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제주중앙여고 동쪽.. 이도2동 연로과원(멸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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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제주중앙여고 동쪽.. 이도2동 연로과원(멸실)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10.1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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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5개 방호소(별방, 수산, 서귀, 동해, 명월)에 과수원을 설치하여 소속 군졸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이도2동 연로과원(멸실)터

延老果園터
위치 ; 제주시 이도2동 제주중앙여고 동쪽 박석내 일대
시대 ; 조선
유형 ; 산업시설(과수원 터)

이도2동_연로과원터


제주 감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문종6년(1052) “三司奏耽羅國歲貢橘子改定一百包子永爲定制從之”(삼사에서 아뢰기를 탐라국에서 해마다 세공하는 감귤의 양을 100포로 정하고 길이 정제로 삼으소서 하니 그에 따랐다.)라고 한 고려사의 내용이다.


조선시대 들어 果園이 본격적으로 설치되었는데 嘉靖丙戌(중종21년=1526)의 일이다. 이 해 4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수동(李壽童)은 조정에 진상하기 위해 감귤재배를 독려하였다.

도내 5개 방호소(별방, 수산, 서귀, 동해, 명월)에 과수원을 설치하여 소속 군졸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당시 과원은 이수동 목사의 소속 군졸 등에 의해 관리되었다.


과원은 그 후에도 계속 증설되었는데 과원 현황을 『耽羅志』에는 “輿地勝覽에 의하면 새로 증설할 때의 과원은 제주 19곳, 정의 5곳, 대정 6곳이었는데, 지금은 제주에 3곳, 정의에 2곳이 더 증설되었다.”고 하였다.


아마 이도2동 관내에 있었던 과원 연로(延老)도 이 때에 존재하지 않았나 한다. 耽羅志의 기록에 의하면 “延老 ; 在州南五里 柚三十五根 山橘九根 靑橘九根 楮百三十根 漆百十根 冬栢十九根”(연로 ; 제주 남쪽 5리에 있다.

유자나무 35그루, 산귤나무 9그루, 닥나무 30그루, 옻나무 110그루, 동백나무 19그루가 있다.) 연로라 하는 곳은 현재 제주중앙여고 북쪽과 서북쪽을 일컫는 것으로 볼 때 이 일대에 있었던 과원이라고 할 수 있다.(二徒2洞誌 186~187쪽)


한편 오창명(제주일보091221)은 “조선시대에 제주목에 속한 延老果園(연로과원)은 18세기초의 ‘한라장촉’과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지명은 간행된 자료집에서 거의 확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읍지를 번역하면서 이곳을 제대로 비정한 자료도 거의 없는 듯하다. 제주시 이도2동 지구 도시개발사업지를 조사하다가, 이곳 일대에 있는 몇 개의 비문에서 延老員(연로원)이라는 지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延老員(연로원)은 ‘연로[열로] 지경’이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이곳이 바로 연로과원이 있던 터인 것이다. 이곳은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동쪽, 그러니까 산짓내[산진내]의 중류인 박석내[박성내] 일대를 이르는 지명이다. 그러니까 이곳 일대에 연로과원이 있었다가 없어졌다. 그리고 과원이 없어지면서 지명도 사라져버렸다.”라고 주장하였다.

비석에 그런 지명을 새겼다면 오창명의 주장대로 제주중앙여고의 동쪽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작성 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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