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펴기칼럼]제2의 ‘하체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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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펴기칼럼]제2의 ‘하체풀기’
  • 이범
  • 승인 2017.06.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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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를 푸는 것은 장기를 푸는 데도 어깨를 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제2의 ‘하체풀기’/이범의 몸펴기칼럼 

 

 


그 동안 회원들에게 기본운동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하체풀기라고 대답합니다. 목베개를 오금에 끼고 하체풀기를 할 때 종아리가 너무 아프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처음 이 하체풀기를 하는 사람은 대체로 2~3분을 채우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련장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아파도 자기 혼자 그만둘 수가 없어서, 왜냐하면 남들은 다 참으면서 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일찌감치 포기하면 창피하니까 억지로 10분을 채우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혼자 하체풀기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같이 모여서 할 때에는 아무리 아파도 체면 때문에(시쳇말로 하면 쪽이 팔리니까) 꾹 참으면서 했지만, 집에서 혼자 할 때에는 체면이고 뭐고 차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 큰 통증을 참으면서 할 이유가 없겠지요. 공자님이 신독(愼獨: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을 말씀하셨는데, 이게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훨씬 더 통증이 덜한 기본운동도 집에서 습관을 들여 하라고 말씀을 드려도 그게 잘 안 되는데, 하물며 그렇게 큰 통증이 느껴지는 운동을 혼자 참으면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필자의 경험은 이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필자도 처음에 하체풀기를 할 때에는 종아리와 허벅지, 오금이 좀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러나 몇 번 하다 보니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발뒤꿈치와 엉덩이가 쉽게 닿았습니다. 우리 회원님들 중에는 1년이 지났어도 발뒤꿈치와 엉덩이가 닿지 않는 사람이 반은 넘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장기간 운동을 지도하다 보니 경험을 통해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운동하지 않고 어쩌다 한 번씩 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한 번씩 빠지지 않고 나와서 운동하기만 해도 몸의 상태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을 텐데, 사람들마다 각자 사정이 있어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반을 채우는 사람이 반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뜸하게 운동을 하니 1년이 지나도 하체풀기를 할 때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닿지 않게 되는 것이겠지요.

 

필자는 하체풀기를 지도할 때 시범을 보입니다. 목베개를 오금에 끼고 무릎을 꿇으면 바로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닿습니다. 하체풀기 열심히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자랑 삼아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필자에게 다리와 관련해서 이상한 증세가 있었습니다.

십 몇 년 전부터 계단을 내려갈 때 애들처럼 다다다닥 뛰어서 내려가지 못하고 한 발 내딛고 또 한 발 내딛고 아둔하게 걸음을 떼었습니다. 우리 운동을 하기 훨씬 전부터 그랬습니다. 평지에서는 잘도 걷고 산도 잘 탔는데, 계단을 내려가려고만 하면 이게 잘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잘도 강의를 하는데, 본인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런 증세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분명히 해결 방안이 있을 텐데, 그걸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남한테는 해결책을 잘도 제시하고 가르쳐 주지만, 정작 본인의 몸에 대해서는 백 프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범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고, 지금도 그런 사람 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부끄럽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습니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경험도 있었습니다. 수련생 한 분이 하체풀기를 할 때에는 엉덩이와 발뒤꿈치가 쉽게 닿았는데, 걸음걸이가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양 다리가 옆으로 벌어지지 않고 거의 붙어 있으니 걸음걸이가 엉망이었습니다. 양 다리가 적당히 벌어져야 자연스러운 걸음걸이가 나오는 것인데, 이게 벌어지지 않으니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지에서는 뒤뚱거리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걷기는 하는데,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에는 난간을 잡거나 누가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걷는 게 참 큰 고역이었습니다. 수십 년간을 그렇게 지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허벅지 ‘바깥쪽’의 근육이 심하게 굳어 있어 다리를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부족하고, 또 허벅지 ‘안쪽’의 근육이 심하게 굳어 있어 다리가 바깥쪽으로 벌어질 수 없게 꽉 잡고 있기 때문에 다리가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분이 잘 걸을 수 있게 하려면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의 근육이 부드럽게 풀어지게 해야 했습니다.

