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로 보는 포세이돈의 기상과 자청비의 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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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보는 포세이돈의 기상과 자청비의 기백
  • 안종국 기자
  • 승인 2017.04.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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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독자적인 해양문명의 주도권을 찾자

제주 고내리의 포세이돈 큰바위얼굴

 

애월읍 고내리의 바다에 있는 포세이돈 큰바위얼굴(사진제공: 고현준 본부장)

제주도 애월읍 고내리 바닷가에는 포세이돈 큰바위얼굴이 있다. 포세이돈이 제주도에 오게 된 전설이 간간히 전해오는데,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신화란 어차피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문화가 오가면서 습합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제주도까지 오게 된 배경은 포세이돈이 바다의 신으로서 온 바다를 다 돌아보았지만, 제주바다만큼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료된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제주바다에 직접 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아테나여신과의 주도권싸움에서 패하고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죽자 지상의 관할권을 제우스에게 빼앗기고 바다의 신이 되었지만, 점차 그의 거친 성격 때문에 신으로서의 숭배와 존경심이 사라져가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자식들도 괴팍스러운 행동 때문에 인간들의 미움을 샀고,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같은 인간영웅들에게 퇴치 당한다. 포세이돈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가 뜨는 동방의 바다로 가고 싶었다.

 

포세이돈 큰바위얼굴에 대한 설명표지(사진제공: 고현준 본부장)

동방에는 그가 꿈에도 그리던 자청비가 있었다. 자청비는 곡식의 신으로서 미모도 뛰어나지만 아테나 여신같은 지혜도 뛰어났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남자로 변장도 하였고, 처세술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사랑을 위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지니기도 하였다.

포세이돈은 자신이 땅의 신이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말을 이용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굳게 확신했다. 포세이돈은 이미 농업의 여신인 데메테르를 유혹해 본 경험이 있었다. 이탈리아 포스타노 해변에서 말로 변장한 포세이돈이 모래사장을 내달리며 데메테르를 유혹하였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런데 데메테르는 켈트족들이 쳐들어오면서 신전이 무너지고, 더 이상 숭배받지 못하여 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지하세계로 갔다. 그래서 세상에는 더 이상 곡물이 자라지 않게 되었다.

자청비는 죽어서 옥황상제의 주례로 문도령과 혼례를 올렸다. 그러나 천상의 신들이 옥황상제에게 반기를 들고 무장을 한 채 반란을 일으켰다. 이 전쟁의 와중에 반란군들이 문도령을 죽이자 자청비는 구름을 타고 서천화원(西天花園)인 헤스페리아로 갔다. 헤스페리아를 서양의 신화학자들은 이탈리아반도 서쪽 오늘날 스페인 땅 어디쯤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혹자는 아프리카의 아마존 여신들의 정착지 근방이라고도 하였다.

이 헤스페리아에는 지구와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가 헤스페리스와 결혼하여 낳은 7명의 딸들인 헤스페리데스가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녀들은 헤라와 제우스의 결혼기념물인 황금사과도 지키고 있었다.

 

황금사과를 지키는 히스페리데스의 정원. 자청비가 찾아갔던 서천화원이 여기일지도 모르겠다. Ricciardo Meacci

자청비는 그곳에서 환생꽃과 멸망꽃이라는 두 가지 진귀한 식물을 구했다. 그리고는 돌아와 반란을 일으킨 하늘의 신들과 전쟁을 벌여 모두 멸망꽃을 이용해 죽이고, 문도령을 되살려 냈다. 옥황상제는 그녀의 용기와 지혜에 감탄하여 자신이 지배하는 땅 일부와 제주 바다를 상으로 주겠노라고 하면서 여기서 나오는 제물들로 세를 삼아 신으로서 하늘에서 같이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청비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기를 희망했다.

