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9-3)-9.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오호도(嗚呼島) 이수(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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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9-3)-9.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오호도(嗚呼島) 이수(二首)'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5.0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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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이이서 계속)

나.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선비들이 오호도(呼島)를 노래함

결국 ‘오백장군(五百將軍) 설’의 주요 모티프(Motif)로 작용한 이야기의 주요 무대는 중국 동해의 한 작은 섬이었다.

그곳의 지정학적 형세가 제주도를 닮아있음은 작은 섬이면서도 산이 높이 솟아 있기 때문이다. 곧 제주 섬에 한라산이 위치함을 연상시키게도 한다.

이곳은 실제 알려지기로는 발해만 쪽에 있는 오호도(嗚呼島) 혹은 반양산(半洋山)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지리부(地理部) ‧ 도(島)>편에 보면 오호도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전횡(田橫)은 의사(義士)이다. 바다의 섬 안에서 죽으니 후인들이 그들을 슬프게 여겨 그 섬을 오호도(嗚呼島)라 불렀다고 한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홍주(洪州) ‧ 해주(海州)의 바다 가운데 잉질분도(芿叱盆島)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오호도(嗚呼島)이다.’라고 한다.

아마 방언에 잉질분(芿叱盆)이란 말이 오호(嗚呼; 슬프다)의 뜻에 가깝기 때문에, 억지로 갖다 붙여서 하는 말일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개국 초기에 북경에 가는 사신이 반양산(半洋山)을 지나가다가 배가 침몰하였다고 한다. 반양산은 오호도에 있으니 대체로 우리나라와는 그 거리가 멀 따름이다.

[田橫義士 死海島中 後人哀之 號曰嗚呼島 俗傳 洪州海州海中有芿叱盆島 乃是嗚呼島云 盖以方言 芿叱盆 近於嗚呼之義 故附會而爲之說也 昔國初朝京使臣 過半洋山舟敗云 半洋山在鳴呼島 盖距我境爲遠耳]”

이 설명에 따르면 오호도란 섬은, 조선에서 중국으로 파견한 사신들의 행렬이 북경을 향해 이어질 때면 요동을 지나 발해 쪽 마주 보이는 곳에 있어 볼 수 있었다는 말로 이해된다.

곧 조선의 중국 사절단의 행로가, 청(淸)나라가 들어서기 이전까지는 육로가 막혀 요동반도(遼東半島)의 여순(旅順)을 거쳐 바닷길을 배를 타고서 건너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등주(登州)에 이른 다음 다시 육로나 혹은 운하길을 이용해 남경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이를 알기 쉽게 통일신라 때의 지도를 참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7)> 통일신라와 당(唐)의 해상 교통도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해 보아야 할 사항은 ‘오호도’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 중국에서 전횡도(田橫島)라고 불리는 산동반도 청도(靑島) 위쪽에 있는 곳과는 그 위치가 현저히 다르다는 점이다.

<그림 (8)> 지도상 중국이 주장하는 전횡도(田橫島)의 현 위치
–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한 청도시(靑島市) 인근 지역

 

이에 대해 특별히 여말선초(麗末鮮初) 때 우리나라 사신으로서 중국에 다녀오다가 그곳 오호도(嗚呼島)를 지나면서 그 감회를 시문으로 남긴 사례들이 몇몇 있다.

예컨대 정몽주(鄭夢周) ‧ 정도전(鄭道傳) ‧ 이숭인(李崇仁) ‧ 권근(權近) ‧ 이첨(李詹)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참고로 그들의 문집을 통해 전해진 ‘오호도’ 관련 시문의 시들을 차례로 소개해 본다.

 

(1)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오호도(鳴呼島) 이수(二首)>

 

三傑徒勞作漢臣(삼걸도로작한신) 삼걸(三傑)이 다만 한신(漢臣)이 되었건만

一時功業竟成塵(일시공업경성진) 한 때의 공명도 한바탕 티끌일세.

只今留得鳴呼島(지금류득명호도) 지금도 오호도에 전하는 전횡의 슬픈 의기

長使行人淚滿巾(장사행인루만건) 나그네의 옷깃에 눈물을 적시누나.

五百人爭爲殺身(오백인쟁위살신) 오백인(五百人) 다투어, 일 따라 몸 바치니

田橫高義感千春(전횡고의감천춘) 전횡(田橫)의 높은 의기 천추에 빛나누나.

當時失地夫何責(당시실지부하책) 그 당시에 땅 잃으니 누구의 책임이던가

大漢寬仁得萬民(대한관인득만민) 한(漢)나라가 어질어서 천하를 얻었구나.

