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수목원】 으름덩굴 꽃 피었네
저만치 침침한 소나무숲 언저리에
연두빛 고운 새순이 맘껏 너울거리며 자라고 있습니다.
으름덩굴입니다. Akebia quinata (Houtt.) Decne.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나 산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하지만
한 번 들으면 으름? 하고 되묻게 되는 특이한 이름.
강원도 사람들은 지금도 이 나무를 얼음나무라고 부릅니다.
가을이면 익어서 벌어지는 열매의 속살을 입에 넣으면 얼음처럼
시원한 느낌이 사르르 전해지거든요.
그래서 얼음나무라고 부르던 게 으름나무, 으름덩굴이 되었다고 해요.
열매모양이 길쭉하고 통통해서 한국의 야생바나나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제주도에선 보통 졸갱이라고 부르지요.
암꽃, 수꽃 다 피었네요.
불그스름하고 큰 건 암꽃, 노르스름하고 작은 건 수꽃이에요.
꽃잎처럼 보이는 옅은 분홍색의 꽃덮개 속에는
다섯 개의 자주색암술이 길게 벋어 있습니다.
암술 끝이 꿀 묻은 것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네요.
그런데 암꽃 모양이 좀 이상해요.
암꽃에는 보통 꽃덮이조각이 세 개인데
요건 아직 덜 벌어진 걸까요?
세상 구경 빨리 하고 싶었나 봅니다.
아래쪽에 당글당글 모여 있는 작은꽃들이 수꽃이에요.
꽃 가운데 모여 있는 꽃밥주머니는 아직 열리지 않았네요.
아~ 여기 오른쪽에 있는 암꽃은 꽃덮이조각이 세 개로 벌어졌어요.
날씨가 더 좋아지면 요런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지요.
가지에 어긋나는 잎은 작은잎이 보통 다섯 장인 손꼴겹잎입니다.
으름을 보고나니 근처 울타리를 타고 있는 멀꿀이 눈에 띕니다.
으름하고 많이 닮은 친구지요.
잎을 따서 대 보았더니
호~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크기가 다르네요.
작은잎도 모양이 달라요. 멀꿀은 끝이 뾰족하고 으름덩굴은 끝이 둥그스름하고.
멀꿀은 이제야 하나 둘 꽃을 피우기 시작하나 봅니다.
광이오름 발치에서 남조순오름 기슭 쪽을 바라보니
하늘 향해 쭉 쭉 뻗은 참죽나무에도 삐죽 빼죽 새순이 돋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 걸음쳐 내려갔더니
붉은 꽃봉오리들이 방긋 방긋 웃으며 맞아 주네요.
어제만 해도 꽁 꽁 여미고 있던 꽃잎들이 많이 느슨해진 것 같지 않나요?
고운 연두빛 신록과 화사한 다홍색 꽃잎 앞에 서니 마음은 이미 무장해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고 있습니다.
참 좋은 시절입니다.
(글 사진 한라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