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15)"..'행복의 길'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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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15)"..'행복의 길'을..(1)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2.28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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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5코스 탐방기)한림항-고내포구,평화로운 아름다움이 공존

 

 

 

올레를 많이 걸었지만 걷고 난 후에도 몸무게는 줄지 않았다.
가끔은 몸무게가 느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다리에 근육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가끔 만져보는 다리의 근육은 걷기가 얼마나 몸에 좋은 운동인지 느끼게 한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엉덩이와 허벅지에는 살이 붙어야 하지 않던가..


올레걷기는 제주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가끔은 다른 곳에서 색다른 경험과 즐거움을 얻게도 한다.
가끔 오르는 오름등산 정도로는 아마, 이렇게 건실한 다리 근육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닌 남들도 그런 저런 사연이 있을 듯도 한 제주올레길은 이제 3분의 2정도를 걸은 셈이다.


지난해 11월5일 느닷없이, 무작정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에서부터 1코스를  걷기 시작한 후 지난 2월26일 15코스까지 4개월여 걸어온 거리를 계산해 보니 총 282.9km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아 있는 올레길은 모두 8개 코스.
전체 426km 중 아직 143km는 더 걸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사실 베르나르가 걸었던 실크로드 1만2천km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래도 게으르지 않고 걸었다는 데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제주시 시내권과 가까워지면서 올레길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처음부터 남쪽 먼길을 돌아 돌아, 북쪽을 향해 달려온 때문이리라.


처음은 홀로 걸었지만 한달여 전 부터는 둘이 혹은 여럿이 함께 걷게 돼 외롭지 않은 올레길이 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함께 다니게 된 올레친구들과는 1-1코스 우도올레와 18-1 추자도올레길 만큼은 가장 마지막에 단체로 함께 걷기로 했다.

 

이렇듯 걷기를 시작한 후 그동안 토요일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관계없이 걸었지만, 올레 15코스를 걷는 지난 2월26일은 바람이 조금 부는 것 외에는 아주 평탄하고 오랜 만에 봄을 느끼며 걸었던 충만한 길이었다.


이날 만큼은 지난주까지 그렇게 몰아치던 눈보라도, 엄청난 바람의 방해도 없었다.

올레길은 이미 봄맞이에 나선 듯 한껏 따뜻한 길이어서 더욱 좋기만 했다.

제주올레 15코스는 거의 밭길과 들길만으로 이어진 코스였지만, 결코 그 길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행복을 선사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기억에 남아 있다.


이날 함께 걸었던 인원은 모두 6명, 송헌 김형권과 둘둘님 그리고 안종국과 그의 아이들(수빈,예빈)이었다.

안종국은 "가다가 아이들이 걷지 못하게 되면 중간에 버스를 타고 오기로 하고" 걱정하며 떠난 길이었지만 5살,7살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걸어 주었다.

 

15코스 출발점인 한림항에 도착해 출발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0시03분경.

바로 햇살 비치는 항구를 끼고 동쪽을 향해 걷는데 길가에는 생선을 널어 말리는 모습이 보인다.
장승과 솟대가 있는 한수리를 건너는 동안 그동안 자기들의 공간,바다에 살던 재비둘기들이 가득 새로 매립해 잃어버린 공간, 시멘트로 된 땅으로 올라와 쉬고 있었다.

아마, 지금 새들이 앉아있는 그 지점이 바로 그들이 물위에 떠서 쉬던 공간이리라..

 

 

그리고 그 바로옆 바닷가에는 가마우지떼가 모여 앉아 있었다.
이 지점을 지나자 바다를 뒤로 하고 한수리마을로 들어섰다.


한수리는 1595년(선조 28) 이 지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 때 한림항 공사를 위해 한수리 가옥들이 일부 철거되고 한수리의 모래를 운반 매립했다는 곳이다.

모래 밑에서 흙이 나오고 유물이 발견되어 오래된 거주지임을 알게 됐고 1953년 한림리 일부인 연딋개와 수원리 일부인 하물개를 통합해 만든 마을이다. 한림과 수원의 중간에 위치한 탓에 이들의 이름을 결합해 한수리라 했다는 설명이다

한수리는 한적한 전형적인 시골마을 모습이었다.
정겨움이 넘치는 공간..

 

 

돌담도, 군데군데 서 있는 팽나무도, 이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이 마을과 함께 이어지는 밭길은 마을과 아예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집옆에 바로 밭이 놓여 있는 것이다.제주말로는 우영밭이라 부르는 곳이다.


이어 수원리마을회관이 나타나고 밭에는 잘 익은 양배추와 브로컬리, 양파 등이 모두 자라 풍요로움을 전해준다.

 

마을길을 따라 걷는데 밭 한 가운데에 거대한 암석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거대한 암석은 선돌로  지난 2007년도에 제주도지사가 마을상징석으로 지정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길가에는 봄을 알리듯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이제 길은 대림리로 들어선다.
큰 대로를 지나 이 마을로 들어서니 데크가 놓인 영생이물통이 나타났다.


영생이물통은 관정시설이 설치되기 전에 우마용물통과 식수용물통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극심한 가뭄대책의 일환으로 그 모습은 바뀌었고 지금은 연꽃이 가득한 연못으로 변모했다는 곳이다.


