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옛날 전통 방식 성창 모습 남아..월령리 원룡포,아문질개(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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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옛날 전통 방식 성창 모습 남아..월령리 원룡포,아문질개(포구)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7.13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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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삼현도」에서는 원룡포를 판포와 배령포 사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월령리 원룡포,아문질개(포구)
 

위치 ; 한림읍 월령리 330-1번지 서쪽 바다. 마을 전체에서 보면 북쪽이다.
유형 ; 어로시설(포구)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월령리_원룡포

 

원룡포는 지금의 한림읍 월령리에 있는 개창을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원룡(元龍)이라는 지경 이름 또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원룡포를 판포와 배령포 사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마을 이름인 한림읍 월령리의 월령과 원룡은 서로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림읍지에 따르면 월령 마을의 옛이름이 아문질이어서 아문질개라고도 한다. 옛 뱃자리는 매립하여 해녀탈의장을 만들었다. 옛 뱃자리가 있을 때에는 개창원 쪽으로 뱃길이 나 있었다.


한림읍 월령리 마을의 바다 밭은 서쪽 한경면 판포리와 경계점인 앙쳉이에서부터 동쪽 한림읍 금릉리와 경계점인 진여까지이다. 그 안에 포구가 있다.

포구 주변에는 앙쳉이, 상코지, 검덕머리(해변), 도로소(물웅덩이), 지방여, 쉐눅는빌레(소가 눕는 빌레), 조럭코지(개창의 자연적 방파제), 보말낭원, 진여 등이 있다.


조럭코지에 의지하여 만든 원룡포는 조간대 중층에 걸쳐 있었다. 썰물 때에는 포구에서 서쪽 130m 지점에 있던 도로소를 보조 포구로 이용하였다.

원룡축항은 4·3사건 당시 마을의 젊은이들을 잡아 놓기 위해 대대적인 포구 축조 공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지방여와 쉐눅는빌레까지 방파제를 만들어 놓았다. 북서쪽으로 길쭉하게 축조되었는데 3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원래의 포구는 맨 안쪽 공간으로 보이며 점차 둘째, 셋째 칸으로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칸과 둘째 칸의 사이에는 옛날 전통 방식으로 쌓은 성창의 모습이 남아 있다.
《작성 1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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