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경칩입니다.
바람도 잔잔하고 햇살이 좋은 오늘은 진정 봄 날씨 같습니다.
문득 연분홍 왕벚나무 꽃잎이 떠올라 왕벚나무자생지로 달려갔습니다.
겨울눈들이 얼마만큼 부풀어 올랐을지 궁금해졌거든요.
그런데 너무 일찍 찾아왔나 봅니다.
나무에게서 별다른 변화를 못 느끼겠으니 말입니다.
멋쟁이새가 커다란 나무의 꼭대기쯤에 매달려 지저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새는 동료들을 부르는 듯 열심히 지저귀다가 잔가지를 연신 쪼아댑니다.
새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던 순간
새는 뒤쪽 숲에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놓치지 않고 따라가 보았지요.
그곳에도 역시 나이든 왕벚나무가 있었습니다.
열 마리가 채 되지 않는 멋쟁이새들이 나무에 흩어져 앉아 있더군요.
자세히 보니 새들은 왕벚나무의 겨울눈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에 앉으면 옆으로 조금씩 옮겨가면서 그 가지에 있는 겨울눈들은 모조리 뜯어먹고 있습니다.
잎눈, 꽃눈 구분 없이 마구 먹습니다.
새가 매달린 가지에는 드문드문 붉은 상처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먹을 열매가 모자랐는지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날 봉오리들을 뜯어먹어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왕벚나무에 달라붙어 도무지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새들이 얄밉기만 합니다.
'훠이~ 훠이~, 이제 그만 먹어라!'
올해 벚꽃이 시원찮게 피면 모두 이 새들 때문이리라!
야속한 새들!
(글 사진 한라생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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