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가문이오름(송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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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가문이오름(송당리)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10.26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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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317.2m 비고: 37m 둘레:2,316m 면적: 144,595㎡ 형태: 원형

 가문이오름(송당리)  

별칭: 가믄이오름. 거믄오름. 흑악(黑岳)
위치: 구조읍 송당리 산 297번지
표고: 317.2m   비고: 37m  둘레:2,316m  면적: 144,595㎡  형태: 원형  난이도: ☆☆

 

 구좌에서 성읍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유난히도 인기를 얻는 오름들이 많이 있다. 내놓으라 하는 탐방형 오름들이 즐비하게 이어지는 때문에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을 수밖에 없다. 송당권을 벗어나 번영로로 들어서도 경우는 마찬가지이다. 도로변을 사이로 이어지는 곳에 볼품이 있는 산 체들이 있으며 어느 곳 하나 나무랄 수 없다.

번영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보이는 좌측의 능선은 비치미를 시작으로 개오름과 영주산들이 있어 눈길이 간다. 반면에 우측으로는 성불오름만이 유일하게 보인다. 그러나 성불오름 뒤로는 낮은 등성의 산 체가 또 하나 있다. 우쭐거리는 주변의 오름들에 비하여 설움에 겹도록 허접한 산 체이지만 당당하게 가문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오름이다.

노출형이 아닌 숨은 오름 중 하나이지만 주변의 드넓은 초지와 농지를 호령하는 우두머리 격이다. 차라리 고고한 채로 자리를 지키며 더 이상의 변화와 발전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이따금 마소들의 터전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지만 주변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없이 평화스럽게 보인다.

  인기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는 곳도 있는 법.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고 오름으로서의 가치나 특성을 따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전을 예고하며 기다리는 곳도 있다. 바로 가문이를 두고서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방이 트였지만 유일하게 가문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성불오름이다. 그러나 막아선 산 체라기보다는 보호를 하며 공존의 터전을 채우는 형상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마주한 성불오름에는 예전에 암자가 있었으며 그 산 체의 모양새를 두고서 승이 염불하는 모습에 연유하여 붙은 명칭이다. 가문이는 이와 연계를 해 볼 때 승려가 문 앞에 엎드린 형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낮고 펑퍼짐한 산 체를 두고서 높이나 규모를 운운하기 전에 낮은 자세로 임하는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염불을 외는 승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묵도와 기운도 받아주라고 성불오름을 향한 염원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낮은 산체는 볼품을 떠나서 숨은 채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는 겸손함 마저 지니고 있다. 행여 누가 보고서 쫓아올까 두려운 건지. 아니면 낮고 허접한 때문에 수줍어하는 때문일까. 도로변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는 오름이지만 등성에 올라서면 반전이 이뤄진다. 오직 성불오름만이 한 방향을 가리면서 방해를 할 뿐 주변에 이렇다 할 건물이나 산이 없는 때문에 낮아도 전망은 일품이다.

조용하던 주변에 아트 랜드 건물과 관람 장소가 들어섰지만 가문이는 연연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필이면 자신이 섬기는 성불오름을 가로질러 뮤지엄이 생겼지만 크게 슬퍼하지는 않으려는 것 같다. 아직은 자신의 어깨를 짚고 바라다볼 곳들이 너무 많기에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가득 품은 산 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자로 가문악(佳門, 加文)외에 감운봉(甘雲峰)이라고도 하며 다른 맥락의 표기이기도 하다.  한편, 남조로변에도 가문이오름이 있으나 명칭과의 전체적인 연관은 확연하게 다르다.

 

 

  -가문이 탐방기-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방향은 역시나 아트 랜드를 통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공연장이 생기면서 출입구와 주차장이 있어 더러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적당한 진입로를 택하여 경계를 넘으면 넓은 농지가 나오는데 평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가문이를 향한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정해진 루트는 없었다. 노루 출입을 막기 위한 시설물이 있고 겨우 넘는다 해도 고랑이 기다리고 있을 뿐, 가문이를 향한 구애 과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슭 아래는 개간이 되어 초지로 변했으며 곳곳에 우(牛)군들이 다닌 흔적이 보였다. 자신의 살을 깎아 목장용으로 내어줬지만 아픔의 흔적이라기보다는 활용가치로 인한 배려로 여길만도 했다. 기슭을 따라 이런 변화가 이뤄진 때문에 등성을 향하는 과정은 무난한 편이었다. 오름을 보려면 오름을 오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상부에 도착이 되지 않았지만 전망이 좋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정상부로 향하는 등성은 펑퍼짐한 데다 숲이나 이렇다 할 큰 나무는 없었다. 그런 만큼 이런 상황은 전망이 좋다는 것과도 일치했다. 빌레왓을 이뤘거나 초지와 수풀들이 장악을 한데다 밸랑귀(청미래덩굴)와 가시 덤불들이 섞여서 곱지는 않았다.

현장 상황으로 봐서는 봄날에 고사리 체취를 겸하는 탐방을 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른바 장대고사리로 구분을 하는 고급형의 고사리들이 많을 것 같은 때문이었다. 서향(西向)으로 활처럼 굽어진 넓은 평야는 끝이 너무 멀게 보일 정도였는데, 넓고 둥글게 이어지면서 원형처럼 보이는 자체만으로는 가문이의 화산체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가문이 자체가 말굽형이었는지 원형의 모습에서 변화가 이뤄져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단한 면적이었다. 등성의 일부에는 여기저기 노출형 지뢰들이 매설되어 있었다. 주변 상황으로는 마(馬)군들의 터전일 법한데 현장 증거물을 확인하니 우(牛)군들의 영역이었다. 지뢰를 매설한지는 제법 되어 보였는데 노출형 지뢰이기는 하나 늦가을 잡초들이 일부를 가리고 있어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이미 화약 성분은 사라졌지만 새 신발인지라 펄쩍 뛰면서 피했다. 정상부 가까이에는 수령이 제법 되어 보이면서도 왜소한 폭낭(팽나무)이 한 그루 있었다. 허허한 주변의 정상부 근처이지만 마땅한 표식거리가 없어서 인증샷을 대신했다. 독식을 하며 굵고 길게 뻗어도 되련만 척박한 환경인지라 위와 옆으로 자라는 데는 한계가 따르는 모양이었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등성을 따라 이동을 한 후 다시 오던 방향으로 향했다.남북으로 이어지는 등성을 따라 큰 굴곡이 없는 산 체이지만 둘러보기에는 편안한 편이었고,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사방이 다 트인 때문에 어느 곳 하나 놓치지 않고 볼 수가 있었다. 성불오름만이 일부를 가리지만 이를 대신하여 자신의 자태를 너무 섬세하게 보여줬다. 

선 채로 오름 군락이 선물하는 실루엣을 바라볼 수 있는 자체로도 가문이의 반전은 충분했다. 백(back) 코스를 거부하기에는 여건이 안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향하면서 바라본 농지의 모습에서 또 다른 추측을 하게 되었다. 반대편 상황이 그러하듯 이 넓은 대지를 창조한 것은 가문이의 활동 당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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