 

이 분은 하체풀기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을 시작하면 바로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닿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닿지 않았는데, 이 분은 쉽게 닿았습니다.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을 푸는 방법으로는 주먹이나 야구공으로 그 부위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이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증세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왜 되지 않는 것일까?

 

이 분은 전두환 독재 시절 1986년에 시국사건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이 시대 독재의 폭압이 준 큰 고통이이 이 분의 몸에는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지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분은 밝게 웃으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 분은 이 운동을 천직으로 알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분 좋게 밝게 웃으면서 이 일을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한 상상이 됩니다. 거의 완전히 불구의 몸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 분에게는 그 동안 해 왔던 하체풀기가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하체풀기가 좋은 운동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하체풀기를 개발했을 때에는 오금에 목베개를 끼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것과 병행해서 주먹으로 다리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오금에 목베개 또는 둘둘 만 방석을 끼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것은 다리 앞쪽과 뒤쪽의 굳어 있는 근육을 푸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지만, 다리 바깥쪽과 안쪽의 굳어 있는 근육을 푸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먹으로 다리 바깥쪽과 안쪽의 굳어 있는 근육을 때려 주게 했습니다. 나중에는 주먹으로 때리는 것보다는 야구공으로 때리는 것이 훨씬 더 힘을 더 많이 받게 해 효과가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다리 근육이 웬만큼 굳어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만 해도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이 분처럼 심하게 굳어 있는 사람에게는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아무리 기존의 하체풀기를 열심히 해도 양 다리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 이 분에게 다른 운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누워 온몸풀기’를 할 때 양 무릎을 굽혀 상체 쪽으로 최대한 끌어올려 양 발바닥을 서로 대고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이 운동을 전혀 소화해 내지 못했습니다. 무릎을 굽혀 양 발을 엉덩이 쪽으로 들어 올려서 붙여야 하는데, 이게 전혀 되지를 않았습니다. 아예 양 발바닥을 붙이는 것 자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양 발바닥을 서로 대고 누워 있게 하는 이 운동은 현대의학에서 퇴행성관절염이라고 진단하는 것 중에서 가장 비율이 많은 부위의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었습니다. 그 부위는 정강이뼈와 넓적다리뼈가 만나는 지점에서 무릎의 앞에서 뒤로 넘어가는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이 부위가 심하게 아픈 사람은 이 지점이 부어서 톡 튀어나와 있습니다. 몸이 구부러지면서 근육이 밀려 내려와 이 지점에 수북하게 쌓여서 굳어 있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몸을 펴면 아래로 밀려 내려와 쌓이면서 굳어 있던 이 근육이 위로 올라가면서 통증이 사라지게 됩니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이 부위를 만져 보면 마치 뼈를 만지는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밀려 내려와 있던 근육이 제자리를 찾아 위로 올라가 이 지점에 쌓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몸을 펴는 데는 시간이 참 많이 걸립니다. 당장 이 부위는 너무 아프고. 그래서 이 부위를 좀 더 빨리 풀어 통증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 운동법을 고안해 내게 되었습니다. 양 발을 최대한 엉덩이 쪽으로 끓어오려 양 발바닥을 붙이고 있으면 처음에는 허벅지 안쪽이 아프지 않은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차 통증이 오게 되고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통증이 심하게 올 때 이 허벅지 안쪽의 근육을 만져 보면 이게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습니다. 물론 전혀 이상이 없는 사람은 이 운동을 해도 여기가 부들부들하고 아프지도 않습니다. 돌덩이처럼 굳어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운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이들 굳어 있고 아파들 합니다.

 

너무 아파 참을 수가 없다면 양 다리를 아래로 쭉 뻗어 운동하는 자세를 풀면 됩니다. 그러면 금세 통증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다시 자세를 잡으면 됩니다. 이렇게 반복을 하다 보면 돌덩이 같았던 허벅지 안쪽의 근육이 부드럽게 풀립니다.