이제 그녀는 이전의 아녀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당당하고 자주적인 영웅이요 신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생명의 씨앗들인 오곡씨를 옥황상제에게 받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앞이마에는 해가 빛났고, 뒷머리에는 달, 양 어깨에는 별들이 함께 따라서 움직였다.

그녀는 농사의 신이 되어 사람을 도우며 살게 되었고, 지상에는 다시 곡식이 여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는 깜빡하고서 메밀씨를 두고 내려와 뒤에 다시 가져오게 되어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열리게 되었다.

자청비는 사랑을 위해 목숨도 버리는 강력한 생산과 번식을 상징한다. 그녀의 생식력과 번식력은 아프로디테와 닿아 있지만, 정수남의 겁탈을 거부하는 지조성도 띠고 있다.

이러한 자청비를 포세이돈이 넘보게 된 것은 어쩌면 그의 성품으로 보아 당연한 욕심일 것이었다. 비록 포세이돈이 바다의 지배권을 포함해 과거의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바다를 관장하는 그의 영향력은 강했다. 제우스가 저승까지 권력을 확대했지만, 자청비의 마음을 다잡지 못할 정도로 인간세상은 점차 삶과 죽음을 넘어 끊임없는 재생산의 지혜를 농업에서 깨달은 터였다.

포세이돈도 지진이나 화산폭발로 세상을 풍미했으나, 제주도를 포함해 화산은 잠잠해지고, 이제 사람들이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 바다를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이제 농업으로 삶을 꾸렸고, 바다가 성을 내면 포세이돈을 달래기보다는 목축의 신에게 소와 말을 바치며 거친 성정의 바다신을 외면했다.

 

포세이돈이 자청비를 찾아 처음 도착한 제주의 박수기정 해변 (사진제공: 유인택)

포세이돈은 외로웠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자청비를 만나서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획복을 꿈꾸었다. 그러나 자청비가 내려와 좌정한 제주도는 아폴론의 태양마차가 떠오르는 동방에 있어 그 사이에 커다란 대륙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제우스에게 부탁하여 하늘의 구름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구름은 해가 뜨기 전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자비로 도움은 줄지언정, 절대 권력을 나누지는 않는 신이기에 하늘을 관장하는 일에는 늘 이러한 조건이 붙었다.

밤에 박수기정에 도착한 포세이돈은 그만 해안절경에 넋을 잃었다. 바닷가 기암절벽을 따라 그는 자청비를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잊은 채 제주 해안을 한 바퀴 돌았다. 주상절리와 온갖 형상을 한 용암들이 곳곳에 즐비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달빛에 영롱한 제주 바다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는 땅에 오르지도 않고 연신 바다의 파도와 함께 몸을 철썩이며 용암에 몸을 부딪치면서 놀았다.

자청비보다도 바다에 매료된 그는 천상 바다의 신이었다. 이윽고 해가 뜨고 점차 빛나는 바다의 푸른빛에 그만 넋을 잃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바다는 그가 본 그 어떤 바다보다도 아름다웠다. 자청비를 만나야 된다는 사실도 잊고는 포세이돈은 제주 바다를 떠돌다 석양녘에 고내리에 도착했다. 결국 포세이돈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애월 고내리 바다에서 돌이 되어 굳어버렸다. 바다를 바라보며 지금도 감탄어린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포세이돈, 그가 감탄한 것은 자청비보다 제주의 바다였다.

 

풍요의 세경신인 자청비는 지혜롭고 강인한 제주도의 대표적 여신이다. 

 

탐라의 기상, 포세이돈의 기백

 

제주의 바람은 질풍과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남긴 포효들이다. 사철 드센 바람이 불어오는 제주는 여전히 포세이돈이 거센 입김을 불어대는 것이 아닐까?

