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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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5)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8.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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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제주아리랑의 위상 연구-3(제2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27일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Ⅳ. 전통아리랑으로서의 제주 아리랑

일반적으로 오래된 전통 아리랑으로 셍각하는 밀양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은 정말 오래된 것일까?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사실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존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아리랑 발생시기는 19세기로 보고 있고, 지역별 아리랑은 1930년대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 있다. 그렇다면 제주아리랑과 비교하면 어떨까?

 

4.1 제주의 전통아리랑

제주도에서 불리어 온 민요 중에서 추가로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육지에서 말하는 지역명이 붙는 아리랑 명칭은 1929년부터 시작되어 1930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없어도 아리랑으로 판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1932년 이래로 《제주도실기(濟州島實記)》에 수록된 <꽃타령> 등을 비롯하여, 일명 <신촌 아리랑>, <한라산 아리랑>, <우도 잡노래> 등에는 아리랑 관련 후렴구가 있다. 시기적으로는 신민요나 유행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옛날부터 전해온 전통민요로서의 제주 아리랑은 아직 연구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불린 노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민요 중에서 오래된 것으로 1912년 채집된 이요⋅이언 및 통속적 독물 등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1912년)에 수록된 것이 있다.

 

384

已虛島 已虛島 已虛하면

나 눈물 난다

남의 집 살이 官長 살이하던

밥도 두고 간다 (大靜郡)

(韓國民謠集Ⅵ–384)

 

385

歲月아 歲月아

가지를 마라

長安 豪傑이

다 늙는다 (大靜郡)

(韓國民謠集Ⅵ–385)

 

386 太平歌

난봉이 났네

난봉이 났네

남의 집 獨子

또 난봉이 났네 (大靜郡)

(韓國民謠集Ⅵ–386)

 

387

우리나라 聖神天子

하늘같이 비나이다

光華日月 文明世界

萬壽無疆 하옵소서 (旌義郡)

(韓國民謠集Ⅵ–387)

太平歌

 

388

國泰民安하고

時和年豐하야서

康衢烟月 좋은 달밤

거리 거리 童謠 소래

太平歌나 불러보세 (旌義郡)

(韓國民謠集Ⅵ–388)



둘째, 채집된 민요 중에는 넓은 의미에서의 전통 아리랑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즉 연구사 측면에서 볼 때 아리랑이라는 구절이 나타나야만 아리랑인 것은 아니ᄓᅵ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춘원 이광수는 1927년에 쓴 관련 글에서 아리랑이라는 구절이 없어도 아리랑 노래로 보고 있다. 후렴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부터 불리던 아리랑이 경복궁 중수 시기를 기점으로 확대 재생산 되었다는 측면에서 아리랑 발생설에 등장하는 유사한 구절이나 내용이 노랫말에 들어있다면 넓은 의미의 아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제주아리랑의 모습은 1912년 《이요 이언 및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 있다. 노래 자료 중에서 <타맥가>는 채집 지역이 정의군으로 되어 있어서 지금의 제주도 성산포 등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이 된다.

 

打麥歌

389

魚遊河 흥

我何苦 흥 (旌義郡)

(『韓國民謠集』Ⅵ-389)

 

이 노래는 조용호, 「4행의 노랫말에 담긴 아리랑의 비밀」, 『우리 문화』, 컬쳐플러스, 2013, 18~20 에서 넓은 의미의 제주 아리랑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 다른 종류의 노래 중에 <토역가> 라는 것이 있다. 제주농림고 학생들이 채집한 것이다.

 

土役歌

424

에야야 호응

에기두리 더러매에

에 흥 에로다아

에야아 호오옹

甲子 四月 初三日날

景福宮의 土役할 적에

灰방아 찧던 소래로구려

(濟州公立農業學校) (『韓國民謠集』Ⅵ-424)

 

경성, 즉 서울의 이야기가 제주에서 불리고 채집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성에서 불리던 노래가 특정한 사람들을 따라와 제주에 정착되고 전파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이 경복궁 중수시기에 널리 확대 되었다는 발생 시기적 측면에서, 넓은 의미의 제주 아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간과되었던 자료들도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발굴과 고증을 통해 제주에서 불리던 아리랑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주 아리랑은 밀양, 진도보다 시기적으로 어떠할까? 늦은가 빠른가? 시기적으로 비교해 보면 이러한 가사의 아리랑이 채집된 것은 밀양아리랑의 경우 1930년 6월이다. 제주 아리랑이 더 빠르다. 그리고 진도, 정선 아리랑 등은 이전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이들 아리랑을 신민요 또는 유행가로 판정하고 있는 것이다.