부드럽게 풀렸다는 것은 이 자세를 취하고 있어도 그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고, 그 부위를 잡아 보면 돌덩이 같았던 느낌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져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팠던 무릎 부위를 눌러 보면 아무리 세게 눌러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아플 때 만져지던 두툼한 살도 사라져 있습니다. 뼈만 만져진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한 근육의 줄기가 풀어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일어나서 걸으면 그 아팠던 게 사라져 있습니다. 이게 병원에서 말하는 가장 흔한 퇴행성관절염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운동을 한 번 하는 것으로 이 퇴행성관절염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아파질 가능성도 많이 있습니다. 이 근육의 줄기가 다시 굳으면 다시 아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보면 이 근육의 줄기는 한번 풀어지면 바로 다시 굳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몇 달에서 몇 년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운동을 할 때 워낙 통증이 심해 이 운동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좀 쉬었다가 다음에 다시 이 운동을 하면 통증을 덜 느끼게 됩니다. 또 다시 하면 통증이 더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릎의 퇴행성관절염이라는 것도 결국은 근육이 굳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세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리면 통증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분에게 이 운동은 해 보아야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발바닥이 닿아야 허벅지 안쪽 근육의 줄기에 힘이 가해지면서 이 근육의 줄기가 풀어지는 것인데, 발바닥이 닿지를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고민스러운 대목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제 다리와 관련해서 제 나름대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하나의 운동법에 대해 실험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이 운동을 몇 번 하니 계단을 내려갈 때 다리의 움직임이 이전보다는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아이들처럼 다다다닥 뛰지는 못하지만 예전보다는 아둔한 느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 운동과 관련해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작년 초여름부터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우리 운동을 배우기 위해 브라질에서 유학(?)을 온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우리 운동을 익혀서 브라질에 전파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25년 전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가 브라질에 정착한 분이셨습니다. 이 분은 빨리 배워서 돌아가기 위해 광화문에서 한꺼번에 두 과정(초급과 중급)을 수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연결이 되어 연신내에서 기거를 하면서 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한국에 오셔서 기거하던 곳이 강원도 인제였는데, 한번 서울에 와서 공부하고 가려면 왕복 6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다 차비도 많이 들고. 그래서 제가 권했습니다. 연신내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라고. 이 분은 연신내에 머무르시면서 1주일에 10회가 넘는 운동에 참여해 열심히 공부하고, 결국 우리 b협회의 사범 심사에 합격하고 나서 브라질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에게 제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분의 연세 때문이었습니다. 작년에 이 분의 연세는 75세였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 행세를 하면서 집안에 틀어박혀 있게 됩니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분은 사명감을 가지고 브라질에서 한국까지 오셔 공부를 해서 우리 운동을 브라질에 전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다리를 꺾고 하는 이 운동을 이 분에게 개인적으로 해 보시기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안 하시더군요. 나중에 뭐 그렇게 간단한 운동이 하체를 푸는 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이냐 의심하셨다고 제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분이 저한테 딱 걸렸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화요 아침 평생반 수업에서 참여한 모든 분들께 이 운동을 하게 했습니다. 그것도 본인이 판단하기에 더 좋지 않은 다리를 꺾고 30분 이상 하라고 했습니다. 수업 시간이 충분했다면 양쪽을 다 하라고 했겠지만, 시간 관계상 한쪽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가지고 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다른 쪽 다리도 해 보시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도 어느 한 운동법이 새로 만들어졌을 때 바로 공개적으로 그 운동법을 알리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운동이 가져올 부작용이나 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운동을 해 보게 하고 그 결과를 검증해 봅니다.

