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굵은 가지가 잘렸었는지 커다란 구멍을 가진 나무가 있습니다.
구멍의 반은 눈으로 덮여있는데 반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안쪽에 개족도리풀이 오롯이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부지런히 온기를 내뿜으며 세상구경을 하고자 하는 풀 때문에 눈이 쌓일 수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저 식물이 개족도리풀인줄 알았냐고요?
몇 해 전부터 보아왔던 식물이기에 장담할 수 있습니다.
개족도리풀은 한라산과 남해안 섬지방의 숲속에서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족도리풀과 닮았지만 잎이 조금더 두껍고 무늬가 있어 구분이 되지요.
꽃이 땅바닥에 달라붙듯 피는데 그 모양이 옛날 혼례 때 신부들이 썼던 족두리와 닮았습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볼까요?
커다란 구멍을 가진 나무 주변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퍼부을 듯 까무잡잡합니다.
물이 흘러내렸던 비탈에는 상어이빨처럼 생긴 고드름들이 무섭게 달려있습니다.
물이 고였던 웅덩이는 벌써 얼어붙었고 그 위로 눈이 다시금 쌓여 웅덩이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고드름 밑 부분에 족제비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남았습니다.
저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일까요?
오래도록 눈이 쌓인 숲은 마치 얼어붙은 듯 혹은 겨울잠을 자는 듯 고요하기만 하지만
그 안에는 개족도리풀이나 눈 위에 흔적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동물들처럼 생명의 온기를 내뿜는 존재들이 많습니다.
(자료제공=한라생태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