※ 운자 : 평성(平聲) ‘眞(진)’운 - 臣, 塵, 巾, 春, 民

<그림 (9)>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초상화 (*일본 천리대 소장본)

 

고려말 명(明)나라가 건국되면서 정몽주 일행의 사신 행차는 신라 때부터 있어왔던 뱃길로 남경(南京)에 이르는 노정을 선택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정몽주는 모두 세 차례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처음은 공민왕 21년(1372) 때였는데 서장관(書狀官)으로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면서 일행 12인이 익사했지만, 정몽주는 다행히도 명나라 구조선에 의해 구출되어 이듬해에 귀국하였다.

그 후 고려 우왕(禑王) 10년인 갑자(甲子, 1384)년에 성절사(聖節使)로 정도전(鄭道傳)과 함께 명나라를 다녀왔고, 2년 뒤인 우왕 12년(1386)에도 다녀왔다. 이 이후 뱃길로 사신 가는 선비들은 전횡과 오백의사의 고사를 주제로 시를 짓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2)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의 <오호도(嗚呼島)의 전횡(田橫)을 조문하다[嗚呼島弔田橫]>

 

曉日出海赤(효일출해적) 새벽 해 붉게 바다 위를 솟아올라,

直照孤島中(직조고도중) 외로운 섬을 곧장 비추이고 있네.

夫子一片心(부자일편심) 전횡 선생의 한 조각 붉은 마음이야

正與此日同(정여차일동) 정히 이 해와 같아 밝게 빛나리라.

相去曠千載(상거광천재) 몇 천 년이나 서로 떨어져 있었건만,

嗚呼感予衷(오호감여충) 아아 나의 충정 실로 느껴진다오.

毛髮堅如竹(모발견여죽) 머리칼이 치솟아 대나무같이 뻣뻣해,

凜凜吹英風(늠름취영풍) 으스스 영풍(英風)이 불어온다네.

※ 운자 : 평성(平聲) ‘東(동)운’ - 中, 同, 衷, 風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의 <봉사잡록(奉使雜錄)>에 실린 기록을 보면, 그는 “갑자(甲子, 1384)년 가을에 전교부령(典敎副令)으로서 성절사(聖節使) 정몽주(鄭夢周)를 따라 명(明)나라에 들어갔다.[甲子秋公以典敎副令從聖節使鄭夢周入]”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뒷사람의 평에 ‘이 네 글귀는 침웅(沈雄)하고 뇌락(磊落)하여 전횡(田橫)의 정기(精氣)가 위로 하늘을 뚫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按後人評曰此四句沈雄磊落想見田橫精氣上徹霄漢]”라고 소개하고 있다.

 

(3)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의 <오호도(嗚呼島)>

 

嗚呼島在東溟中(오호도재동명중) 오호도 어디메뇨, 동해 바다 한 복판,

滄波渺然一點碧(창파묘연일점벽) 아득한 창파 속에 새파란 한 점,

夫何使我雙涕零(부하사아쌍체령) 무엇이 날 시켜 두 줄기 눈물 흘리게 하나

祗爲哀此田橫客(지위애차전횡객) 저 전횡(田橫)과 그 문객(門客)들 때문이로세.

田橫氣槪橫素秋(전횡기개횡소추) 전횡의 기개가 가을인 듯 시원하고 엄숙해

壯士歸心實五百(장사귀심실오백) 심복(心腹)한 장사들이 자그만 치 5백 명,

咸陽隆準眞天人(함양융준진천인) 함양(咸陽)의 코 큰 분, 하늘서 내린 사람

手注天潢洗秦虐(수주천황세진학) 손으로 은하를 당겨 진(秦)의 학정 씻었네.

橫何爲哉不歸來(횡하위재불귀래) 전횡(田橫)은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고서,

怨血自汚蓮花鍔(원혈자오연화악) 원통히도 그만 보검으로 자결하고 말았네.

客誰聞之爭奈何(객수문지쟁내하) 객들이 그 기별 들었으니 어찌할 것인가,

飛島依依無處托(비도의의무처탁) 나는 새가 이제는 의탁할 곳 없어졌네.

寧從地下共追隨(녕종지하공추수) 차라리 땅속 따라가 서로 추축(追逐)할 것을,

軀命如絲安足惜(구명여사안족석) 실낱같은 목숨을 어찌 구구히 아끼리오.

同將一刎寄孤嶼(동장일문기고서) 모두 같이 목을 찔러 외로운 섬에 쓰러지니,

山哀浦思日色薄(산애포사일색박) 산도 설고, 개[浦]도 시름, 지는 해 뉘엿뉘엿.