영새샘물이라고 설명된 올레안내판에는 '암반위에 고여있는 연못으로 깊이는 1미터가 넘는다'며 '옛날에는 이 연못 자리의 찰흙을 파다가 집을 짓자 자연스럽게 물통이 생기고 물이 고였다'는 설명이 소개돼 있었다.


제비들이 찾아와 노니는 모습을 보러 마을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영세서물, 영서생이물,영새샘물, 영세성물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이처럼 물이 있는 곳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물이 있는 곳은 항상 아름답다.

 

 

이 지점을 지나자 파란 나무의자가 있는 곳이 나타났다.
'이곳은 마을의 관전으로 선조들이 활쏘기 장소로 이용했다는 곳이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호젓한 이곳 의자에 앉아 커피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어진 길은 다시 밭길이다.

구불구불한 밭길 올레 모습은 그 자체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푸른 색 농산물과 검은색 현무암 돌담이 어우러져 보기에 좋은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올레 15코스가 그랬다.

가끔 나타나는 습지와 돌담 그리고 간간이 피어난 봄꽃향기들..
이 모두가 올레가 주는 봄의 선물이었다.

 

 
 

이제 길은 중산간마을인 한림읍 귀덕리로 들어서도록 안내한다.
남은 거리는 13.5km.

이어 곧 5km를 걸었다는 표시가 나타났지만 15코스의 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19.1km와 16.7km가 지속적으로 나타나 걷는데 많은 헷갈림이 있었다.

길이는 걷다보니 19.1km는 된다는  느낌이었고 다 걷고 난 후 시간적으로 계산해 본 거리는 16.7km가 맞는 것 같았다.
이 거리표시는 제주올레에서 하나로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걷는 내내 어느 게 맞는지..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기왕 올레를 걷는데,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얼마나 걸을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필요한 일이다.

 

 
 

이곳을 지나 다시 대로를 걷다 골목으로 이어진 길에 들어서니 다시 파란 의자가 놓인 곳이 또 하나 나타났다.


당연히 한번 더 쉬어가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걷는데 습지 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습은 거대한 습지로 보였지만 어쩐 일인지 이곳은 엄청난 양의 돌과 흙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아쉽고 아까운 광경이었다.

언제 고갈될 지 모르는 지하수..
이같은 습지를 하나 둘 없애버리면 지하수는 무사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제 올레길은 아직 멀기만 한 고내봉을 향해 가도록 나무로 만든 지도가 안내하고 있었다.
길은 계속 밭담이 이어진 고운 길이었고 마치 들길을 걷듯 편안한 길이었다.


12.5km가 남아있다는 표시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보니 멀리 선운정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계로 깎아버린, 볼 것 없는 바보같이 변한 계곡을 따라 이 절로 걸어가니 거대한 정사가 하나 둘씩 거대한 가람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이곳을 잠시 돌아보고 나와 들길을 따라 걷는데..
7km를 걸었다는 표시가 나왔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만난 또 하나의  계곡도, 거대한 용암을 다 깎아버려 조그만 개울 정도로 변해 있었지만 아직도 남은 공사가 있는지 굴삭기 한 대가 저 쪽에 놓여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곳을 지나니 아름다운 들길이 다시 이어진다.
이곳에 버들못농로라는 표시가 나왔다.


'주위에 버드나무가 많았던 연못으로 못 주변에서 오리가 노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여 곽지리 10경중 하나로 꼽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길이었는지 그 아름다운 못은 만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그 길만은 평화를 나눌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길을 다 나오니 이번에는 대로가 나타났다.
대로변에도 이날 여지없이 유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 밭에서는 봄내음을 맡으며 한 여인이 김을 매고 있었다.
제주말로는 그야말로  '검질 매는 아낙네(김매는 여자)'였다.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그림이 참 예쁘게 나왔다.


다시 들길로 이어지는 길.
이곳 입구에 앉아 쉬는데 지난 번 8코스 시작점 초입에서 만났던 아버지와 아들, 부자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는 척을 했더니 그들도 내가 "기억이 난다"며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 계속 쉬다가 몇 개 구간을 빼고 다시 걷고 있는 중"이란다.

 

 

올레길에서 아는(?) 올레꾼(아버지와 아들)을 다시 만난 일도 참 희한한 일이었다.

그들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 가는 길은 숲길과 들길이 이어지는 코스였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을 듯한 호젓한 들길이었다.

 
 
   

들길을 다 나오자 이번에는 납읍리로 길은 인도한다.


길가 돌담앞에는 이름모를 노란꽃(?)들이 피어있고 목련화나무에는 이미 봉오리가 맺혀 금방 터질 듯 했다.(이 노란꽃은 김평일 한라야생화회 회장에 여쭤보니 금잔화라는 꽃이라고 전해주었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납읍리마을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거의 3시가 다 돼 가고 있어 모두가 허기진 상태였다.


갈비탕, 설렁탕, 육회비빔방 등을 파는 곳이었는데..
식당주인은 "설렁탕을 강추한다"고 해서 설렁탕으로 먹었지만 음식을 먹은 후에는 아무도 맛있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남자 셋은 중매인이라는 말에 싱싱한 간천엽을 먹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용이 많아 2번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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