뿐만 아니라 왜 그 운동이 사람들한테 유용한지 그 원리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원리를 모르고 이렇게 하면 좋다, 저렇게 하면 좋다 하는 운동법은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운동법은 당장의 통증을 풀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방법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몸 전체의 원리를 보지 못하고 편협한 경험주의에 따라 몸의 일부만 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운동을 30분 정도 하고 나서 이 분의 반응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이 운동 예찬론자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연신내 수련원은 건물 3층에 있는데, 그 동안 3층까지 올라오는 데 어려운 게 있었다고 합니다. 계단을 올라올 때마다 두세 번 정도는 발이 계단에 걸려 앞으로 넘어질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다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운동을 한 번 하고 나니 발이 계단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수월하게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찬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 운동을 앞에서 얘기한 수련생에게 해 보게 했습니다. 다리가 아주 조금 위로 꺾일 뿐 더 이상은 올라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수련생에게 이 운동을 계속하기를 권했습니다. 이 운동을 계속 하다 보면 다리가 더 많이 꺾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조금밖에 꺾이지 않는 것은 더 꺾으면 굳어 있던 근육에 힘이 가해져 심하게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하게 아프지 않은 정도까지만 꺾게 됩니다. 약간 아픈 정도로만 꺾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만 해도 굳어 있던 근육은 아주 조금씩 풀리게 됩니다. 이렇게 아주 조금씩이라도 풀리는 게 쌓이면 결국 굳어 있던 게 많이 풀리게 됩니다.

 

이 분에게 이 운동을 하게 한 지 3~4개월 후 자세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다리가 전보다는 많이 꺾였습니다. 걷는 모양을 보니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붙어 있던 양 다리가 조금은 벌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은 많이 나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제 눈으로 볼 때에는 조금 나아진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나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운동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원리도 단순합니다. 그냥 누워서 한쪽 발을 손으로 다른 쪽 다리 아래로 잡아당겨 궁둥이까지 끓어 당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누워 있는 것입니다. 잡아당겼던 손은 놓아도 되고 계속 잡아당기고 있어도 됩니다.

다리를 푸는 데 중점을 둔다면 계속 발을 잡아당기고 있는 게 더 좋습니다.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 꺾여 있던 다리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풀려 힘이 덜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리가 풀리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게 됩니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오랜 기간 이 운동을 하다 보면 결국은 굳어 있던 다리의 근육은 풀리게 됩니다.

이렇게 결국에는 풀리게 된다면 본인이 편한 대로 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문제는 꾸준하게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꾸준히 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꼭 굳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목베개를 엉덩이에 대고 이 운동을 하면 아주 강력한 운동이 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브라질에서 오신 분이 해 보시고 알려주신 방법입니다. 허리도 끊어질 듯이 아프고 다리에도 훨씬 더 크게 자극이 온다고 합니다. 어깨까지 풀려면 팔을 머리 위쪽으로 들어 올려 손을 반만세 자세로 잡고 있거나 만세 자세로 잡고 있으면 됩니다. 그냥 반만세 자세를 하고 있어도 됩니다.

 

사람마다 굳어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이 운동을 할 때 모든 사람이 똑같은 느낌을 받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느낌을 적어 본다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무릎 위쪽의 근육이 땅기고 아팠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이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허벅지 근육이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아팠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더니 허벅지 위쪽의 근육이 편안해지면서 갑자기 종아리 근육이 상쾌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발목이 시원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엄지발가락 등 발가락이 따끔따끔하다가 그 느낌도 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제가 느끼는 것일 뿐,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각 자세마다 장단점이 따로 있습니다. 어느 곳에 중점을 두어 푸느냐에 따라 풀리는 곳이 달라집니다. 이 운동을 할 때에도 동작을 어떻게 조금씩 변형시키느냐에 따라 각 부위에 미치는 운동의 효과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직 몸의 원리를 잘 모르고 있는 사범님들은 FM식으로 꼭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장점이 있고, 저렇게 하면 저런 장점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느낌을 받으면서 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자세를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그렇게 변형시켰을 때 어떤 자극이 오는가를 느끼면서 운동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20분 정도 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더 이상 그 자세를 취하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세를 취했을 때 힘이 가해지는 근육이 이미 풀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는 다른 자세로 변형을 시키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누워 온몸풀기’를 할 때 현재 저는 팔의 자세를 여러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동안 제가 운동해 보고 다른 사람이 운동해 본 경험을 종합해 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자세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하는 얘기입니다.

