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잠시 그친 사이,
짧게 들이치는 햇살을 찾아 줄장지뱀이 풀 위로 올라와 앉았습니다.
줄장지뱀은 다소 과감한 자세를 취하고 주변을 부지런히 살피면서도
큰 움직임 없이 태연하게 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누가 감히 줄장지뱀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어쩐지 햇살에 부딪치는 산철쭉 잎들이 더욱 푸르러 보입니다.
그런데 웬 일인지 한쪽 가지의 잎들이 부실해 보이는군요.
누군가가 주맥만 남기고 깡그리 갉아먹어버렸습니다.
그럼 그렇지, 바로 곁가지에서 애벌레들이 잎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등에잎벌류의 애벌레들입니다.
애벌레들은 잎 가장자리에서부터 주맥을 향해 부지런히 갉아먹고 있습니다.
아차, 애벌레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데 이 녀석들이 위협을 느꼈나 봅니다.
나뭇잎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녀석들이 배를 치켜들어 물구나무를 섭니다.
물구나무를 서느라 앞다리로만 몸을 지탱해야만 할 텐데도 애벌레들은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매달려 있더군요.
다시 평온을 되찾은 애벌레들이 부지런히 잎을 갉아먹습니다.
잎 하나에 애벌레 세 마리가 사이좋게 매달려 열심히 배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우습고 앙증맞아 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잎을 갉아먹는 속도에 놀라 이들의 행동이 식물에게 얼마나 위협적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애벌레들은 잎을 얼마나 더 먹어야 어른벌레가 될 수 있을까요?
하기야 많은 애벌레들 중에서 무사히 어른벌레가 될 수 있는 확률이 극히 낮을 테니
이 작은 벌레들의 앞날이 성공적이기를 바래볼 뿐입니다.
어느새 햇살은 짧은 꼬리를 감춰버렸고 다시 비가 지루하게 내리는군요.
그래도 숲에는 활기가 돕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글 사진 한라생태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