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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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⑪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9.24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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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 15코스)고내포구-곽지해수욕장, 핫 플레이스 '한담'

 

 

 

 

 

동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일까..


제주동쪽 구좌읍 월정과 행원리가 최근 몇 년간 엄청난 발전을 가져와 핫 플레이스로 부각되더니 서쪽은 애월 한담지역이 급부상하고 있다.


거꾸로 다시, 반씩 나눠 걷는 제주올레15코스 B코스(고내포구-곽지해수욕장)를 걷는 지난 23일은 아주 흐린 날씨였다.

홀로 걷는 올레꾼이 많은 날이었다.

올레꾼들은 혼자 또는 둘이 걷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그들 나름대로는 만행하듯, 뭔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듯 그런 마음으로 걷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홀로 무언 가에 도전해 본다는 그런 뜻도 숨어 있으리라.

이날도 혼자 걷는 이가 참 많았다.

 

지난 23일 15코스 시작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20분경..

B코스는 해안도로를 걷는 길이라 오랜 만에 제주바다를 마음놓고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를 느끼기에 길은 온통 공사판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지 않아 걷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날씨..
해안가를 따라 걷는 동안 공유수면에 만들어지거나 만들어져 있는 구조물이 참 걱정스러웠다.

과연 허가를 받은 것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다위에 건물이 하나 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서 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해안가 절경을 마주보고 서 있는 건축물들..

 

 

 

 

경관사유화에 대한 논란이 없을 수가 없다.

더욱이 나무구조물로 만든 올레코스 애월바닷길로 이어진 목재데크는 다  망가져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지만 그 구조물은 아주 오래전에 부숴진채 놓여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수개월간 널브러진 채 그대로이다.

제주시내가 온통 공사판으로 변한 것을 보면 이곳은 왜 고쳐지지 않나 하는 의구심만 생긴다.

별로 급하지 않은 것 같은 곳에는 엄청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고 이렇게 빨리 개선해야 할 시급히 고쳐져야 할 곳은 그대로 방치하는 이 상태를 뭐라 설명할 것인가.

애월해안산책로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곳곳에 방치된 쓰러진 구조물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이 애월해안산책로는 산책로로는 최고이지만 관리는 완전 엉망이다.
이런 아름다운 산책로 끝에 한담이 있다.

급부상하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한담 입구에 이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해안가에 서 있거나 앉아 있어나 걷는다.

식당도 카페도 만원이다.
이곳에도 한치구이집이 있고 카약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전에는 무허가 음식점이었던 조그만 가게조차 북적거리는 식당으로 변해 있었다.

한담은 이제, 그야말로 만원..

 

 

 

하기야 이곳은 제주도를 축소해 놓은 듯한 곳으로 해안길이 단연 압권이다.

언젠가 장한철 해안산책로라는 다른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한담은 여전히 한담일 뿐이다.

곽지해수욕장으로 이어진 이 한담 길은 언제 가 봐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곳.

기암괴석에, 하얀 모래사장에, 용암이 흘러내린 노두에, 없는 것이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이 길을 다 걸어 나오니 곽지해수욕장이다.

하얀 모래사장에 파도가 넘실댄다.

 

 

늦은 방문객들이 바다를 향해 서서 마지막 여름을 보낸 가을 해수욕장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비가 조금 뿌리는 듯 해서 결정을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는 20분만에 한 대씩 오는 듯..
정류정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떠나버려 20분을 기다려서 버스에 올랐다.

고내리에 내려 다시 걸어 출발점에 오니 13시경..

 올레 하프를 다시 걸으면서 느껴지는 감상 몇가지..

올레코스 중 해안길은 자전거도로와 도보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넓은 길이야 서로 비켜가면 그만이지만 15코스 b코스는 그렇지가 않았다.

잠시 한눈을 팔면 자전거와 부딪칠 정도다.

 

 

더욱이 요 사이는 경계시설을 따로 설치해 길이 더욱 좁아졌다.

차로로는 자전거가 나갈 수가 없어 자칫 올레꾼과 자전거가 부딪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도 두 번이나 뒤로 달려오는 사이클팀을 보지 못해 사고가 날뻔 했다.

특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비록 자전거도로를 달린다 해도 올레꾼을 생각하여 따르릉 벨을 달아야한다.

