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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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영실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5.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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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 1,639.3m 비고: 389m 둘레:3,309m 면적:599,856㎡ 형태:복합형

 영실

별칭 : 靈室. 오백나한. 오백장군. 영실기암. 석라한(石羅漢). 천불복(天佛峰)

위치 : 서귀포시 하원동 산 1-1번지

표고 : 1,639.3m  비고: 389m  둘레:3,309m  면적:599,856㎡  형태:복합형  난이도:☆☆☆☆

 

 

신비와 신령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고 신들의 터전이며 영혼이 머무는 곳...

 

영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산행이라 하기에는 애매하고 오름 탐방이라 하기에도 모호하다. 높이나 거리를 비롯하여 경사를 포함하는 난이도 등을 감안하면 산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영실은 제주의 수백 개에 달하는 오름 중 하나이다. 

그저 산행 코스나 경유지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확실한 화산체이다. 오름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이른바 독립형 소화산체로서 거대한 분화구를 지닌 복합형 오름이다.

어리목이나 영실 매표소를 출발하는 여정의 기점 역시 정확하게는 오름 탐방이 맞는다고 봐야 한다. 현재까지는 이 루트를 통하여 한라산 정상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며 최종 기점은 윗세(오름)이다. 남북 분기점 방향으로 더한 진행은 가능하지만 이 구간의 종착지는 윗세라 할 수 있다.

이 윗세라 함은 대피소 일대의 세 오름을 합한 명칭이며 붉은오름, 누운 어름, 족은 오름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피소 주변의 휴게소를 포함하여 편리하게 부르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실 코스를 통하여 오르내리는 과정은 윗세를 포함하는 여정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데, 오름 자체를 탐방하는 과정은 현재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가 된 상태라 정해진 코스를 통하여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다.

영실은 제주 수백 개의 오름 들 중에서 산방산(395m) 다음으로 비고(高)가 높은 화산체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이들은 실제 영실 오름이 조사 당시 보고된 389m보다 더 높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제주에서 한라산을 포함하여 백록담이 가장 영험하고 신령스러우며 그다음이 영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의 영실의 존재는 화산체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무한대로 이어지는 신성하고 영험한 곳이다. 영실(靈室)은 그냥 신들의 터전이 아니고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곳이다. 백록담 남서쪽의 산허리를 차지한  골짜기와 그 주변이며 절벽의 동쪽을 중심으로 500여 개가 넘는 기암들이 솟아 있다.

그 주변으로는 깊고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기암들은 마치 나한들이 선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오백 나한이나 오백장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영실기암이라 하여 제주를 대표하는 영주십경에 포함이 된 명소이기도 하다. 석가여래가 설법을 하던 영산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나 실제의 모습에서 반문할 여지가 없다.

 예부터 서쪽의 병풍바위와 함께 묶어 천불복(天佛峰)이라 하였고, 이원조 목사가 제주의 명승지 열 곳을 지정하고 '영주십경'이라 할 당시에는 석라한(石羅漢)이라고 하였다. 설문대할망의 자식들과 관련하여서는 오백장군이나 오백 형제 바위이라고도 한다.

절벽의 동쪽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수 백 개의 돌기둥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는 형체를 하고서 남한과 장군의 형세를 떠올리게 한다. 영실을 지키고 빛나게 하는 ​것은 이들의 몫이지만 골짜기와 능선을 차지한 잡목들도 사계절 언제나 주연급에 합류를 한다.

기슭과 기암으로로 이뤄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생을 하는 다양한 나무들은 저마다 최고의 색을 선보이며 영실을 빛나게 한다.

 

-영실 탐방기-

여름을 앞둔 영실 골짜기는 허접하고 어설픈 공간을 초록으로 색칠한 채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오랜 기간 비의 양이 적은 데다 일찍 더위가 찾아왔지만 이곳의 자연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사전 허가를 받은 취재팀에 합류를 하여 영실 휴게소를 출발하고 숨은궤인 수양굴을 찾아낸 후 다시 영실 골짜기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신들의 터전으로의 진입은 시작에 불과했지만 열린 공간으로 하나둘씩 나한의 장군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깊은 숲을 이룬 너머로 솟아오른 기암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위엄과 장엄함을 드러냈다. 어지럽게 흩어진 것 같지만 질서가 있고 마치 계급이라도 정해진 것처럼 크고 작은 모습과 높고 낮음을 반복하여 이어졌다.

얼마를 올랐을까. 다시 열린 공간으로 하늘정원이 보였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명칭은 아니지만 일부 오르미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조릿대가 군락을 이룬 모습과 제빛을 지닌 철쭉을 비롯하여 두 기의 묘 중 한 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차피 만날 곳이지만 현장 상황이 사뭇 궁금하고 기대의 폭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백장군들과의 만남은 골짜기에서 비롯되었다. 초병이라도 되는 양 계곡의 구석을 차지하고 어떤 것은 진입로의 중심을 가로막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가능한 마주치는 과정을 오래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이들의 위엄을 당할 수가 없어서 이내 눈을 돌려버리곤 했다. 윗세 주변의 고원지대인 선작지왓과 남벽 기슭에서 영실기암으로 이어지는 곳은 해마다 봄에서 여름까지 꽃 천지를 이룬다.

