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삼천서당 세우고 학문 장려.. 이도1동(원래 일도1동) 노봉 김선생(김정)흥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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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삼천서당 세우고 학문 장려.. 이도1동(원래 일도1동) 노봉 김선생(김정)흥학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04.05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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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목사는 화북포구를 증축했고, 삼사석을 정비하기도 한 사람이다.

이도1동(원래 일도1동) 노봉김선생(김정)흥학비

 

蘆峯金先生興學碑
위치 ; 이도1동 1421-1. 오현단
시대 ; 조선(1893년)
유형 ; 비석(흥학비)
규격 ; 높이 91.5cm, 폭 50cm, 두께10.5cm

이도1동_노봉선생흥학비
이도1동_노봉선생흥학비뒷면

 

영조11년(1735)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삼천서당을 세우고 학문을 장려했던 노봉 김정을 기리는 비석이다. 고종30년(1893) 삼천서당(일도1동 1198-8) 안 존현당에 세웠던 것인데 삼천서당이 헐리면서 오현단 경내로 옮겨졌다.

김정 목사는 화북포구를 증축했고, 삼사석을 정비하기도 한 사람이다. 화북포구에도 김정 목사의 선정비가 남아 있으며,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노봉문집이 전하며,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창마을에 그가 지은 노봉정사(蘆峯精舍)가 남아 있다.


영조는 전라, 충청, 경상도에 영을 내려 그의 시신이 제주에서 경북 영주 오록으로 갈 때까지 각도 역군들이 흔들림 없이 절도사의 예를 다하여 도착시키도록 한 관문(關文)이 가문에 보관되어 있다. 제주 유림들이 장지까지 따라갔으며 오록에는 제주에서 가져간 솔씨를 심어 자란 소나무숲이 있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先生諱정(亻+政)英廟乙卯莅州有淸德以興學爲己任創三泉齋 凡水石品題皆手澤也 嗚呼先生丁巳九月三日卒于禾北館 追享永惠祠 辛未撤祀後癸巳 爰竪短碣 以寓追慕距 乙卯 一百五十九年十月日也

(선생의 이름은 정(亻政)이니 영조 乙卯(1735)에 이 고을에 부임하여 청덕이 있었다. 흥학을 자기 임무로 삼고 삼천재를 창설하였는데, 무릇 水石泉이라 題한 것은 모두 손수 한 말이다. 아아! 선생은 丁巳(1737) 9월3일에 화북진에서 사망하셨고, 영혜사에 추향되었다. 辛未(1871)에 제사를 철폐한 뒤 癸巳(1893)에 短碣을 세워 추모한다. 을묘로부터 159년 되는 10월 일)


노봉 김정(金 亻政)은 풍산김씨. 영천에서 출생하여 숙종22년(1696)에 진사에 올라 숙종34년(1708) 문과에 급제했고, 양사를 거쳐 제주목사로 근무하다가 임기가 만료되어 떠날 무렵 후풍관에서 과로로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사서와 송나라 유학을 독실히 공부했는데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청렴 근검했다. 오록에 노봉정사를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http://cafe.daum.net/hongbokkyo 풍산김씨노봉정사 이야기)
《작성 110625, 보완 130725, 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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