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잘 자라서 검은 꽃을 피웠던 백미꽃, 다 어디로 가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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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잘 자라서 검은 꽃을 피웠던 백미꽃, 다 어디로 가 버렸나?.."
  • 김평일 명예기자
  • 승인 2020.05.2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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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4)검은색 꽃이 피는데 백미꽃이라고 부르는 들꽃..다 어디로 갔는지 한 개체도 안 보여

 

화장품하면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화장품을 떠올린다.

이는 한국 드라마와 K팝가수들이 영향이 크게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화장(化粧)의 기원을 살펴본다.

우리나라 화장(化粧)의 기원은 단군신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쑥과 마늘은 미백효과가 뛰어난 식물로 피부를 보호하고 윤택하게 하는 식물이다.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민족이 피부를 곱게 단장하고 청결을 중요시 여겼다는 반증이 된다.

삼한시대 때는 해안가사람들은 손과 발에 쪽으로 물감을 들였고 산촌사람들은 손톱과 발톱에 붉은 칠을 해서 피부를 보호했다고 한다.

또, 신에게 기도를 하기 위해 향나무 가지를 사르고 향나무 잎의 즙으로 만든 향수나 향료를 발랐다고 한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향 문화와 목욕문화가 발달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사람의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동일시하여 청결을 중요시 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 개항이 이루어진 후 개화 초기에는 일본과 청나라로부터 화장품이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1920년대 이후에는 유럽 등에서 수입된 화장품도 선을 보였다고 한다.

외국에서 수입된 화장품들은 조선의 재래 화장품에 비해 포장과 품질이 우수하고 사용법이 간편했기 때문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이와 같은 수입화장품의 인기는 우리나라 화장품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자극제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1922년에 정식으로 제조허가를 받은 관허 제1호인 박가분 이후로 서가분, 장가분이 생산되었고 그 외에도 미용백분과 서울분, 설화분등이 발매되었으며 배달기름(머릿기름), 연부액(미백로션), 유액(밀크로션), 연향유, 밀기름 등도 잇따라 시판되었다고 한다.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화장품연구에 투자를 한 결과 현재는 우리나라 화장품이 한류와 K팝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화장품이 되었다.

한류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발전을 한 화장품 회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자생을 하는 식물에서 천연물질들을 추출하고 이를 통해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고 피부보습과 피부미용에 탁월한 화장품들을 속속 개발해 내고 있다.

피부 진정과 피부 장벽을 탄탄하게 하는 천연물질인 ‘백미꽃 추추물’도 화장품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백미꽃 추출물’은 백미꽃에서 추출한 천연물질이다.

 

백미꽃이라고 하면 순백인 꽃으로 결혼식 때 여자들이 입는 하얀색 드레스가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사전을 보면 백미(白眉)라는 말은 ‘흰 눈썹이란 뜻으로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흰 눈썹이 최고야'라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임금인 유비가 신하들과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다.

한 신하가 “이번 작전으로 형주, 양양, 남군 땅을 차지했으니 우리의 승리가 코앞에 있는 듯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유비는 “이제 넓은 땅을 차지했으니, 이 땅을 오래도록 잘 다스릴 방법이 필요하지 않겠소?”하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한 신하가 “새로 얻은 땅을 오래도록 지키시고 싶다면 우선 어진 선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한 신하는 과거 유비가 위급했을 때 목숨을 걸고 두 번이나 구해주었던 유비가 고마워하는 신하였다.

그 신하는 “지혜롭고 총명하며 사람들을 이끌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유비는 그 신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땅을 차지할 때는 전쟁을 잘하는 장군과 치밀한 작전이 필요하지만 그 땅을 다스릴 때에는 어진 선비가 필요하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신하는 “형양에 마씨 오형제가 있는데 모두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롭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마량이라는 사람이 평판이 제일 좋으니 그 사람에게 일을 맡겨 보십시오.”라고 했다.

유비가 형양 땅에 사는 마량을 모셔오라고 신하를 보냈다.

유비가 보낸 사람이 형양 땅에 이르러 지나가는 사람에게 “혹시 마씨 오형제를 아십니까?”라도 물으니 “형양 땅에서 마씨 오형제를 모르는 사람도 있소?”라고 하면서 당연히 아는 것을 왜 묻느냐는 듯 의아해 했다.

“그러면 마량도 아십니까?”라고 했더니 “아! 백미!”라고 한다.

신하가 “예? 백미요?”라고 되물으니 “마량이 백미라오! 눈썹이 하얘서 백미라고들 부르지.”라고 한다.

그 사람은 “마씨 오형제 중에는 눈썹이 하얀 ‘백미’가 재주도 가장 많고 인품도 제일이라오.” 라고 한다.

유비가 보낸 사람은 쉽게 마량을 찾아 그를 유비앞에 데려올 수 있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여럿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킬 때 ‘백미(白眉)’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백미(白薇)에 대한 전설도 있다.