우선 두 가지 방법은 ‘만세’ 혹은 ‘반만세’ 자세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그 전에 배웠던 대로 습관적으로 이 두 가지 방법 중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하라고 강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해도 효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저의 매너리즘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배운 것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어 이를 충분히 다시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운동법은 거의 다 개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게 매너리즘에 빠져 예전에 배웠던 대로 그대로 따라서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초에 이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여자들의 경우 겨드랑이 뒤쪽이 아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남자들의 경우에도 겨드랑이 뒤쪽이 아픈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브래지어의 착용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진화의 과정에서는 아래로 축 처져 걸을 때면 출렁이는 젖가슴이 정상적이었는데, 그래서 아무런 압박도 받지 않는 게 정상이었는데, 유럽 근대의 시기에 브래지어를 차는 문화가 보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원시 부족의 여자들을 보면 젖가슴을 출렁이면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래지어를 차면서 이것이 젖가슴에 압박을 가해 위로 밀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압박 때문에 젖가슴부터 그 위쪽의 근육이 굳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자들의 상체 근육을 굳게 만듦으로써 남자들보다 어깨 아픈 사람이 많게 하고, 특히 갑상선의 이상이 남자보다 7~8배 많아지게 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또 여자 분들이 겨드랑이 뒤쪽의 통증을 많이 느끼게 하는 요인도 되었습니다. 여자들에게 남자들보다 유방암이 200배 많이 생기는 것도 브래지어가 젖가슴을 압박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말에는 브래지어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차지 말자>라는 칼럼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브래지어를 차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브래지어는 유럽에서 시작돼 이미 전 세계에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람들에게는 브래지어를 차지 않으면 섹시하게 보이고 정숙한 여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브래지어를 차지 않으면 봉긋하게 솟은 예쁜 젖가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봉긋하게 솟은 젖가슴이 예쁜 것이라는 생각도 근대 유럽이 만들어 낸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브래지어 문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른 산물이고,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중뿔나게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여자 분들에게 집밖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브래지어를 풀어 놓으시라고 권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조그마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선배 부인 한 분이 오셨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자 분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겨드랑이 뒤쪽이 아프기 때문에 이 부위를 풀어 드리려고 했는데, 이 분은 이 부위가 지극히 정상이었습니다.

아주 세게 잡아도 전혀 아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고개를 흔들면서 브래지어를 차고 살면 꼭 여기가 아플 텐데 아프지 않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노브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브래지어가 여자 분들의 몸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 조금은 알려져 이렇게 노브라로 사는 분들도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겨드랑이 뒤쪽이 아픈 여자 분들의 고통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주기를 통해서 풀어 주는 것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도움을 받은 분은 며칠간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또 아파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런 도움주기의 필요성과 함께 그 한계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스스로 운동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운동은 이를 위한 더 좋은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경험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아니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원리, 즉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리를 모르고 이론 없이 몸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운동을 전개해 나갈 때 원리에 대한 이해, 즉 이론 없이 다른 데서 하고 있는 이러저러한 기술을 주워 모아서 기술적으로 퓨전 짬뽕을 만들어 내고, 이에 만족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몸에 대해 ‘모든 것이 통하는’ 우리의 이론을 세우고 해결하는 방법과 기술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여자 분들의 뒤쪽 겨드랑이 통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던 중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누워 온몸풀기’를 할 때 해 왔던 만세나 반만세 자세가 아니라 양 손을 마주잡고 있는 것이 수축돼 있던 뒤쪽 겨드랑이의 근육을 잡아당겨서 푸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아니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경험적으로 입증이 돼야 합니다. 뒤쪽 겨드랑이에 통증을 많이 느끼는 여자 분에게 누워 온몸풀기를 하면서 만세나 반만세가 아니라 양손을 마주잡고 이 운동을 해 보게 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 자세를 4~5분 정도 하게 하고 나서 뒤쪽 겨드랑이를 잡아 보니 통증이 한결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거의 아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더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얘기를 하곤 합니다. 제 손끝으로는 덜 풀린 것이 느껴지는데, 상대방은 다 풀렸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제 손에는 아직 뭉쳐 있는 것이 조금 남아 있는 게 느껴지는데, 상대방은 그 정도만으로도 통증이 없는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에 많이 굳어 있을 때 느끼던 심한 통증과 비교하면 거의 통증이 없는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게 일단 경험적으로 입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입증으로 이게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요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우연히 한 사람에게 맞아들어 갔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여러 분들에게 이렇게 운동을 해 보게 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결 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결과를 얻게 됐습니다. 또 하나 팔의 자세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자세로 하는 누워 온몸풀기를 스스로 해 보았습니다. 시간을 30분으로 잡아서 해 보려고 했는데, 결국 50분 정도를 하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운동의 사이클 때문이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렇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어딘가 아프거나 땅기는 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게 없어지고 나면 또 다른 부위가 아프거나 땅기고, 이런 과장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끝이 나타납니다. 온몸이 편안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이후로는 그 운동을 계속해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풀릴 만큼 풀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운동을 시작해서 여기까지를 운동의 한 사이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렇게 운동의 한 사이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운동을 해서 그래도 몸이 좀 부드러워진 사람만이 한 사이클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리도리를 할 때 우리 운동의 초보자들에게는 수십 번 정도만 하게 합니다.

