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순례길 탐방)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당해도 먼저 저 여인을 살리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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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순례길 탐방)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당해도 먼저 저 여인을 살리고 봐야겠다."
  • 고현준
  • 승인 2022.07.0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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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가는 길 헤관정사-정방사,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나게 사는' '보살행의 길'

 

 

 

 

‘우화로 읽는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얘기중에 한 잘 생긴 스님을 좋아한 젊은 여자가 자기와 결혼을 안 해주면 죽어버리겠다고 공갈, 협박을 받은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스님이 “여자를 살리고 지옥에 떨어질 것”을 각오한 고민 끝에 여자도 살리고 스님도 해탈의 경지에 오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어떻게 그런 여자를 살리고 본인도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

스님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해 웃음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이 글 말미에 적어 놓으려고 한다.

 

 

 

지난 2일 서귀포시 보목리에 위치한 법화도량 혜관정사를 찾았을 때, 참 특이한 절이다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독특했다.

주차장은 아예 절 마당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절 마당 옆에는 60여의 돌부처가 길게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절 마당에서 보는 보통 절의 대웅전 현판에는 한 가운데에  ‘여래전신 칠보묘탑’이라는 이름으로 대웅전을 나타내는 현판이 걸려 있었고, 특히 절 지붕 위에는 사방으로 부처님이 우뚝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대웅전 위에는 누워있는 부처님 그림 위로 다시 ‘여래전신 칠보묘탑’이라는 전서로 쓴 글귀도 보였다.

모든 게 특별하게 만들어진 절이었다.

같이 걷던 고광언 선생은 “이 절은 제주도에는 몇 개 없다는 법화도량 중 하나”라고 얘기해 줬다.

우리가 찾은 아름다운 혜관정사는 보목천변에 서 있었다.

 

 

 

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다음 가야 할 방향으로 걸어 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코스인 절터라고 쓰여진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제지기오름 앞에서 절로 가는 길 리본을 잃어버린 우리는 무작정 제지기오름 옆 제주올레 6코스길을 따라 걷는 수 밖에 없었다.

제지기오름 옆 길을 따라 보목포구 입구로 난 오름 맞은 편에 왔을 때야 불교순례길 리본이 달려 있어 절터가 제지기오름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우리가 여름이면 자리물회를 먹기 위해 즐겨 찾는 보목포구를 그렇게 지나쳐 걸었다.

날씨는 무척 더웠고, 땅위로 올라오는 온기를 맞으려니, 땀이 비가 내리듯 온몸으로 쏟아졌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다시 아름다운 보목 앞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옆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섶섬이 바로 보이는 바닷가 작은 공원에서 만난 보목리에 대한 시비..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었다.

 

 

 

 

보목리 사람들

-한기팔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있지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甫木里) 사람들은 그걸 안다.

보오. 보오
물오리 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滿潮) 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

가장 큰 바다는
언제나 우리의 등 뒤에 있고
이 시대(時代)의 양심(良心)인 양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

다만 눈으로만 살아가는
이웃들끼리
먼 바다의 물빛
하늘 한쪽의 푸른빛 키우며
키우며 마음에 등(燈)을 켜고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보려거든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甫木里) 에 와서 보면 그걸 안다.

 

 

섶섬 바로 앞에 놓인 시비였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었는데..왜 오늘은 이 시비가 보였던 걸까..

바로 옆에는 이 시를 쓴 한기팔 시인에 대한 소개비도 있었다.

 

-1937년 서귀포시 보목리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수학

-1975년 심상 1월호에 시 ‘원경’ 외 2편이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옴

-시집으로 ‘서귀포’ ‘불을 지피며’ ‘마라도’ ‘풀잎소리 서러운 날’ .. 등이 있음

-제주도문화상, 서귀포시민상, 제주문학상, 문학아카데미 제정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수상 등 자세한 설명이 돼 있었다.

그 옆으로는 붓꽃이 활짝 피어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또한 섶섬은 구름과 함께 그림처럼 앉아 있었고..

그 시비 하나가 주위와 잘 어울리게 만들어져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의 아쉬움은..

우리는 불교순례길을 걷는 중인데..

이 코스는 소천지와 소정방까지 이어져 올레6코스와 겹치는 길이라는 점이다.

제주올레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뭐라 비교해 말할 것인가.

하지만 순례길은 이와 조금은 달라야 한다,

꼭 아름다운 길 만을 찾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코스를 그대로 따라 보목리 하수처리장을 지나 다시 길고 긴 더운 바닷가 길을 또 걸어야 했다.

한여름 땡볕에 포장된 길을 걷노라니..

참으로 쉬운 수행길은 아니었다.

더위라도 식히고자 서귀포 칼호텔 앞 바닷가길을 걸어가다 나타난 음지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

세수도 하고 발도 물에 담그기 위해 잠시 신발을 벗고 돌 위에 앉았다.

계곡물은 언제나 시원한 법이지..

물줄기가 세찬 계곡 옆으로는 예쁜 꽃까지 피어 있어 작지만 열을 식히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다시 이곳을 나와 계단을 따라 동산을 오르니 파라다이스 호텔이다.

서둘러 호텔을 가로질러 소정방으로 향했다.