쌩쌩 달리는 자전거가 흉기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올레리본과 올레길에 대한 배려다.

올레리본은 항상 올레꾼의 눈에 보여야 한다.

어떤 것은 주위에 여러 개가 보이는 곳도 많지만 어떤 곳은 한동안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시내에서는 그나마 괜찮지만 숲속길이나 중산간 지역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다.

올레길에서 가끔 길을 잃어버리는 일도 올레길의 묘미이긴 하지만 걷느라 지친 올레꾼에게는 무척 힘든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공사판...

올레길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는 공사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게 제주도의 진짜 모습인가 하는 걱정이 들 때가 많다.

제주도의 지속가능한 경관보호를 위해서는 특히 해안도로쪽 개발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인데..

아직 우리는 지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이런 아름다움이 다 사라져 버리면 나중에는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제주도가 제주답게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올레를 걸으면서 늘..제주도가 사라지고 있음이 몹시 안타깝기만 하다.

그들은 개발로 지금 돈을 벌고 있는 일이지만 나중에는 그보다 더한 돈을 들여 이 모두를 다 없애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고 나면 다시 찾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지금 제주도는 정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부디 올레길이라도 온전히 남으면 좋을 일이지만..
올레도 이렇게 갈수록 부산한 길이 돼 버린다면 올레길도 남아있기가 어렵기만 해 보인다.

올레도 걷고..순례길도 걸어보고..언젠가 불교순례길이나 천주교순례길을 걸어봐도 좋을 듯 하다.

 

 

박영만의 ‘인생열전’에서 8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아브라함 링컨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켄터키의 오두막집에서 태어나 일리노이주의 한 농가에서 자라났다.


그의 정직과 믿음은 정평이 나 있어 그가 주경야독으로 변호사가 되고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대통령이 된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격파하고 노예해방령을 공포하여 노예해방의 아버지로 널리 추앙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에 재선되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1865년 4월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괴한이 쏜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미국 국민들은 링컨의 서거를 애도했고 곳곳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미국의회는 링컨의 유해를 의사당 지하에 있는 로툰다홀에 안치하려고 했다.


이 원형의 지하 홀은 원래 조지 워싱턴의 시신을 모시고자 지은 것인데, 후손들이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워싱턴의 유언을 받들어 의회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수십년 동안 비어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링컨의 미망인과 그의 아들이 의회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면서 시신을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모시겠다고 했다.


의회와 행정부 관리들은 유족들의 입장을 존중해 특별열차 편으로 대통령의 유해를 스프링필드로 운구하되, 중간중간에 열차를 세워 국민들이 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5월3일 무려 12일간의 여행 끝에 링컨의 시신은 마침내 그의 고향 스프링필드로 돌아왔다.
그는 스프링필드 외곽에 있는 공원묘지 남골당에 임시로 안치해 뒀는데 그후 7년 반이 지나 링컨기념관이 완성된 1년후 시신 탈취기도 사건이 발생했다.


위조지폐 범죄단 두목인 짐 키넬리는 자기 심복부하 하나가 일리노이주 주립교도소에 수감되자 링컨의 시신을 탈취하여 이를 담보로 부하의 석방을 요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돼 모두 체포됐다.

그후 링컨기념관은 1887년 한번 보수공사를 거쳤고 1990년에는 보수의 수준을 넘어 거의 재건축을 해야할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링컨의 유해는 기념관 마당 지하에 약 1년간 안치되는데 시신도난 방지를 위해 관 외에 무게가 총 9톤이나 되는 바위를 쌓아놓았다.


그러다 1991년 9월 링컨 기념관 재건축공사가 끝났을 때 링컨의 아들 로버트는 아버지의 관을 강철로 엮어 봉한 뒤 지하 석묘에 안치하고 그 위에 수천 킬로그램이나 되는 시멘트를 부어 완전히 밀봉해 버렸다.


...오늘날 오크리지에 있는 링킨기념관 석묘위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정의가 묘비명으로 세워져 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된 미국을 상징하는 것들에는 성조기와 자유의 여신상, 금문교 등이 있고 미국을 상징하는 사람으로는 단연 조지 위싱턴과 아브라함 링컨을 꼽을 수 있다.


링컨은 미국 국민들 사이에 역대 지도자들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가 이토록 시공을 초월하여 추앙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성실함과 정직, 민중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 등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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