이 정도도 이 분들에게는 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년 정도 운동을 하고 난 분들에게는 최소 500회 이상을 하시라고 합니다. 처음 500회를 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200~300회쯤 될 때에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뻑뻑해지고, 심지어는 아프기까지 하니까 포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얘기를 합니다.

“조금만 참고 더 해 보십시오.” 이 순간을 넘기면 목은 부드러워져 저절로 돌아가게 됩니다. 500회뿐만 아니라 1,000회를 해도 목에 아무런 부담도 없게 됩니다. 저는 이런 것을 운동의 한 사이클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별 부담이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큰 부담이 되었다가, 또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순간까지를 한 사이클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누워 온몸풀기’ 시 팔의 자세에 대해 얘기하자면 팔의 자세는 반만세 정도에서 양 손을 마주잡는 형태였습니다. 저한테는 이 자세가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았습니다. 팔을 더 위쪽으로 쭉 뻗어 양 손을 잡고 운동을 해 보았지만 저한테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게 제일 좋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이 자세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극히 일부 회원들에게서는 팔을 쭉 뻗어 ‘만세’ 자세에서 손을 마주잡는 동작이 더 좋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 회원들은 그렇게 운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지요.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자세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운동을 열성적으로 하시는 분에게서 당신은 손을 마주 잡고 해 보아야 아무런 자극도 오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분은 광화문 시절부터 1기 회원으로 들어와(당시 68세) 척추 펴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현재 76세). 그런데 당시 160만 원을 내고 고급반까지 다 마치고 나서 집에서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척추가 펴지지 않는다면서 저한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손을 마주잡고 이 운동을 한 시간을 해도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한 시간 이상을 해도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왜 그럴까? 그럴 수가 없을 텐데.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이 분이 다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손을 마주잡지 않고 그냥 반만세 자세로만 했더니 엄청 크게 자극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위 팔뚝이 상당히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에게 적합한 자세는 이것이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반만세 자세에서 손을 마주잡는 게 효과적이지만, 이 분에게는 그냥 반만세 자세만 취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이렇게 운동해도 되겠느냐고 저한테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그 즉시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마다 굳어 있는 곳이 다르고, 따라서 운동의 자세에 변형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강조해야 할 것은 몸을 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를 당사자에게 맞도록 조금 변형시키면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납니다.

