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올레걷기) 새해 첫날, 한라산을 벗 삼아..바다가 빛나는 서우봉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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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 새해 첫날, 한라산을 벗 삼아..바다가 빛나는 서우봉을 넘다
  • 고현준
  • 승인 2022.01.0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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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19코스, 조천만세동산-너븐숭이기념관.. '너무 낯선 돌무덤 앞' 용서의 길

 

 

 

2022년 새해는, 우리나라에도 과연 서광이 비친다는 뜻일까..

따사로움을 머금은 하늘..

임인년, 2022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붉은 빛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한 하늘 아래 봄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일년에 한 두 번 보일까 말까 하는 비밀의 섬 추자도까지 눈에 잡혔다.

기온조차 포근해 겨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기만 한 날씨였다.

이 날은 새해를 처음 맞이하는 날이고..

게다가 날씨조차 좋다는 것은 올레길에 나서기가 좋다는 얘기와 다름 없었다.

 

 

 

벌써 2주째나, 폭설과 강풍으로 날씨가 나빠 걷지 못했던 올레..

올레꾼 고광언 선생도 이 날을 계속 기다려오던 터였다.

오전 일찍 전화를 걸어 “새해 첫날인데 올레를 걷자”고 의기투합했다.

“오늘은 19코스 조천 만세동산에서 너븐숭이까지 걷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 구간이 딱 중간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주올레19코스가 시작되는 올레안내소에 도착했을 때도 올레사무소 직원이 일부러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새해 인사를 건네 기분을 좋게 했다.

그 새해 인사가 참 여러가지로 좋은 출발을 만들어 주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만세동산을 지나 들길로 들어섰는데..

뒤로 보이는 눈 쌓인 한라산이 또한 절경이었다.

 

 

 

이날 제주올레19코스는 어딜 가나 한라산이 중심이었고 주인공이었다.

그 한라산은 가는 곳마다 불쑥 나타나 올레를 걷는 우리를 맞이했다.

또 하나 놀라운 발견은..

익숙한 것에 대한 거리감이었다.

처음 이 길을 걸을 때는 뭔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느낌이 있었다.

왠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만 골라 걸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올레코스가 그렇지만, 처음 걸을 때는 무척 멀고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나 몇 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는 익숙함은 그 모든 불편함을 앗아가 버린다.

이날도 그랬다.

여러 번 이 길을 걷는 경우라서 그랬는지..

올레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해서 걸어도 올레길과 다시 만나 조우하면서 부담없이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사는 동네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어색함이 사라진 익숙함은 이처럼 힘든 길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들길을 걸어 함덕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새해를 맞아 길거리는 물론 파도치는 모래사장과 서우봉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바다색은 또 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서우봉에 올라 함덕해수욕장을 바라 보니..

그림 같은 파도가 밀려 들어오다 스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비단을 펼친 듯 그 파도는 잠시 왔다 사라지기는 했지만..

새해를 맞아 포효하듯 오르지 못할 모래사장을 향해 수도 없이 달려들었다.

이 날은 새해 첫날..

날씨가 좋고 가는 곳마다 절경이니 정말 걷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사람 사이를 뚫고 함덕해수욕장을 지나 서우봉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또 가득 했다.

하늘에는 꿈을 향해 날으듯 세찬 바람속에서 5-6개의 인조(패러글라이더)들이 줄 지어 떠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우봉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에 올라 보는 바다와 한라산의 정경은 그야 말로 글로는 표현하지 못할 대단한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파도가 치는 하얀 모래사장 뒤로 또 한번 한라산이 우뚝 섰다.

이곳 서우봉에서도 역시, 하이라이트는 눈 쌓인 한라산이었다.

우리는 고바위길인 서우봉 정상까지 오랜 만에 올라 봤다.

예전에는 두 번이나 샛길을 가로질러 북촌으로 넘어 갔었는데..

이번에는 정상적인 올레길을 걸었다.

하지만 정상에 이르자 마음이 변했다.

 

 

 

제2숲길이라는 서우봉 뒷길을 선택해서 걸어 보기로 했다.

해변 뒤쪽이라 그런지 이 숲길은 포근한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바람을 막아줘 쌀쌀하지 않았고 나무들조차 호젓한 숲길을 만드는 길이었다.

그 숲길을 무작정 걸어 나가니 길은 사라지고 예쁘게 정돈된 밭이 나타났다.

서우봉 뒤편에는 유독 잘 정돈된 밭이 많았다.

지금은 대파가 풍작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파종하지 않은 밭을 건너 올레길을 찾아 내려갔다.

서우봉 동쪽은 북촌리다.

북촌리 앞바다에는 예쁜 섬이 하나 있다. 섬의 모양이 물개를 닮았다는 ‘다려도’다

해안가를 따라 파도 치는 그 바다 위에 예쁘게 자리잡은 섬..

 

 

 

그 멀리서 보이는 바다가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멀리 보이는 섬의 모습..다도해다. 훤히 드러난 여러 섬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부딪치는 파도들..

올레길에서 만난 새해는 만족한 새해를 맞이하라는 명령과도 같았다.

이렇게 좋은 날..

따뜻한 날씨에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올레걷기.

올레꾼에게는 참으로 만나기 힘든 행운의 길이기도 했다.

 

 

 

올레길은 걸어야 제맛이다.

올레길이 저기 있으니 언젠가는 가리라는 소망은 늘 미완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새해 첫날 2022년 1월1일..

이날 우리에게 보여준 하늘은 희망을 잃지 말라는 하늘의 권유처럼 느껴졌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

나라를 위해 제대로 일해 줄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새해는..

국민들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올레길을 걸으며 마음의 우울함을 달래는 것도 당면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식이 되리라.

언젠가 하루종일 올레길을 걸으면서..

호연지기를 기르려고 한다면 지금 당장 올레길에 나서야 한다.

이 길을 완주했을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은 아마 뭐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을 넘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해 볼 것을..

그렇게 올레길에 나서 보기를 다시 한번 권해 본다.

우리가 이날 걸음을 멈춘 곳은 아기무덤이 있는 너븐숭이기념관이었다.

이곳에는 시비가 하나 서 있다.

 

이 시를 소개한다,

 

 

 

 

애기 돌무덤 앞에서

-지은이 양영길, 글쓴이 황요범

 

한라영산이 푸르게

푸르게 지켜보는 조천읍 북촌마을

4.3사태 때 군인 한 두명 다쳤다고

마을사람 모두 불러 모아 무차별 난사했던

총부리 서슬이 아직도 남아있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너븐숭이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아직 눈도 떠 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눈에는

너무 낯선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누가 이 주검을 위해

한 줌 흙조차 허락하지 않았을까

누가 이 아기의 무덤에

흙 한 줌 뿌릴 시간마저 뺏아 갔을까

돌무더기 속에 곱게 삭아 내렸을

그 어린 영혼

구천을 떠도는 어린 영혼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용서를 빈다.

제발 이 살아있는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용서를 빌고 또 빈다.

 

이 시비 바로 옆에는 추위와 맞서서 피어난다는 1월의 꽃 수선화가 아기인형 바로 앞에 자리잡아 활짝 피어 있었다.

이 제주의 겨울꽃 수선화는 '신비'와 '고결'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고향을 뒷배경으로 선 올레꾼 고광언 선생
고향을 뒷배경으로 선 올레꾼 고광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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