주지로 부임한 혜인에 의해 불사가 크게 일어나 1996년 단일 사찰로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적광전이 세워져 유명해졌다.

12만㎡ 대지에 대적광전과 지하로 연결된 숙소와 식당·매점 등이 있는 3층 높이의 요사채와 굴법당·삼성각·사리탑·대형분수대·연못 같은 시설이 있다.

29m 높이의 대적광전은 조선 초기 불교건축 양식을 띤 콘크리트 건물로 일반 건축물 기준으로 8층 높이지만 지하 1층, 지상 5층이 통층으로 되어 있고 법당에는 1만 8000불이 모셔져 있다.

법당 앞 종각에는 효도를 강조하는 글과 그림이 새겨진 18t 무게의 범종이 걸려 있다. 사찰에는 조선시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 영친왕(李垠), 이방자 여사 등 4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약천사는 크기도 대단했지만 종각과 북각도 2층이었고 줄 지어 서 있는 돌하르방 또한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약수를 한잔 하고 법당도 한번 더 보며 이곳을 빠져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었고 정말 큰 절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방문객도 많았고 대웅전 오른쪽 삼신각에는 스님 한 분이 앉아 열심히 독경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 거대한 약천사를 통해 뒷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나오니 다시 감귤밭 들길이 이어진다.

이제 17km가 남았다는 표시를 지나자 올레길은 바로 대로로 이어지고 있어 찻길을 건너 바다쪽으로 난 길을 따라갔다.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곳.
사진을 찍어 보니 마치 그림 같았다.

 

이제는 바다길 올레로 이어지는 코스가 나타난다.
바다가 평화로운 이곳에도 낚시꾼이 참 많았다.

자갈밭길을 따라 걷는 이 코스는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바다빛깔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곳 대포리 바닷길 올레는 거대한 용암석들이 동물의 공원이라도 되는 듯 그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제주도 어느 곳에도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돌들의 공원은 없다.
기기묘묘한 용암석들이 마치 동물의 바다공원처럼 찾는 이를 반긴다.

 

 

 

올레8코스는 이 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자연의 진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동물공원, 모든 종류의 모양새가 바다에 가득 떠 있는 곳을 따라 걷는데 동네 사람인 듯 두 분이 바닷가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이어진 길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바다를 따라 걷는 이 길은 제주도의 진면목을 자연 그대로 보여주며 올레꾼을 즐겁게 만들었다.

걷다 보니 대포포구에 다달았다.
조그만 어항이었지만 그 비쥬얼은, 작은 요트를 비롯 도약을 준비하는 자세가 단단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대포항을 지나 또다시 어이지는 바닷가 들길에는 억새와 수선화가 하얗게 피어 길 한 귀퉁이를 밝히고 있다.

대포연대라는 표석이 있는 곳을 지나면서 바다쪽을 보니 이전보다 다 큰 기암괴석이 우뚝 서서 나도 여기 있소 하고 말하는 듯 또 바다돌공원이 나타났다.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갈 길이 먼 나는 먼 발치에서 잠시 눈으로만 훑고 나왔다.

 
 

그 바닷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저쪽 멀리 지금까지 와는 내용이 전혀 다른 주상절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저게 뭐지..?“하면서 가 보니 자갈밭과 바다색과 어우러진 바닷가 주상절리가 그곳에도 있었다.
대포동의 그 유명한 주상절리 뒤편이 거기에 숨은 듯 앉아 있었던 것이다.

대포 바다의 위용을 정리해 주는 듯한 이곳에 앉아 잠시 쉬며 그 숨겨진 절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올레꾼만의 특권이다.

 

앉아서 바다를 바라 보면 바다 저 편에 마라도와 가파도가 가물가물 보여 더욱 아름답기만 했던 곳.

감상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진짜 주상절리 입구가 나타난다.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ing)란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서 다각형(보통은 4~6각형)이며, 두꺼운 용암(약 섭씨 1100도)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높이가 30~40m, 폭이 약 1k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규모면에서 최대라는 곳이다.
 

지질학적으로는 주상절리지만 행정구역으로는 서귀포시 중문동이며 이곳의 옛이름인 '지삿개' 또는 이를 살려 '지삿개바위'로 부르기도 한다.

그곳에 서면 누구나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감탄을 멈추지 않는 곳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파도가 포효하는 주상절리 입구다.
커다란 소라조형물이 이곳이 주상절리임을 말하고 있었다.

 

중국인도 가끔 보이긴 했지만 이날은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았다.

여기는 중간스탬프를 찍어야 하는 곳이다.
화장실에 붙어있는 중간스탬프 포스트.

스탬프를 찍고 걸어나오다 보니 시간체크 하는 것을 잊었다.

 

나중에 이를 알고 나는 일단 12시 30분경으로 기억해두기로 했다.

올레는 주상절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로 이어졌다.

남은 거리 14km라 쓰여진 곳에서는 공원 가득한 용설란과 함께 돌하르방과 돌기둥이 선 공원과 이어지고 있었다.

컨벤션센터의 뒤쪽길.

이 공원에는 제3차 한일중 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하여 한국 일본 중국 2020명의 10세 어린이들이 3국의 평화와번영과 우정을 기원하는 편지를 쓴 타임캡슐에 담아 2020년까지 보관한다는 기념비가 있어 뜻깊게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란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 것인가.

