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14-1)",'숲바람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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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14-1)",'숲바람길'을..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1.31 16: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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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탐방기 14-1코스)대정읍 무릉-한경면 저지까지 곶자왈 만끽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12코스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다 보니 14-1코스를 역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하도 많이 불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불찰이었지만 그렇게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바닷가와 높은 오름을 걷는 것보다는 바람막이가 돼 주는 곶자왈 숲속이 더 좋았던 건 왜일까..

그렇게 대정읍 무릉에서 한경면 저지리까지 걷는 동안 곶자왈 지대를 3-4개 지나면서 숲에서 부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1월30일, 설날 마지막 휴일은 그렇게 엄청난 바람이 불어대는 커다란 숲 소리와 그 숲이 우는 파도소리에 한없이 파묻혀 걸었다.

 

올해 설날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명절 다음날은 흐렸고 또 밤에는 비가 왔다.

연휴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도 많이 불어  걷기를 많이 망설였다.

12코스 만큼은 꼭, 올레친구인 유인택, 김형권과 함께 걷고 싶었다.

이 코스가 주는 그 아름다운 풍광이 미리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순서대로 걸어야 하고 걷고 나면 할 얘기가 많으리라 하고 생각하며 망설인 끝에 혼자 떠난 길이었다.

 

사실 아침에는 계속 미적거리며 갈까 말까 하다가 9시가 조금 넘어 겨우(?) 무릉2리 생태문화체험골(구 무릉초등학교)로 출발했다.

다행히 길이 덜 막혀 10시10분쯤 도착한 나는 혹시나 하여 이곳에 생태체험학교룰 만들어 운영 중인 강영식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지금 학교로 오는 중인데 걷고 있으면 점심때라도 만나자”는 얘기.
나는 그러자 하고 12코스를 향해 출발했던 것이다.

11코스 종점, 12코스 출발, 14-1코스 중점인 3개 코스가 연결된 이곳에서 나는 엊그제 왼쪽으로 들어왔으니 오른쪽으로 나가면 12코스가 이어지는 줄 알았다.

바람이 엄청 불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이왕 걷는 길이니 참고 이겨내자고 마음 먹고 걷기 시작했다.

처음 골목을 나오자마자 맞바람을 맞으며 힘든 길을 걸었다.

 

 

그 길을 따라 인향동이라는 마을안으로 들어가서 이곳 올레길을 지나자 바로 곶자왈 입구가 나타났다.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숲속길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한 1-2km를 걸었나..

걸으면서 보니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안내해야 할 푸른 색 올레표시가 모두 거꾸로 안내되고 있었다.

역방향인 노란색 표시가 계속 나타났다.

잠시, 나는 이렇게 추운 날 다시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안되는데..하고 걱정하며 계속 걷는데 곶자왈이 끊긴 지점을 지나면서 보니 14-1코스라는 안내표시가 나타나 의아해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올레길을 직접 만들었다는 강영식에게 전화를 걸어 “오다 보니 14-1코스라는 표시가 나오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강영식은 “학교에서 어느 쪽으로 나왔느냐..”고 묻는다.

"오른쪽.." 하고 대답했더니..
"12코스는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11코스를 들어올 때 왼쪽이었으니 오른쪽이 12코스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11코스 종점은 학교마당 중간으로 이어져 있고, 12코스는 정문 왼쪽으로, 14-1코스는 학교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는 설명이었다.

"학교에서 보면 안내가 잘 돼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 세찬 바람 때문에 내가 이 표시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냥 걷는 수밖에..
14-1코스도 어차피 걸어야 할 길이니..미리 걷는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강영식은 다시 전화를 걸어 “곶자왈을 하나 지나면 큰길이 나타나는데 그 큰길을 지나 다시 곶자왈로 들어간 후 다시 그 곳자왈에서 나오면 전화를 하라”고 한다.

"시간이 조금 늦더라도 점심을 같이하자"고..

나는 알았다고 한 후 곶자왈 탐방을 시작했다.
이날 14-1코스를 걷는 동안 바람은 한번도 잦아진 적이 없었다.

