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견고한 성담형태..대포동 남답(南塔, 방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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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견고한 성담형태..대포동 남답(南塔, 방사벽)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3.1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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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중간 지점에 사람 형상을 닮은 '거욱대' 세워져'




대포동 남답(南塔, 방사벽)

 

 

 


대포동 남답(南塔)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위치 ; 서귀포시 대포동 마을 남쪽 끝 이창옥씨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 입구
시대 ; 일제강점기

 

 

 

진정한 풍수는 도선선사가 가르친 것처럼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이다.

결함이 있는 땅을 보(補)하는 비보풍수(裨補風水)야말로 진정한 풍수라 할 수 있다.

대포동 선인들이 풍수적 지형 조건으로 봤을 때 부족함이 있는 부분을 보(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답(塔)이다.

답은 마을 어느 지형이 비교적 허(虛)하다거나 불길한 징조가 비친다면 그 허한 방위를 보충해야 마을이 평안해진다는 비보적 풍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마을에서는 원뿔형·원통형으로 쌓아올린 것이 많은 데 비해 대포동에서는 견고한 성담 형태로 두껍고 높게 쌓았다.

따라서 원뿔형의 탑보다 조형미에서는 떨어지지만 규모에 있어서는 보다 웅대하고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기에 제격이다.

대포동의 답들은 1915년 경 고영후 이장의 주도하에 동네 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며 쌓았다고 한다.

남답(南塔)은 마을 남쪽 끝 이창옥씨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 입구에 있다. 지형이 낮은 남쪽은 2단으로 지형이 높은 북쪽은 1단으로 성담처럼 쌓았다.

하단에는 비교적 큰 돌로 쌓았고 상단으로 갈수록 돌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으며 중간중간에 큰 돌을 섞어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답 중간 지점에는 사람 형상을 닮은 '거욱대'가 있는데 이 거욱대는 ' 드르' 너머 바다 쪽을 응시하고 있다.

바다 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액(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매섭게 감시하고 있는 듯하다. 후에 남답은 4·3 사건 당시 성을 쌓으면서 성담과 연결되었다.

대포동 서북쪽 '진동산' 과수원에도 답이 세워져 있다. 규격은 높이 230cm, 길이 2100cm, 하단 너비 160cm, 상단 너비 34cm이다.

이 답은 과수원 돌담과 연결되어 있는데 컨벤션센터 진입도로를 만들면서 일부는 허물어져 버렸다. 상부에는 나무로 '거욱'을 세웠었으나 지금의 것은 후대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답은 대포 서북쪽의 허함을 보하고 그 쪽에서 오는 나쁜 액을 막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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