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시인묵객 교류..귀덕1리 귀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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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시인묵객 교류..귀덕1리 귀덕연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1.09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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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와 기능면에서 차이 없으나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

 

 


귀덕연대 歸德煙臺

 


제주도 기념물 제23-18호(1996년 7월 18일 지정)
위치 ; 한림읍 귀덕리 1118번지 귀덕초등학교내
유형 ; 방어유적(봉수․연대)
시대 ; 조선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주변 해안과 비교하여 완만하게 안으로 들어온 속칭 ‘복덕개’라 부르는 포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귀덕리 사동(沙洞) 귀덕초등학교 건물 북쪽에 있다.(한림읍지 45쪽) 일명 「望海臺」라고도 하였다.

명월진에 소속되었으며, 해안과는 9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연대 자리와 포구와는 높이 차이가 있어서 연대 동쪽으로는 애월연대(직선거리 3.3Km)가 있는 애월리 해안, 서족으로는 우지연대(직선거리 1.3Km)가 직접 보이고 멀리 수원리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소속된 인원은 별장 6명, 봉군 12명이었으며 하루종일 해안을 경비하였다.

 

귀덕연대는 3m 정도의 모래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지대석만 4.9m×3.8m 길이로 가지런히 ㄷ자 모양으로 남아 있다.

석재의 크기는 17cm×91cm×19cm, 17cm×83cm×24cm로 조사되었는데, 당대에 쌓았던 석재가 아니고 최근에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제주의 방어유적 224쪽)

그러나 이 연대의 모양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북제주군문화원에서 세운 안내표석에는 귀덕연대는 동쪽으로 애월연대, 서쪽으로 우지연대와 교신하였으나 애월연대와 우지연대가 서로 직접 교신하게 되자 필요성이 없어져서 연대 터에 월대를 구축하여 ‘망해대’라 이름짓고 시인묵객들이 교류하던 장소로 쓰던 중 1940년 4월에 귀덕초등학교가 개설되면서 학교 뒤뜰에 편입되어 그 흔적이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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