곶자왈은 마치 바람이 부는 날이면 바닷가에 멀리 파도가 밀려오다 바위에 쾅 부딪치며 포말을 일으키듯이 이곳 나무숲이 꼭 그랬다.

 

 

 

 
 

   

멀리서 파도가 몰려오는 소리가 나면 내 앞에서 쾅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그 다음에 바람은 여운을 남기며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유독 소나무가 많았던 이곳 곶자왈은-이날에만 그랬을 것이지만-그런 특별한 묘미를 주며 걷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나의 곶자왈을 지나 아스팔트길이 나타났고 그 큰길을 지나 다음 곶자왈로 곧장 들어섰다.

 

 

처음 걸었던 곶자왈은 벌써 세 번째 걷는 코스였지만 건너편 곶자왈은 이날 처음 들어가 봤다.

이곳은 시멘트포장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 정도의 길이면 새소리라도 들리기도 하련만 이날은 나무들이 부딪치며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만 날 뿐 새들도 모두 숨죽여 숨어 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곶자왈지대를 걸어 나왔다.

강영식에게 나왔다고 전화를 하니 오설록 앞쪽으로 걸어오고 있으란다.

나는 부지런히 걸어 오설록이 보이는 건너편에 앉아 또 세찬 바람앞에서 기다렸다.

곧 강영식이 차를 타고 나타났고 강영식을 따라 간 곳은 매운 낚지볶음집이었다.
올레를 다니는 동안 처음으로 식당에 앉아 점심을 맛있게 막걸리와 함께 배부르게 먹어봤다.

 

 

 
   

강영식은 “오후 4시에 제주시에서 약속이 있는데 키를 주면 종점까지 차를 몰고 와서 같이 제주시로 들어가자”는 제안을 했다.

사실 올레 14-1코스는 올레지기를 자청하며 노력했던 강영식의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신평곶자왈 무릉곶자왈은 물론 저지까지의 이 길도 혼자 기획하면서 올레지기들과 함께 한달동안  닦은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쪽 길은 어디든 다 꿰뚫고 있는 그였다.

나로서는 종점에 가면 시작점으로 돌아 갈 일이 늘 난감한 일이었는데 다행이었다.

다만 4시까지 걸어야 한다는 부담은 없지 않았지만..

 

 

밥을 먹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오설록길을 따라 들어갔다.

차밭이 있는 곳에 놓여있는 중간스탬프 포스트에서 확인도장을 찍고 오설록 안으로 이어진 올레길을 따라 갔다.

‘뱀조심..’

이렇게 쓰여진 팻말이 오설록 안에 수도없이 걸려 있어 혹시..겨울에도 뱀이 나오나..하고 걱정했을 정도였다.

올레는 그렇게 오설록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가를 지나 차밭으로 안내돼 있었다.

차나무가 자라는 지역을 오르자 이제는 저지곶자왈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계속 가면 제주시에 속한 한경면 저지리로 통하는 길..

 

 

처음 곶자왈 지대에서 나오자 8km 정도 남았다는 표시가 나온다.

그건 제 방향으로 걸었을 경우 9km라는 표시를 보고 거꾸로 계산한 거리였다.

역으로 걷고 있으니 그쪽에서 온 거리는 내가 걸어야 할 거리와 같기 때문이다.
말 몇마리가 보이는 목장을 지나자 밭길이 나오고 그 길은 아주 작은 길을 따라 오름으로 안내한다.

오름을 오르는 길은 잘 닦여져 걷기에 좋았지만 오르막길이라 힘들게 넘어온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오르고 또 오르니 세상이 훤히 트인 곳이 나타난다.

 

돈도지오름이다.

돈돗지 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오름의 면적은 106,436㎡, 둘레는 1,335m, 높이는 260.3m이다.

작지만 아주 예쁜 오름이었다.

정상에는 통신시설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몸이 불릴 정도로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었다.
겨우 사진 몇장을 찍고 내려가야 했다.