나무데크가 깔린 길을 따라 걷는 일도 덥기는 마찬가지로 똑 같았다.

여름 수행길은 이처럼 뜨거운 열기와의 싸움이다.

소정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하도 더워서 그 작은 폭포를 바라다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소정방을 그냥 지나쳐..

시인의 산책길에서 또 잠시 쉬고..

다시 정방폭포 쪽으로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정방폭포주차장까지 걸었지만 그 다음 방향을 알 수가 없어 관광안내소를 찾아 들어가 우리가 가야 할 정방사의 위치를 묻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복공원을 지나 밖으로 나왔지만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 GPS를 연결해서 찾았지만 절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냥 걸어서 큰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반대편쪽 길 안쪽으로 대웅전의 모습을 한 기와집이 멀리서 보였다.

다시 걸어내려와 그곳을 찾아가려 했지만 절로 들어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아무런 안내표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 입구에 서서..

그 길이 절 입구인 줄도 모르고 택시를 부르고 말았다.

텍시를 타고 돌아와 그 길을 다시  들어서 보니 그곳이 정방사 입구였던 것을..

열심히 순례중인 고광언 선생
열심히 순례중인 고광언 선생

 

 

 

 

 

정방사는 아주 아늑한 절이었다.

절로 가는 길 홈페이지에는 드물게, 불교순례길의 몇 개 사찰에 대한 소개가 있다.

다음은 이 절에 대해 소개된 내용이다.

 

한국불교태고종 정방사(주지 혜일 스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부로12번길 19 (정방동)

 

최초의 한라산 등반기를 남긴 임제(林悌, 1549~1587년)의 ‘남명소승(南溟小乘)’에는 “정상에 도달하였다. 구덩이같이 함몰되어 못(백록담)이 되었고, 돌사닥다리로 둘러싸여”라고 기록되어 있고, “상봉(上峯)을 따라 두타사(頭陀寺)로 내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년 명맥불교를 넘어서 두타사의 불맥을 잇고자 지난 1930년 두타사 터에 창건했던 사찰이 바로 전남 장성 백양사 포교당 ‘쌍계사’ 였다.

하지만 교통사정이 너무 열악해 신도들의 신행생활에 많은 불편이 있다보니 부득이 이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 1938년 지금의 정방폭포 위쪽인 동홍천 하류에 위치한 이곳에 터를 잡게 되면서 사찰명도 쌍계사에서 지역명을 따른 듯 ‘정방사’로 변경했다.

정방사는 그 당시만 해도 서귀포시 중심에 자리해 근대불교의 시초라 불릴 만하다. 정방사 경내에는 ‘옥루천’이라는 맑은 샘이 솟았다고 한다.

그 샘 주변 바위에 ‘세심정(洗心停)’이란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예전 스님들이 이곳을 ‘마음을 닦는 수행터’로 각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랜 역사만큼 정방사에는 일제 당시 불교의 잔재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 대웅전 처마 모습과 기단 위에 나무틀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종각의 형태는 전형적인 일본불교의 모습이다.

정방사는 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일제가 뿌리내린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우리 민족의 전통불교를 회복과 불교 대중화를 위해 힘써 나가고 있다.

정방사는 지난 2009년 대웅전 중창불사 기공식 및 1000일 기도 입재법회를 봉행했다. 대웅전은 전통 목재양식을 165㎡(50평) 규모의 정5칸 팔작지붕 형태로 장엄하게 우뚝 서 서귀포 근대불교의 산실로서 명맥을 유지하며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정방사는 다시 차를 타고 들어가 어렵게 찾게 됐지만..

이 절 앞에는 아주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에 좋은 작은 계곡이 ‘정모시쉼터’라는 이름의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더워서인지 벌써 아이들은 물장구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정말 좋은 곳에 자리잡은 쉼터가 이 절 앞에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이 절에서 절로 가는  선정의 길 2구간 마지막 절인 구룡사까지는 1.4km 정도 남아 있었지만 이날 순례는 정방사에서 마치기로 했다.

정말 할 일을 다한, 최선을 다해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특이한 절의 모습을 보며 시작한 순례길 걷기는, 시원한 계곡물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마친 날이됐다.

 

 

 

 

여인을 살리고 지옥에 떨어지다(?)

 

한량없는 먼 옛날에 염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조용한 숲속에서 420만년 동안이나 살면서 수행을 한 터라 그 행동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사갈국에 걸식하러 갔다. 그런데 한 옹기장이의 딸이 염광의 준수한 용모를 보고 반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내로 삼아달라고 빌었다. 이에 염광이 말했다.

“저는 수행자이므로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여인이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만일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염광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계율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수행자다. 계율을 어기면 모든 것이 헛일이 되고 만다. 내가 저 여자에게서 일곱 걸음만큼 떨어져서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품는다 해도 계율을 범한 것이며 곧 지옥에 떨어지는 죄다. 그런데 저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죽어버린다고 하니 이 일을 어쩐다?’

머뭇거리며 고심하던 염광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당한다 해도 먼저 저 여인을 살리고 봐야겠다’

염광은 곧 그녀를 따라가 혼례를 올리고 12년동안 살다가 마침내 수명이 다하자 지옥에 떨어지기는 커녕 그 보살행으로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다.

-우화로 읽는 팔만대장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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