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하르방 굿..성산읍 신양리 하로산당(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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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하르방 굿..성산읍 신양리 하로산당(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1.04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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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깨끗해야 갈 수 있고, 돼지고기 먹은 사람 절대 못 간다.

 

 


신양리 하로산당(本鄕堂)


위치 ; 성산읍 신양리 해안도로변 해녀탈의장 맞은편
유형 ; 민속신앙

 

 

신양리는 처음에는 고성리 사람들이 1894년부터 내려와 바닷일을 하면서 살다보니 점점 가호 수가 늘어나 1933년에 고성2구로, 그 후에 1951년에 독립된 행정리인 신양리가 되었다.


신양리 본향당은 온평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변에 있으며, 수산리 '울래모루(울뤠모루)하로산당)'의 가짓당으로 '하로산또'를 모시며 '하로산당'(해변형, 산신, 단독형)이라 부른다.

이 당은 신양리가 고성리로부터 마을이 분리되면서 수산리와는 거리가 먼 관계로 신양리 새개 포구 앞으로 옮겨온 당으로, 가지갈라오기는 1950년대에 수산에서 분당하여 '중통굴'에 모셨다가 지금의 위치로 모셨다.

제일은 울뤠모루하로산당과 같으나 영등송별제만은 2월 15일로 울뤠모루하로산당(2월 13일)과 다르다.(오성찬,「제주의 마을 시리즈 제주 동부의 핵심 마을 고성리」110쪽, 제주의소리 101012 제주여성문화유적)


제일은 정월 초이틀, 보름, 2월 보름, 7월 8일이며,(남제주군의 문화유적 320쪽) 정월 2일에는 신과세제, 정월 보름날은 하르방이 들어오는 굿을 하고, 2월 보름날은 하르방이 나가는 굿을 마을에서 관장한다.

2월 보름날은 하르방을 모셔서 놀아난 다음 1m 정도의 배를 만들어 소금, 물, 미역, 청각, 좁쌀, 보릿쌀, 산디를 넣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띄우고 돌아오는 행사를 한다.

먼저 14일에 일출봉에서 굿을 한 다음 15일엔 신양리 앞 포구에 온다. 이때 목안심방(제주시 심방)도 3명이나 보조로 온다. 굿은 4명의 심방이 한다.

굿의 규모가 커서 외지로 나간 사람들이나 굿 연구가들이 많이 보러 온다. 이날은 몸이 깨끗해야 갈 수 있고, 돼지고기 먹은 사람은 절대 못 간다.

지는 백지, 밥, 생선, 삶은 계란을 준비하고 바다에 가서 지드림을 하고, 용왕님께 기도하고 온다. 정월과세 때는 메, 쌀, 지전, 계란을 준비하고 본향당에 간다.

 

오인순(1934년생)는 수산리에서 신양리로 본향당을 옮겨 올 때도 기억하고 있으며 “시할아버님이 땅을 기부하여 임시 쉐막처럼 지어서 당을 설립했다.

그 후에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김창보 이장 때 마을 명의로 이전했다.

마을에서 땅값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얼마 받은 기억이 난다. 6~7년 전쯤 지금 본향당터로 옮기면서 당집도 새로 지은 것이다.”고 말했다.(제주의소리 101012 제주여성문화유적)


당에 갈 때에는 양푼에 산메를 찌고 따로 영등메를 1기 가지고 간다.

당집 안에 궤를 모시고 당집 박에는 돌담을 둘렀다. 신양리 주민 대부분이 이 당에 다니며 송씨가 상단궐이었으나 조권평씨 때부터 상단궐은 조씨가 되었다.

매인심방은 조권평→조빌레(딸)→현차순→현차남→신양리 양정순․온평리 강씨로 이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이 당에서는 2월 15일에 영등제를 크게 한다고 한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320쪽)


본향당 건물은 약 20평 정도로서 바닥엔 비닐장판등을 깔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신위는 <부 소천국 모 금백주 다섯째아드님>이라 되어 있다.

당을 설립했던 곳이 개인 소유지라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옆에 마을 자금으로 땅을 구입하여 2006년에 현대식 새 건물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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