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비경..어리목 Y 계곡의 이끼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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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비경..어리목 Y 계곡의 이끼폭포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10.0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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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태풍으로 허물어진 암벽과 주변에는 다시 생기 돋아나.....
 

아름다움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한동안 대자연이 베푸는 광경을 만났는데도 눈과 귀는 아직도 시청각 현장의 공간을 차지한 기분이다. 신선이나 즐길 법한 무릉도원을 직접 만난 날이 열흘이나 지났건만 다시 그리움으로 되살아나고 그 현장은 너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나 갈 수 없고 아무나 볼 수 없는 숨은 비경이자 보물로 통하는 이끼폭포! 암벽을 따라 경사를 이룬 곳은 척박한 입지임에도 마르지 않은 연초록색의 이끼류와 수생식물들이 터전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끼폭포는 한라산 기슭에 몇 개가 있지만 대표적인 곳은 어리목 계곡에 위치해 있으며, 한라산의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광령천의 일부에 포함이 된다.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해안 마을인 외도의 월대천까지 이어지는 광령천은 민대가리동산을 사이에 두고 동(東)어리목골과 남(南)어리목골로 나눠진다. 

 

이렇게 두 개로 나눠진 모습이 Y자 모양을 하고 있어 어리목계곡을 Y 계곡이라고도 한다. 어리목 관리사무소를 기준으로 Y 계곡을 따라 1.5km가량 걸어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데 해발 990m 지점이다. 수백 년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이끼폭포 주변은 5~10여 m 높이의 암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절벽을 덮은 이끼 사이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리면서 신비의 폭포를 이뤄내고 있다. 주변 자체가 깊은 골짜기라서 햇빛이 적게 드는 데다 고지대 계곡의 지류를 타고 내려온 빗물이기에 다습한 환경을 만들었다.

이렇듯 이끼가 살기에 알맞은 조건이 되었고 이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폭포처럼 보이기에 이끼폭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곳은 지난 2007년 9월에 불어닥친 태풍(나리)으로 인하여 이끼 층이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었다. 어디서부터 복구를 해야 할지 막연했고 대책이 막막한 상태였는데 세월이 흐를지라도 자연 스스로 이겨내기를 희망한 것이 전부였다. 이후 10여 년 만에 일부는 자연의 힘으로 복구가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주환경일보 환경탐사팀과 함께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의 생태 환경과 입지 등을 살피기 위해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소장 이창호)의 사전 허락을 받고 찾았던 날, 현장의 모습은 자연의 힘을 그대로 확인할 수가 있었는데 실로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었다. 

어리목교에서 Y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경사는 낮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계곡인 만큼 빠른 진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을의 중심을 향하는 시기인 만큼 여기저기에서 볼품들이 쏟아지면서 발길을 느리게 만들곤 했다. 집중호우 때나 아니면 지반 아래로만 물이 흐를 뿐 건천을 이루는 계곡인지라 지반 위쪽은 말라 있었다.

 
 

조금 더 전진을 하다 보니 허물어진 곳이 나타났다. 이러지 말아야 할 곳. 이래선 안 될 곳인데 볼 상스럽게 속살을 꺼낸 채 위험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자연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할 곳이 허물어져 있었다.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태풍이 주범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많은 양의 물이 흐르면서 저질러진 현장이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곡물이 지반 위로 흐르면서 바위를 따라 작은 폭포를 이룬 곳도 있었는데 유난히도 경쾌하게 들렸다. 느리게 흘러가도 되련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쉴 새 없이 빠른 속도를 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구의 작품일까.

 
   
 

누구 마음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못을 만들었을까. 바위들이 없는 계곡의 복판을 차지한 곳은 아담한 호수를 이뤄낸 채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에 반항이라도 하듯 얌전을 떨고 있었다. 바닥 층을 다 드러낸 채 투명하게 채워진 물속은 작은 돌멩이들이 차지를 하여 보석이라도 되는 양 우쭐거렸고 떨어진 낙엽마저 볼거리가 되어 눈길을 끌었다. 