오름을 내려오자 잘 닦여진 들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앉아 있을 때 강영식이 전화를 했다.

어디쯤이냐고..

"오름을 내려와 마을길로 들어섰다"고 하니 "그럼 다 도착한 것"이라며 나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강영식은 차에 나를 태우고는 올레길을 그대로 따라 내려왔다.

그리고, 14-1코스를 만들 때 고생했던 얘기를 뿌듯한 마음으로 전해줬다.

내 계산으로는 17.1km구간 중 3km 정도는 차를 타고 내려온 셈이었다.
적어도 1시간 정도는 걸려야 걸을 수 있는 거리다.

 

그곳을 차를 타고 따라 나와 종점 스탬프를 찍었지만 마음은 조금 찜찜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정도면 다 걸은 거나 다름 없다고 했지만 약속시간에 맞춰야 하는 강영식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 했기에 차를 타고 말았다.

하지만 곶자왈에 대한 느낌 만큼은 확실히 공부를 한 날이었다.

그 바람소리는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기억이다.

 

 

 
 

나는 바람이었지만 사마르칸트를 향해 가던 베르나르가 극심한 더위가 닥친 한여름에 투르크메니스탄을 걸었던 고행기에서도 이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중략)..살인적인 태양,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평원, 모든 게 너무 적대적이었다.
한시간 전부터 겨우겨우 지탱해 온 희망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무슨 영광을 보자고 싸우는 거지?
시련은 너무 고되고, 태양은 너무 뜨겁고, 사마르칸트는 너무 멀었다.


끝도 없는 이 길,신기루처럼 날 농락하는 이 운하, 친구의 손이 내 어깨를 살포시 잡고, 꺼져가는 에너지를 미소로 다시 지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혼자, 철저히 혼자였다.
이런 거대한 길과 대적하기에 나는 너무 작고 너무 깨지기 싶고 너무 허약했다.."


바람이 퍼붓는 들길 숲속길을 홀로 걷는다는 건 스스로의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고행의 시간과 같다.

그러나 이날 예상과 달리 가끔씩 만나는 올레꾼들을 보는 일은 올레가 주는 담대함 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다음에 걸어야 할 12코스는 실수하지 말고 제대로 찾아가야 할 텐데..

 

 

 

 

 제주올레 14-1코스

제주올레홈페이지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작 : 저지예술정보화마을(웃뜨르美센터)
중간 :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종점 : 인향동 버스정류장

난이도

난이도 - 중
거리(시간) - 17km (5~6시간)

곶자왈에서 길을 잃으면 위험하므로, 표식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코스 내에 인가가 없으므로 혼자보다는 두 명 이상이 함께 다니는 것이 좋다.

식당이나 상점이 없으므로, 반드시 도시락과 물, 간식을 미리 준비해서 가야 한다. (* 일부 구간은 통신장애가 발생할 수 있으며, 코스 내 곶자왈 지역은 여성 혼자 걷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부득이한 경우, 제주여행 지킴이단말기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지에서 무릉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무성한 숲의 생명력, 초록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길이다.

저지마을을 떠난 길은 밭 사이로 이어지다 이내 숲으로 들어선다. 순한 말들이 풀을 뜯는 문도지오름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봉긋봉긋 솟은 사방의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 아래 야트막하게 펼쳐진 곶자왈은 마치 잘 정리된 정원과도 같이 고분고분해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보던 그 만만한 풍경은 곶자왈 안에 들어선 순간 싹 잊혀진다. 곶자왈이 품고 있는 무성한 숲의 생명력이 온몸을 휘감는다.

자칫 표식을 놓치면 드넓은 곶자왈을 헤매게 되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곶자왈을 빠져나온 길은 녹차 밭 사이를 지나며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곶자왈로 발길을 이끈다. 이번에는 조금 넓은 숲길이다. 그 길은 인향마을을 지나 종점인 무릉2리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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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노을 2017-01-31 21:14:28
길을 잘못 들었다면.. 그것이 또 길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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