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사라알오름
상태바
[오름이야기]사라알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1.27 2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고: 96.2m 비고:21m 둘레:780m 면적:35,659㎡ 형태:원추형


사라알오름

별칭: 난악(卵岳). 난봉(卵峰)

위치: 제주시 건입동 387-1번지

표고: 96.2m 비고:21m 둘레:780m 면적:35,659㎡ 형태:원추형 난이도:☆☆

 

 

변화가 이뤄진 낮고 작은 화산체이나 입지와 존재가 중요한 곳...

 

별도봉(베리오름)과 사라봉 사이에 있는 산 체로서 알오름 외에 한자 표기로 난악(卵岳)이나 난봉(卵峰)이라고도 한다. 화산체의 특성이나 가치가 사라졌지만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오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앞면의 대부분이 정수장을 만들면서 깎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오름으로서의 면모는 대부분 잃은 상태이다.

사라봉과 별도봉 사이에 솟아나 있으며 사라알오름이라고 표기를 하지만 실상은 별도봉 쪽에 더 치우쳐 있다. 따라서 베리오름에 중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변화가 심하게 이뤄진 지금으로서는 옛 모습을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

자료를 참고하면 이 알오름의 가치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제주도의 지질 조사를 할 당시 부터 매우 중요한 조사 지점으로 여겼다. 수많은 알오름들이 있으나 대부분 외면했지만 이곳을 제주도 오름 개수에 포함이 된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오름의 구성 물질인 화산쇄설층에서 제주도의 기저 기반암으로 추정되는 화강암편이 포획암으로 다량 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포획 화강암 편을 볼 수 있는 노두(露頭)는 알오름을 포함하는 베리오름과 사라봉 사이의 바닷가로 내려가는 급경사에서 볼 수가 있다.

경사의 사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둘러보면 해안 쪽에서의 쇄설암층과 그 속에서 포획된 화강암 편을 관찰할 수가 있다. 특히나 이 알오름의 존재는 화산체의 형성 시기에 관해서도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름의 형성 시기별 시대 구분은 현장 지질 조사와 항공사진 판독 결과 알오름이 가장 먼저 형성이 되었고, 그다음이 베리오름이며 분석구인 사라봉은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된 바가 있다.

사라봉공원은 베리오름과 사라봉을 중심으로 연계를 하는 산책로와 운동시설 등이 갖춰져 있으나 대부분 알오름의 입지를 중요시 여기지는 않고 있는데, 변화가 이뤄진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렇다 할 산책로나 탐방의 여지가 없는 것이 이유라 할 수 있다.

 

 

-사라알오름 탐방기-

공원 입구에서 별도봉으로 오르다가 우측으로 정수장이 있다. 입구 안쪽은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하며 관계자만 드나들 수 있다. 원래의 화산체 역시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오름이 있었던 자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많지가 않다.

산 체의 일부는 남아 있으나 앞면의 대부분은 사라진 모습이라 오름이라기보다는 더러 헝클어진 동산 정도로 느껴졌다. 등성에는 주로 소나무들이 차지를 하였으며 사라진 터 역시 숲이 우거졌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수장이 들어선 위쪽으로 돌담을 쌓아 원형을 잃은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옆으로 길이 있으나 산책로라고 하기보다는 궁도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궁도장 역시 알오름의 일부를 포함하는 곳임은 너무나 당연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궁도장은 사라봉 산책로에는 포함되지 않은 곳인데 역시 오름 허리의 일부를 깎아서 만들었다.

 

입구에는 기념비가 있으며 실내외를 포함하여 시설물이 갖춰져 있었다. 정수장은 출입문의 봉쇄는 물론이고 사방을 둘러 철조망 시설을 해 놓았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기 위하여 이동을 했는데 일부 경작지와 초지로 이어지는 소로가 나 있고, 목장으로 사용되는 곳도 있었는데 사유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돌아 나온 후 별도봉으로 오르면서 알오름 주변을 좀 더 살필 수가 있었고 반대쪽으로는 해안 방향이며 부두와 방파제가 보였다. 베리오름과 사라봉 사이의 바닷가로 내려가는 급경사에서는 포획 화강암 편을 볼 수 있는 노두(露頭)를 볼 수가 있어 관심을 갖고 살펴봤다.

베리오름 정상부에서도 비탈과 능선의 일부를 볼 수 있는데 비탈에서도 바라본 모습은 더러 측은하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수장이 없다면 이곳에서 오름 기슭을 따라 현장을 살필 수도 있겠지만 여의치가 않았고 산 체의 일부와 정수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정수장 자리가 분화구가 있던 곳은 아니다. 오름을 깎아서 만든 인공 구조물일 뿐이며 필요성이 자연 보존 보다 우선이었던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