유수라 했던가. 어쩌다 바위를 만나는 물은 스스로 그 틈새를 찾아내어 작은 폭포를 형성하며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천천히 소리 없이 흐르다가 큰 바위를 만나면서는 반항이라도 하듯 소리를 치며 거세게 항의를 하는 모습이었다. Y 계곡의 폭포는 성질이 급하고 갈 길이 바쁜 것일까. 높지도 않고 규모도 작건만 소리는 제법 우렁차고 속도는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 계곡의 텃새로 텃세를 부리는 까마귀들이 소리를 지르지만 소폭을 만나는 동안의 내 귀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다시 반전이 이뤄졌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지나는 동안 소곡과 작은 호수들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환경부터가 달랐다. 절벽을 이룬 하단부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 줄기는 가늘었지만 단합을 한 때문에 몹시도 우렁차게 들렸다. 그리고는 내 두 눈과 두 귀 모두를 뺏었다. 시나리오를 만든 사람도 없고 편집자도 없건만 박자도 맞았고 떨어지는 물의 양도 너무 정확했다. 행여 소리가 좀 다르면 어때서 이마저 규칙을 위반하지 않았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도 없고 지휘봉을 잡은 단장도 없건만 물줄기는 규칙적이었다.

양과 세기도 일정하고 소리 또한 정해진 음폭을 벗어나지 않은 채 시청각의 효과를 높여주길래 한동안 선 채로 관객이 되어줬다. ​​ 왜 이렇게 검문소 가 많은 걸까. 바위가 막으면 한쪽으로 비끼면서 지나쳤고 볼품의 수림이 유혹하면 기꺼이 바라본 후 지났는데 이번에는 호수가 가로막았다. 소곡을 향하여 바위틈으로 쏟아지는 물은 분수처럼 넓게 퍼지면서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 후 빈 공간을 채웠다.

 
 

너무 아름답고 깨끗한 때문에 손도 발도 가까이하지 않고 오직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작은 호수는 얼마나 투명한지 치부까지 다 드러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계시라도 하는듯하여 기꺼이 한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산이라 맑고 숲이라 맑은데 촉촉하게 젖은 계곡마저 맑았다. 태곳적의 신비를 간직하고 노출을 꺼려 하는 계곡과 주변은 대자연의 공간 그대로였다.

큰 두레왓(큰드레)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리게 했다. 우렁찬 소리는 주변 모두를 잠재웠다. 주변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세차게 흐르는 물의 상류가 어디쯤인지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만났다. 그리던 곳을 찾았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어리목 계곡의 유일한 원시림 지역이라고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자연이 빚어내는 최후의 장소라고도 한다. 마침내 어리목 계곡의 심벌인 이끼폭포에 도착을 한 것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2007년 9월 불어닥친 태풍(나리) 이후 변화의 정도와 자연 복원의 상태였다. 당시 일부 암벽 지역은 이끼 층이 쓸려 내려갔고 화산쇄설물인 붉은빛의 스코리어 층이 그대로 노출됐었다. 가로로 100여 m이던 이끼폭포가 50여 m로 줄어들었었고 상층부의 2∼3m도 흙과 자갈이 뒤덮은 상태였다.  십 년 세월.... 많이도 복구되었구나.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누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자연은 스스로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백년의 세월을... 아니 천 년도 넘게 이어온 터전인데 그냥 포기하지 않은 자연의 힘은 위대할 정도였다. 더 많은 시간을 통하여 예전의 모습을 찾겠노라는 메시지는 떨어지는 물줄기의 몫이었다. 자연은 너무 많이 솔직했다. 물도 돌도 이끼도..... 한동안 바위에 걸터 앉은 채 유심히 살폈다. 

실컷 바라보고 느끼는 동안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이끼는 가능한 살며시 물을 내려 보내려 했지만 암벽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세차고 거칠게 퍼부었다. 한두 방울씩 옷깃으로 스며들었지만 아량곳 하지 않고 버텼다. 시청각의 현장은 사나흘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환청으로 반복되며 자연 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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