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수목원】 여름엔 초본원으로 자주 나들이 가요
초본원 언덕에 아주 늠름한 참느릅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풀꽃 피고 지는 언덕에 서서 바람을 타며 멋진 풍광을 연출하지요.
몸집은 크지만 잎이 작은 편이라 잔바람에도 사르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더위도 마음의 짐도 잘게 부서지며 산화하는 것 같습니다.
초본원 동쪽이 환하네요.
왕원추리(Hemerocallis fulva f. kwanso (Regel) Kitam. )가 한창이군요.
6월에 피기 시작한 꽃이 한 달이 넘도록 피고 또 피고 있어요.
훤출한 키와 그에 어울리는 큼지막한 주황색 꽃이 참 맑아서
바라보고 있으면 계곡물에 발을 담근 것처럼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때요, 참 예쁘지요?
원추리꽃밭에 서 있는데 이쪽 저쪽에서
“휘이 휘이 호이호이” 하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삼광조가 벌써 이소를 한 걸까요?
재빠르게 움직이는 새의 자취를 좇아 고개를 돌리다 보니
그만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뒤돌아 나오는데 아니 저게 누구지요?
어머나~ 매미 허물이네요! 벌써 매미가 나올 때가 된 건가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조용히 자글거리던 저 소리가 매미 우는 소리였군요.
꽃구경, 새소리에 홀려 7월도 중턱을 넘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매미허물이 붙잡고 있는 풀줄기와 그 주변에 있는 것들 끝이 쌍둥 쌍둥 잘려 있습니다.
노루들의 입질이 눈개승마 순을 비켜가지 못한 것 같군요.
돌아오는 길, 녹나무숲 갈림길에서 연보랏빛 어여쁜 꽃송이들을 만났습니다.
바위를 의지하고 좀비비추(Hosta minor (Baker) Nakai)가 꽃을 피웠네요.
비비추에 견주어 잎도 꽃도 작아서 좀비비추래요.
좀비비추도 먼저 자란 꽃줄기는 윗부분이 잘려 있군요.
수목원 안에서 노루들이 좀비비추 순을 아주 맛나게 먹는 걸
몇 번이나 목격한 적이 있지요. 아주 싹 다 잘라 먹어서 어쩌나 했는데
다른 순들이 올라와서 이리 꽃을 피워주니 참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좀비비추, 뒤태도 참 예쁘지요?
쪽 곧은 모습과 말끔한 색감!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글 사진 한라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