 

이 분은 어쩌다 한 번씩 심심하면 찾아오셔서 저하고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저저번 주말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그 전에 찾아오시고 나서 한 달쯤 된 것 같았습니다. 이 날에는 제가 이 분에게 칭찬을 해 드렸습니다. “많이 펴지셨네요”라고. 그 전에 했던 기본운동만으로도 이 분은 몸이 많이 펴지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지는 못하는 지루한 시간이 1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한 달 전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달라졌다는 것은 고개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날 식사를 할 때 이 분의 고개를 보니 고개를 드는 게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숙여져 있던 고개가 많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젊은이 못지않았습니다. 이 분은 이제 앞으로 움츠러들어 있던 어깨 때문에 들지 못했던 고개가 어깨가 풀리면서 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반만세 자세로 운동하는 것도 어떤 분에게는 하나의 자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이것은 아주 특수한 것인데,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런 자세도 용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어서지 못하는 90세 노인 분에게 이 운동을 하시게 했는데, 팔을 머리 위쪽으로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양쪽 팔을 다 풀어 드려 팔을 올릴 수 있게 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올렸던 팔을 내려 가슴 위에 얹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팔과 어깨가 풀어지는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여러 번 팔을 올리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습관이 팔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팔을 내린 자세에서 운동을 하시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하면 운동할 때 몸이 아프니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지나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진다는 것을 느끼시게 되자 운동하는 데 재미를 붙이셨습니다. 하루에 30분 이상 두세 차례 운동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팔과 어깨의 근육이 노골하게 풀렸습니다. 일어서지를 못하니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셨지만,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고 목소리도 또렷해졌습니다. 책까지 읽고 계셨습니다. 이 분은 5개월 전쯤에 쓰러져 말도 거의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팔을 내리고라도 운동을 하니 일어서지는 못하셨지만, 그 이전과 같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상체가 풀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상체가 풀리려면 팔과 어깨가 풀려야 합니다. 팔과 어깨가 풀리지 않으면 상체가 우그러들어 있게 되기 때문에 상체가 잘 풀리지 않게 됩니다. 팔과 어깨가 풀리게 하려면 운동을 할 때 각 사람에 맞게 팔의 자세를 변형시켜야 합니다.

혹시 그 동안 해 왔던 대로 완전히 ‘만세’ 자세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관찰을 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무조건 과거에 해 왔던 방법만 고집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맞게 자꾸 개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제2의 하체풀기로 돌아가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항상 몸의 원리를 생각하고, 그 원리에 따라 운동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원리는 4년 전에 썼던 책 <몸, 펴면 살고 굽으면 죽는다>입니다. 몸이 구부러지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몸의 앞이든 뒤든 양 옆이든 근육이 밑으로 밀려 내려가 수축되면서 굳게 됩니다. 영양부족 등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잘 먹고 잘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이것이 사람의 몸에 이상이 생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몸을 펴 수축돼 있던 근육을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체풀기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됩니다. 허리가 구부러지면 엉덩이 이하 하체의 근육이 밑으로 밀려 내려갑니다. 나이를 드시면 엉덩이가 축 처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엉덩이의 근육이 밑으로 처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허리가 펴지면 밑으로 밀려 내려가 있던 근육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고, 봉긋하게 예쁜 엉덩이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도 성립이 됩니다. 다리 근육이 굳어 허리를 밑으로 잡아당기면 허리가 쉽게 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체를 푸는 것이 허리를 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체를 푸는 것은 허리뿐 아니라 장기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되고 어깨를 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또 어깨가 펴지면 허리를 펴거나 하체가 풀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야말로 우리 몸은 하나인 것이지요.

 

하체를 푼다는 것은 몸이 구부러지면서 수축되어 굳어 있던 하체의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원래의 길이대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체의 근육을 원래의 상태대로 늘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해 왔던 하체풀기도 이 원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목베개를 오금에 끼고 무릎 꿇고 앉아 있으면 다리 근육이 늘어나게 됩니다. 주먹이나 야구공으로 때려도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리면서 늘어나게 됩니다. 이 원리를 적용시킨다면 하체를 푸는 좋은 방법은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야 우리 운동이 더 풍부한 내용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제2의 하체풀기’로 명명한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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