嗚呼千秋與萬古(오호천추여만고) 아아, 천추(千秋) 또 만고(萬古)에

此心菀詰誰能識(차심울힐수능지) 맺힌 이 마음 뉘라서 알리.

不爲轟霆有所洩(불위굉정유소설) 뇌성벽력이 되어서 이 기운 풀지 못하면

定作長虹射天赤(정작장홍사천적) 뻗친 무지개 되어서 하늘을 붉게 쏘리라.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못 보았나,

古今多少輕薄兒(고금다소경박아) 고금(古今)의 하고많은 경박한 아이놈들,

朝爲同袍暮仇敵(조위동포모구적) 아침에 죽자 살자 하다가 저녁에는 원수일세.

※ 운자 : (1) 입성(入聲) ‘陌(맥)운’ - 碧, 客, 百, 惜, 赤 (2) 입성(入聲) ‘藥(약)운’ - 虐, 鍔, 托, 薄 (3) 입성(入聲) ‘職(직)운’ - 識 (4) 입성(入聲) ‘錫(석)운’ - 敵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은 하정사(賀正使)로 고려 우왕(禑王) 12년인 병인(丙寅, 1386)년에 명(明)나라에 다녀왔는데, 요동과 심양을 거치고 옛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땅을 지나 남경(南京)에 이르는 노정을 따라 들어간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스승 목은(牧隱)이색(李穡)이 이 시를 보고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는 시이다.

 

<그림 (10)>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초상화 (*소장처 – 성주군 청휘당)

 

(4)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오호도(嗚呼島)를 지나며[過嗚呼島]>

 

* 자주(自注) : 세상에서 반양산이라고 이른다(自注俗謂之半洋山)

蒼蒼海中山(창창해중산) 창창한 저 바다 가운데 산을 보소,

萬古浮翠色(만고부취색) 만고에 푸른빛이 둥둥 떴다오.

觀者盡嗚呼(관자진오호) 보는 자는 저마다 슬퍼들 하며

爲弔田橫客(위조전횡객) 전횡(田橫)을 조문하기 위한 길손들이라네.

一士足可王(일사족가왕) 선비 하나 잘 얻으면 왕도 되는데

擾擾多五百(요요다오백) 요란스레 무려 오백이나 되었다니!

天命已有歸(천명이유귀) 천명이 갈 곳이란 미리 정해져 있는 바,

人固難容力(인고난용력) 사람의 힘으로도 딱히 어쩔 수 없다네.

苟得小者侯(구득소자후) 진실로 작게나마 후(侯) 자리만 얻었어도

猶可存宗祏(유가존종석) 오히려 종묘사직에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如何却自裁(여하각자재) 어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以比經溝瀆(이비경구독) 구독(溝瀆)에 목맨 자와 견주게 되었는고.

死輕尙能堪(사경상능감) 죽음이란 경(輕)한 거라 능히 감당할법해도

義重寧屈辱(의중영굴욕) 의리는 소중하니 어찌 굴욕 참을 수 있으리오.

田宗旣已亡(전종기이망) 전씨의 종족은 다 멸망해버렸으니

烏止于誰屋(오지우수옥) 까마귀 누구의 집에서 울다 그칠는지.

欲報平生恩(욕보평생은) 평생의 은덕을 보답할 양이라면

殉身是其職(순신시기직) 순신(殉身)이 바로 그 직분이로세.

烈烈志士心(열렬지사심) 열렬한 지사의 굳은 마음이란

永與雲水白(영여운수백) 물같이 구름같이 길이 함께 희리다.

至今有遺哀(지금유유애) 오늘에도 그 슬픔 남아있어서

凜凜秋氣積(늠름추기적) 늠름히 저 가을, 기운만 쌓여 온다오.

山飛海亦枯(산비해역고) 산이 날고 바다 말라 다함 있다 해도

忠憤無終極(충분무종극) 충분(忠憤)은 끝끝내 끝 간 데 없으오리다.

※ 운자 : (1) 입성(入聲) ‘職(직)’운 - 色, 力, 職, 極 (2) 입성(入聲) ‘陌(맥)운’ - 客, 百, 祏, 白, 積 (3) 입성(入聲) ‘屋(옥)운’ - 瀆, 屋 (4) 입성(入聲) ‘沃(옥)운’ - 辱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조선조 태조(太祖) 5년인 병자(丙子, 1396)년에 사신으로 갔는데, 이때 명태조(明太祖)의 앞에서 어제시(御製詩)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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