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풍어의 신..사계리 성창굽개당(토끼동네갯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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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풍어의 신..사계리 성창굽개당(토끼동네갯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5.25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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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철거한 장 순경은 눈병이 나 고치지 못했다'

 

사계리 성창굽개당(토끼동네갯당)

 


위치 ; 안덕면 사계리 토끼동네 성창 동편에 있다.
시대 ; 조선
유형 ; 민속신앙

 

 

 

 

1900년 경 사계리 2032-25에 거주한 지성수씨는 당시 바다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사고가 많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광정당에서 신이 붙어 있는 큰 돌 2개를 가져와 가장 큰 돌은 청밭당 설립에 모시고 작은 돌은 1920년경 사계포구에 갯당을 설립하는 데 모셨다고 한다.

미신타파를 부르짖던 1963년에는 송만 외 몇몇 어민들이 당의 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임시로 모셨다가 2년 후 다시 제자리로 모셨다고 한다.(현장의 안내판 110913)


토끼동네 갯당은 ‘성창굽개당’이라고도 하는데 ‘성창’은 포구, ‘굽’은 근본 또는 뿌리의 뜻이며 성창에 바짝 붙어 있다는 뜻, ‘개’는 바다를 뜻한다. ‘큰물당신’을 가지갈라다 ‘선왕신’과 함께 모시는 당이다.

해상안전과 풍어를 가져다주는 신이므로 어부와 해녀들이 다닌다. 초하루와 보름에 제를 지내며 특히 팔월 보름을 대제일로 한다. 당에 갈 때는 돼지고기, 당메 2기, 선메 3기를 가지고 간다.


토끼동네에는 옛날에는 당이 없었다. 그래서 배들이 자꾸 바다에서 사고가 났다. 고씨 선주가 소선주였을 당시 선왕당을 하나 모시자고 제안하여 어부․해녀들이 합심하여 당집을 짓기로 하였다.

대마도에서 나무를 실어오고, 동네 목수가 대마도 숙대낭으로 집을 짜고, 석공이 돌을 깨어 담을 쌓고, 신평리에서 기와를 구워다가 지붕을 덮고 선주와 선원들이 등짐으로 시멘트를 져 날라 몇백년 가게 튼튼하게 집을 지었다.

그 후 해방이 되어 4․3사태 때 서북청년단들이 들어와 철거하라 하며 당집을 불태워 버렸다. 차츰 완화되어가니 옛어른들 모시던 거 무심하게 내 버리지 말자고 의논해서 다시 무너진 담을 고치고 축(祝)이나 고하고 상자를 만들어 모셨다.

담 안에 그대로 모셨는데 쓰레기도 거기 던져 버리고 해서 보기 싫게 되어가니 헌 도당이라도 덮자고 선주들이 주장하여 헌 도당을 덮었다.

다시 철거 명령이 있어 그 당을 철거한 장 순경은 눈병이 나 고치지 못했다. 장 순경은 눈병을 고치려고 다시 축항 옆에 담을 쌓고 당신을 모시고 모슬포에서 심방(빠마심방)을 데려다 당굿을 하려니 본초(본풀이)를 몰랐다.

심방에게 갯당은 ‘큰물당에서 가지갈라다 언제 당을 세웠고, 누가 불태웠으며, 누가 부숴 버리고 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유래를 말해 주니 심방이 그렇게 본초를 풀었다.

장 순경이 꿇어앉아 ‘잘못했습니다, 법령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부쉈습니다’ 고 빌며 절하니 눈병이 좋았다고 한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344쪽)

위 사진은 2003년 사진
아래 사진은 2011년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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