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주4․3 전국유적지 순례를 떠나며
상태바
(기고)제주4․3 전국유적지 순례를 떠나며
  • 임계령
  • 승인 2011.05.12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계령(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


임계령(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
제주4․3은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이자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인 무차별 토벌로 참혹한 인명피해를 낳았다. 제주도민들은 섬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3년간 제주도민 27만 여명 중 최소 3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불에 타버린 마을만도 150여 곳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해방이후 도민들이 꿈꾸었던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수립의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제주4․3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추모 등에도 적용될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끝인가? 아직 끝이 아니다. 제주4․3문제의 해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몇 가지 생각하여보자


우선 제주4․3으로부터 얻은 교육이나 정신이 모호하다 그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희생된 이유에 대하여 의문점을 던져야 한다. 물론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의해 저질러진 희생이라 평가하고 추모하는 일이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1948년 제주도민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봉기를 일으켰고 그에 대한 미군정과 정부의 탄압이 제주도민에 대한 대규모 살상으로 이어졌다.


평화 ․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와 더불어 민족통일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제주4․3은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 설 수 없다는 순수한 열망을 실현하려던 저항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계량화 할 수없는 심리적, 물적, 정신적 피해를 몰고 왔지만, 제주도민의 자존심은 짓밟는 친일세력의 척결과 민족분단을 막으려 했던 봉기의 슬로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제주4․3은 아직도 희생자로 결정되지 못한 분들이 있다. 이 들 대부분은 형무소 수형자들이다. 당시 형무소 생활을 경험했던 분들의 공통적인 증언은 재판을 받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모진고문과 구타가 이어졌고 자기가 무슨 죄를 인정했는지 조차 모른다. 더군다나 무슨 죄로 몇 년을 형무소에 살아야 하는지도 형무소에 가서야 간수가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재판이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전쟁 발발 후 형무소 및 그 지역에서 집단학살에 희생되었다. 그 희생자들의 명예는 반드시 국가가 지켜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유족들이 나서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사건진상규명법)을 개정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 동안 제주4․3연구소나 시민단체들이 많은 참여와 지원을 해주었다.


이제부터는 유족들이 나서서 구천에 떠도는 희생자 한을 푸는 일에 직접 나서야 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된 개정운동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동안 피해의식과 좌절로 어두운 과거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하게 희생자 및 피해자의 유족으로써 권리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순례를 통해서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들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반성과 함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본다.


2011년 5월 13일

임계령(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