분홍빛에서 붉은빛으로 얼룩지는 이 일대는 시기에 따라 변화가 이뤄진다. 4월 하순 털진달래가 피기 시작해 5월 초 결정을 이루고 산철쭉은 5월 말에서 6월 초가 절정이다. 털진달래와 산철쭉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방에 오름, 움튼 밭, 탑궤 등이 손꼽히지만 일부 지역은 근처에서 바라보는 정도가 전부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오백장군들이 위엄을 무너뜨리며 곱게 피어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실의 탑궤 코스를 아는 이들로서는 애가 탈 정도이다. 영실의 깊은 치부를 거쳐 능선에 올랐다. 봄날의 해무나 미세먼지를 떨쳐버린 날씨는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먼 곳까지 열어주었다. 철쭉과 털진달래의 영롱한 빛에 취하다가 이내 먼 곳으로 눈을 향하니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어 큰 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얼마 만에 色의 향연에 취했고 자연이 지휘하는 풍경에 젖었는지 쉴 새 없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늘정원에 도착을 했는데 영실의 하늘정원은 보잘 것 없으나 특색을 갖추고 있었다. 하늘이 열리고 영실 계곡을 시작으로 능선 위로 이어지는 중심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아마도 이렇게 부르게 된 것 같다.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가 밋밋함을 달래주면서도 조릿대의 염치없는 영역 확장에는 한숨이 나왔다. 한쪽에 묘가 있고 그 아래쪽에도 한 기가 더 있었다. 오래전 상여를 메고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들의 터전에 망자를 맡기면서 후손들로서는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영실 탐방로를 지나 이스렁(오름)이 보이는데 철쭉으로 물든 정상부는 산상 정원임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하늘이 맞닿은 바다는 요염한 색으로 눈을 빼앗았고 산방산을 지나 최남단 마라도까지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아직 거쳐야 할 과정은 많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최고의 자연 만찬이 되었다고나 할까. 

마침내 본격적으로 나한의 장군들을 만나러 갈 차례가 되었는데 깊고 넓은 굼부리를 차지할 수는 없지만 정상부를 둘러 이어지는 기암들의 기세와 위엄을 확인하게 될 설렘을 안고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동 중에 녹슨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오래전 영실을 거쳐 백록담으로 향하던 코스에 남아 있는 이정표였다.

이곳을 지나 탑궤 코스를 통하여 정상으로 갈 수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꿈의 능선일 뿐이다. 한 발씩 전진을 할 때마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영실 일대의 풍경은 탄성의 정도를 더 높이게 했다. 태곳적 자연이 만들고 세월이 다듬어 놓은 영실의 치부를 훔치는 자체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장군들도 나한도 말리 않았고 기꺼이 위엄과 장엄함의 전부를 보여주었다.

오백장군. 오백 명의 아들과 설문대. 설문대할망은 설화를 통하여 제주도 섬을 창조한 상징적인 여인이며 전설 속의 인물이다. 자식들을 이곳에 두고 물장오리에 빠져 죽은 설문대할망도 이제쯤은 호수를 헤집고 나와서 장군들과 재회를 할 법하다. 오백장군의 막내는 차귀도 해안에 있다. 똘똘 뭉쳐있고 의기투합으로 한라산 영실 일대를 지키지만 막내와 이별을 한 상황이라 언제나 그리움과 근심으로 지낼 것이다.

설문대할망은 자식들의 분산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상황을 알리가 없지만 막내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의 죽을 먹은 형들과는 차마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거늘 어찌 안타깝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499명의 자식들만 신령스러운 영실을 차지하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신비스러워서 신이 질투하고 시기할 것이다. 

 

장군들의 늠름한 모습을 바라보는 과정은 제법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한 능선을 지나면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나한들의 위엄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직급도 계급도 다 정해진 것처럼 일정한 터전을 자리 잡은 기암들의 모습을 실로 영험하게 느껴졌다. 수직으로 깊게 이어지는 절벽 옆을 차지한 장군들을 바라보는 동안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두 눈이 아찔했다.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낭떠러지 옆을 차지한 장군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고 호령하듯 말리기에 기꺼이 그 부름에 따랐다. 마지막 정상을 향하는 능선에는 역시나 계급이나 서열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덩치가 있고 솟아오른 모양새와 크기도 달리 보였다. 헝클어진 바위 하나를 찾아내고 살피기 시작한 것은 일찍이 이 바위와 관련이 된 특별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영실기암 옆을 지나 가파른 진행이 마무리될 즈음에 남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탑궤의 존재가 확인이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그런 평범한 바위로 보이지만 선작지왓을 호령하고 수호하는 궤이다. 이미 오백장군들의 늠름하고 영험한 모습을 여러 개 봤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기암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신들의 터전.  영혼이 머무는 곳. 영실은 신비와 신령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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