중국의 전국시대 때 백성들은 전쟁 중의 생긴 패잔병과 도적떼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당했다.

남편이 병이 들어 피난마저 갈 수 없었던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전쟁에 패한 병사가 찾아왔는데 식사 대접도 하고 그를 숨겨주었다.

패잔병을 뒤쫓아 온 병사들이 들이닥쳐 패잔병을 내놓으라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남아있는 가재도구를 모두 불사르고 가버렸다.

이 제 살아갈 힘조차 없어져 자포자기한 부부를 병사는 남편의 병을 살펴보더니 타원형으로 생긴 잎사귀와 검붉은 꽃이 달린 약초를 한 다발 캐서 주며 약초를 달여 먹이도록 부탁을 하고 떠났다.

떠나가는 병사에게 부부는 고맙다고 하면서 이름이라도 알려 달라고 하니 병사는 자기 이름이 백위(白威)라고 말하고는 떠났다.

그 병사의 말대로 했더니 남편의 병이 나아서 약초를 주고 떠나간 병사의 이름을 따서 그 약초를 '백위(白威)'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이후 사람들에게 이름이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백미(白薇)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백미는 한방에서 부르는 약초이름이고 약초가 되는 식물 이름은 백미꽃이라고 한다.

백미꽃이라는 이름은 한약재인 백미(白薇)와 하얀 눈썹인 백미(白眉)를 구별하기 위해서 백미에 “꽃”자를 붙여서 식물명으로 백미꽃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백미(白眉)와 백미(白薇)는 이름이 비슷하고 백미꽃에도 백(白)자가 들어가서 누구나 백미꽃의 꽃색은 흰색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백미꽃을 보게 되면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백미꽃을 으레 흰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꽃색이 짙은 자주색으로 검은색에 가깝기 때문이다.

왜 검은색꽃이 핀 식물을 백미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저도 처음 백미꽃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했다.)

 

대부분 식물들은 꽃색으로 이름을 정한 경우가 허다하다.

흰색꽃이 피는 식물들은 ‘흰 또는 은(銀) 그리고 백(白)’이라는 글자를 쓰는 걸로 인식이 되고 있다.

백합(百合)은 흰색꽃이 연상되고 흰제비란이라고 해도 흰색꽃이 연상된다.

난초중에 은난초도 바로 흰색이 연상된다.

백미(白薇)는 검은 자주색 꽃이 피는 식물이다.

한약재 백미(白薇)는 ‘뿌리가 가늘고 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약재로서 뿌리의 색이 흰색이라서 백미라고 불리는 식물에 ‘꽃’자를 붙여서 식물의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 식물명 백미꽃이다.

 

검게 변해버린 얼굴

그렇다고 흑미라고 부르지 마세요.

비록 흰 눈썹은 없을지라도 백미라고 하니까요.(이하생략)

(유유님의 시 백미 일부를 옯기다.)

 

백미꽃은 오름사면이나 들판에서 보이는 식물이다.

이 식물이 서식지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백미꽃이 몸에 좋은 한약재이므로 남획을 해서 사라지고 있고 한약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제초를 해서 없애 버린다.

백미꽃은 매년 5월이 되면 검은색 꽃을 피우는데 꽃이 필 때쯤 찾아가보면 대부분 장소에서 백미꽃들이 제초작업으로 베어지고 없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다 들판 구석지에서 살아남은 백미꽃 한두 그루를 보는 게 고작이다.

백미꽃이 지금 제주땅에서 사라져가는 식물이라는 인식보다는 소와 말을 기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목초재배에 지장을 주는 잡초라고 생각을 해서 제초해서 없애버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백미꽃의 서식지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올해도 백미꽃을 찾아 나섰다.

백미꽃은 한번 뿌리를 내리면 자자손손대대로 같은 장소에서 자라고 꽃이 피기 때문에 이 식물이 있는 곳을 안다면 찾기가 어렵지 않은 식물이다.

매년 보아 온 서식지라서 백미꽃을 찾는 것은 식은죽 먹기이다.

그런데 작년까지 잘 자라서 검은꽃을 피웠던 백미꽃이 올해는 안 보인다.

어디로 살아졌는지 알 길이 없다.

꽃색이 아름답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꽃이므로 제초를 하지 않는 오름사면에 있는 백미꽃들은 그대로 있겠지 하고 찾아갔는데 올해는 보이질 않는다.

백미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몸값이 나가는 식물로 한약재로도 사용하지만 요즘 인기상승인 화장품원료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화장품회사에서는 백미꽃을 계약재배하기 때문에 야산에 몇 개체 남아있는 백미꽃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이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서 캐어 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개인이 캐어 갔던지 아니면 목초재배에 불필요해서 잘라버렸던지 제주의 산야에 남아있는 백미꽃을 볼 날도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안남은 백미꽃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생각을 해보지만 뽀족한 답이 생각나질 않아서 답답한 마음뿐이다.

답답한 마음을 유유님의 시로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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