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국화과) Erigeron annuus (L.) Pers.
그토록 지천으로 피어나던 들꽃이 한숨 늦추더니
붉게 노랗게 나뭇잎은 단풍이 들고
한해살이 풀꽃이 씨앗을 맺고 나서 시들어 가는 늦가을,
황량한 벌판에 왕릉 같은 고분(古墳)이 즐비하게 늘어서
옛 흔적도 자취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침묵에 잠긴 채
또 한 해의 세월을 넘기는 대구의 불로고분군을 찾았습니다.
아스라한 천오백 년 세월의 무게가
투박하고 무겁게 이어져 내려앉은 곳.
아득히 먼 옛날의 전설을 숨긴 듯,
몽그라지도록 긴 세월에 닳고 닳은 불로고분입니다.
황량하고 묵은 벌판에 헤집듯 파고드는
늦가을 석양빛 그림자 길게 드리운 때.
넘쳐나던 풀꽃과 푸른 잎새는 다 어디로 갔는지?
지친 듯 애절한 갈색 풀잎만 초라하게 몸져누워 있었습니다.
풀꽃 시들고 사라진 허허롭고 황량한 둔덕,
고적한 고분(古墳) 앞에 한 송이 개망초가
천오백 년 외로움을 돋궈 피어 올린 듯
서리 즈음 계절도 잊은 채 홀로 피어 있어
또 한 점 고독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개망초! 웬만한 곳 어디나 지천에 깔린 풀,
구한말 경술국치 무렵에 들어온 북미산 귀화식물입니다.
조선말, 철도공사를 위한 침목에 묻어 들어와
한일합병 당시 전국으로 퍼져나가 자리 잡은 풀꽃인데
나라가 망할 때 들어와 전국에 번성한 꽃이라 하여
망초 혹은 망국초라 불리었다고 전하는 망초와 비슷한 종(種)입니다.
꽃은 망초보다 훨씬 더 크고 예쁜데도
망초와 비슷한 모양의 잎과 줄기, 생태 습성을 가졌으며
같은 시기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라서
망초에 ‘개’라는 접두사를 덧붙여 개망초라 불렀다고 합니다.
꽃 모양이 마치 계란 프라이처럼 생긴 데에서
일명 ‘계란꽃’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도 흔해서 홀대받고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찬바람 서리에 얼어붙고 시들 때까지
끈질기게 꽃을 피우며 사라져가는 개망초입니다.
(2017. 11. 18. 대구 불로고분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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