 

4.2 다른 지역 아리랑과의 비교

조선 민요에 대한 국내외 각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가사 채집이 진행되고 있던 1930년 6월, 월간지 조선(朝鮮)에 투고된 김지연의 글 「조선민요 아리랑」 에는 다양한 지역 명칭이 노래 제목으로 나온다.

 

밀양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아리랑 얼시구노다 가게

십오야 밝은 달에 님 업스면

단장에 상사로 눈물이 난다

 

서울아리랑

 

아서라 말아라 네가 그리 말아

사람의 괄세를 네가 그리 말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속에서 넹겨 넹겨 주소

 

6개월 후인 1930년 12월, 새롭게 수록된 자료에는 정읍⋅신태인 아리랑이 나타나며, 용천이라는 지명도 나온다.

 

정읍⋅신태인 아리랑

 

논 중에 옥토는 신작로로 들고

사람이 난놈은 감옥으로 든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 조흐면 저질알인고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더 변형이 되면 순창아리랑 형태가 된다.

 

순창아리랑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

거름손이나 하는 놈는 제자품

팔고(길품)

물자먹이나 하는 놈은 전중이가고

 

후렴구 내용을 보면 정읍⋅신태인 아리랑이 발전하여 순창아리랑이 되었고, 이것이 변형되어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라는 형태의 영천아리랑이 되었다. 영천아리랑의 원조는 순창아리랑 이며, 영천은 용천의 오기이다.

인접한 남원 지역에서 유행하던 남원아리랑도 있다. 두 종류가 전한다.

 

남원아리랑 2

 

날좀보소 날좀보소 나를 조매보소

동지섯달 꽃본드시 나를 조매보소

아리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얼씨고 날 넘겨주소

 

남원아리랑은 밀양아리랑과 가사가 비슷하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먼저 생겼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이는 가사에 나타나는 “날좀보소 날좀보소 나를 조매 보소”라는 표현을 통해 판정할 수 있다. “날좀보소”나 “조매보소”는 밀양에서 사용되는 방언적 표현이다. 밀양아리랑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 생겨난 것이 남원아리랑이라는 뜻이 된다.

전래되는 노랫말의 형태를 통해 아리랑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Ⅴ. 결론

한국은 아리랑의 나라이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국적으로 밀양⋅진도⋅정선⋅해주⋅강원도 등 다양한 지역 아리랑이 존재한다.

그러는 가운데 제주지역 아리랑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제주아리랑이란 제주지역에서 불렸거나 불리고 있는 아리랑을 뜻한다.

제주아리랑의 존재여부 등에 대해서는 대중의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1973년 대중가요로 발표된 <제주도아리랑>을 기점으로 제주에도 아리랑이 있다는 개념이 생성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특정한 환경하에서 제주아리랑에 대한 채집이 있었고, 그중에서 조천아리랑이 발견되어 제주도아리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돠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아리랑 후렴구가 들어있던 기존의 민요 중에 일부가 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1932년 이래로 《제주도실기(濟州島實記)》에 수록된 <꽃타령>을 비롯하여, 창작곡인 <한라산 아리랑>, 해녀 할머니가 부른 <우도 잡노래> 등이 그러하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제주아리랑에는 4수의 노래가 포함되고 있는 셈이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노래들에 아리랑 관련 후렴구가 있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는 신민요나 유행가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측면에서 옛날부터 전해온 전통민요로서의 제주아리랑에 대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12년 채집된 이요⋅이언 및 통속적 독물 등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1912년) 자료에는 전라남도 부속도서로서의 제주도 민요가 나온다.

이러한 노래들에는 1930년대 아리랑 발생설에서 나오는 아이롱(我耳聾), 아리랑(我離娘), 아난리(我難離), 아랑(阿娘), 아랑위(阿郞偉), 알영(閼英) 등 관련 구절들이 나오기 때문에 당대인이 생각하던 넓은 의미에서의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불렸던 아리랑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세부적인 분석을 통해 더 큰 차원의 제주아리랑과 연원에 대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아리랑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깊이 분석하고, 아리랑의 원형과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콘텐츠 분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제2부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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