보는 것 만으로도 피로가 풀릴 정도로 빛났다.

이제 올레길은 제주돌담과 초가집으로 만든 특별한 호텔 더 시어즈로 이어진다.
이 정원같은 호텔의 존재는 제주도민에게도 많은 위안을 주는 곳이다.

폼나게 앉아 차를 하건 식사를 하건 여유로움을 주고 있는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호텔을 관통하며 주차장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오자 길은 건너편 베릿네오름길로 이어진다.

성천봉(베릿네오름)으로 높고 긴 계단을 오르는 길이다.

 

오르는 중간에 제주올레에서 세운 베릿네 안내문이 있었다.
배릿네란 천제연의 깊은 골짜기 사이로 은하수처럼 내가 흐른다고 해서 성천내, 별이내린 내(별빛이 보이는 내)라고 부르던 것이 베릿네가 되었다고 소개돼 있었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계단을 따라 부지런히 올랐다.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를수록 중문 앞바다는 더욱 푸르렀다.

베릿네오름(성천봉) 계단을 다 오르자 안내판에는 한바퀴 도는데 1.4km, 소요시간은 35분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다시 걷기 시작해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정상 가까이 전망대가 나타났다.
이곳 정상 전망대에는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운동하러 많이 다니는 듯 훌라후프(허리돌리기 운동기구)가 3개나 놓여 져 있었다.

 

구름사이로 보이는 백록담과 함께 이곳 전망대에 서니 이곳 역시 여기저기 큰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문관광단지이다 보니 건설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는 않을 터..
그래도 공사현장을 보면 내 눈에는 환경파괴로만 보인다.

이곳 중간쯤에 18.8km중 7km를 걸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그렇게 걸었는데도 아직 반도 오지 못했다.

저녁 늦게 종점에 도착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높은 길을 오른 후니 이제 내리막길이려니 하며 길따라 내려오는데 계단위로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솔방울이었다.

왜 그때 그 솔방울은 떨어졌을까..

그런 저런 상념속에 다시 조금 오르막길을 올랐는데 이 오름은 아주 큰 분화구를 가진 말발굽형 분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공동묘지처럼 묘지터가 넓게 자리잡고 있어 아쉬움이 컸다.

바로 아래쪽에 각종 건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아 이곳까지 집들이 쳐들어 올 기세다.

드물게 보는 아주 큰 분지가 아깝기만 한 오름이었다.

 
   
오름안에는 이곳에 자리잡은 절을 통과하도록 올레가 이어져 있었지만 사진촬영 금지라고 쓰여져 있어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건너가기만 했다.

하지만 이 때 아주 큰 계곡이 보이는 그 산책길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계곡에 내가 내려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름을 내려와 다시 아까 올랐던 출발점에 서자 올레는 그 계곡으로 내려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내심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차만 타고 건넜던 그 다리.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곡을 보고자 잠시 내려 높은 곳에서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그곳을 내려가 볼 것인가.

나는 쾌재를 부르며 그곳을 향해 내려갔다.

길은 아주 잘 만든 공원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다시 나오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올레깃발이 보이지 않아 나는 아래쪽이 아니라 위쪽 길을 택하고 걸어 올라갔다.

 

나와 보니 올레표시는 안 보이고 중문관광단지내 올레표시만 붙어 있었다.

다시 내려가던가 그냥 앞으로 직진하든가 선택해야 했다.

지도를 보고 확인해야 했다.
지도에서는 해수욕장을 따라 걷도록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색달해수욕장으로 가야 길이 다시 나올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해수욕장이 보이는 곳을 따라 갔다.

예전에는 돌고래쇼를 하던 곳에 다다르자 나무에 붙어 펄럭이는 조그만 올레깃발이 멀리 보였다.

이곳에만 유독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길은 건물 뒤편 바다쪽으로 이어졌다.

 

 

그 길을 따라 가는데..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이 나타났다.

한 여자조각상인데 포즈가 예뻐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서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지나가는 길에 그 조각상을 사진으로 남겼다.

문제는 카메라를 사용해야 할 밧데리였다.

해수욕장 입구 편의점에 가서 점심도 먹고 밧데리를 충전하려고 했다.

충전해 달라고 하니 먼저 1500원을 내야 한단다.

그래서 “여기에서 밥도 먹어야 하니 다른 것을 갖고 와서 계산한다”고 하니 “아무리 그래도 공짜는 안된다”고 대답했다.

중국인 점원이었다.

여기는 중국사람용 편의점이라는 생각에 그냥 들고 나와버렸다.

이제 제주는 중국인이 많이 오는 곳은 아예 중국인을 점원으로 채용하는 모양이다.

문화가 달라서인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인지..그곳에서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더욱이 관광단지였기에 또 어딘가 편의점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예래동까지 가는 동안 편의점은 올레길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 사진은 한 두어장 외에는 전혀 찍지 못했다.

특히 중문관광단지 입구에서 나와 예래동 입구까지 가는 구간은 올레가 아니라 신작로를 걸어야 하는 위험한 길로 자동차가 쉴새없이 다니는 대로변을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옛날 서귀포와 중문을 잇는 이 일주도로길을 따라 걷는데 참 많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2번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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