제우스의 형제이자 강력한 경쟁자인 포세이돈(Poseidon)의 어원은 ‘주인’, 혹은 ‘남편’을 의미하는 ‘Posis’와 ‘땅’이라는 뜻의 ‘Da’가 합성된 것이다. 포세이돈은 결국 “대지를 뒤흔드는 신”이며, 바다의 신으로 알려진 포세이돈이 원래 땅의 신임을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이렇듯 포세이돈은 대지를 뒤흔드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의 파괴적인 기능을 담당하다가 제우스에게 밀려 땅에서 밀려나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다.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은 말이다. 그는 저승으로 납치된 딸을 찾아 헤메던 데메테르가 암말로 변신하자 포세이돈이 수말로 변신하여 덮쳤다고 한다. 이렇게 두 신의 결합으로 명마 아리온(Arion)이 태어나게 된다. 천마 페가소스(Pegasos)도 포세이돈의 자식으로, 힘차게 뒷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말을 보면 지진을 관장하는 땅의 지배자가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올림포스 시대에 이르러 포세이돈은 땅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고 바다로 영역이 밀려나게 된다. 그는 아테네 수호신 자리에서 아테나와 싸웠으나 패했고, 아르고스의 관할권은 헤라에게 빼앗겼다. 또 가이아와 함께 지키던 델포이도 아폴론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 이러한 과정은 땅의 토착신인 포세이돈이 땅에 대한 지배권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말해 준다. 한때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독주를 막으려고 헤라, 아폴론, 아테나와 연합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여 아폴론과 함께 트로이로 귀양까지 가기도 하였다.

 

포세이돈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포세이돈은 생산과 처세의 지혜보다는 자연의 거친 반항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지축을 뒤흔드는 지진을 일으키거나, 바람을 몰아붙이고 파도와 해일로 육지를 덮어버린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표면과, 해일들은 그의 성정을 잘 드러낸다. 이렇듯 폭풍과 성난 파도의 격한 감정이 잔잔하던 바다의 표면에 광풍으로 몰아치고,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지축을 뒤흔드는 지진과 화산 폭발도 포세이돈의 거친 성품을 표현한다. 제주의 화산도 포세이돈의 격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에게는 아테나의 지혜나 데메테르의 생산력이 없다. 아폴론의 이성과 제우스의 정치력도 없다. 그래서 그는 이론과 철학도 없고, 술수와 전략전술도 없다. 순간적인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하며 좌충우돌 행동할 뿐이다.

그리고 그는 현실을 잘 모르며 곧잘 낭만주의에 빠지며, 계산을 모르는 감상주의자다. 그의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고 투박함은 앞으로는 바다와 뒤로는 화산을 기대고 살아가는 탐라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대자연의 원초적인 감성이 탐라 토착민들의 힘이듯이, 초월적, 비합리적, 신화적인 제주인들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

 

포세이돈의 원시적 순수성이 탐라의 자연성과 만나면 어떨까? 그림은 '월터 크레인'의 말과 함께 포효하는 포세이돈

거친 포세이돈과 그의 자식들은 점차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제우스, 아폴론, 아테나, 아르테미스 등의 신들에게 밀려난다. 심지어 인간 영웅들인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등에게 그 자식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포세이돈의 패배는 괴물 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로 보통 상징된다. 이성의 승리이면서, 자연의 거친 환경을 문명과 문화로 길들여가는 역사의 진보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점차 인간은 대자연의 싱싱하고 역동적인 힘을 상실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제도와 사회적 윤리에 길들여진 인간은 왠지 속물이 되 가거나 왜소한 부속품으로 전락해 가는 것은 아닐까?

제주의 원시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대는 싱그러운 자연의 그 강인함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야성(野性)이 그리워서 일까? 우리가 포세이돈 해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아득한 신화가 아니라, 내 안의 그 본성이 꿈틀대어서가 아닐까?

지도를 돌려놓고 보면 이제는 제주가 한반도의 변방이 아니다. 북태평양을 향해 비전을 품고 있는 형상처럼, 포세이돈의 기백을 취합해 태평양시대를 향한 탐라의 꿈을 꾸어보는 것이 어떠하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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