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서회천에 속한 작은 마을..회천동(서회천) 드르생이(잃어버린 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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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서회천에 속한 작은 마을..회천동(서회천) 드르생이(잃어버린 마을)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5.0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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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터는 대부분 과수원으로 변하였고 옛올레와 대나무숲이 간간이 남아 있다

회천동(서회천) 드르생이(잃어버린 마을) 터
 

위치 : 회천동 2652, 2653-1, 2654, 2692-1, 2694, 2729-3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잃어버린 마을)

회천동_드르생이
회천동_드르생이 집터


드르생이는 한자로는 野生洞이라고도 불렀으며 서회천에 속한 작은 마을로서 서쪽으로는 도련1동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인데 16호의 가호가 모여 살던 곳이다.

위 번지 일대를 알드르생이라고 하여 10가호, 그보다 약간 남쪽의 2717-1번지 일대 웃드르생이에 6가호가 있었으며, 당시 세대주로는 강운표, 강희수, 고성인, 고성주, 고태수(맨돈지로 이주), 고한경, 김경환, 김용태(고사순 댁 장남, 육지 출신), 김학봉, 문태기, 이은계, 한계택, 한맹주, 한사택, 한성택 등이었다. 2653-1번지에는 강용기씨가 살았었다.(201129 봉개동 거주 1936년생 강용기 증언)

당시 식수용으로 조성하였던 연못도 3곳 있었다. 회천동 2686번지 동쪽 끝에 도로에 붙어서 직경 6∼7m 정도의 둥근 연못이 있었으나 지금은 밭 임자가 메워 버렸다고 한다. 또 하나의 물통은 회천동 2710-1번지와 도련1동 1121-1번지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없어졌다.

회천동 2621-1번지 북쪽에도 물통이 있었으며 좁은 길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드르생이 마을은 4・3사건 이후 폐촌되었고, 물통들도 1980년대까지는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매립하여 없어져 버렸다.(서회천향토지)

4・3의 와중에서 강신석(54세), 강동일(54세), 고성인(26세), 고경춘(60세) 등이 희생되었으며, 살아남은 드르생이 주민들은 화북, 삼양, 신촌, 조천 등지의 해안마을에서 소개생활을 하다가 일부는 1949년 봄 봉개리가 재건될 때 그곳으로 가서 살았고, 1953년에 회천리가 재건될 때 서회천에 가서 살기도 하여 다시 드르생이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은 없어져 버렸다.(제주4・3유적Ⅰ)

마을 터는 대부분 과수원으로 변하였고 옛올레와 대나무숲이 간간이 남아 있고 웃드르생이에는 ᄆᆞᆯ방애터가 남아 있다.
《작성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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