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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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5)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9.0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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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전통아리랑 연구 -2(제11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열 한번째 주제는 '전통아리랑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Ⅲ. 신아리랑의 출현

전통적인 아리랑과 신민요로서의 아리랑을 구분하는 분수령이 되는 것은 1920~30년대이다. 그중에서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서 김지연은 영화 ‘아리랑’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가사를 <신(新) 아리랑>이라고 다르게 명명하였다.

<신아리랑>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출현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정식 노래 곡목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新아리랑>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를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豐年)이 온다네 풍년(豐年)이 온다네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이 온다네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에 초목은 젊어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靑天) 하늘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신아리랑>은 기존에 불리던 아리랑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곡명이다. 내용이 다른 다수의 <신아리랑>이 나타났으며, 신민요라는 명칭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주제가 ‘아리랑’과 <신아리랑>을 비교하면, 영화 주제가 ‘아리랑’의 4절을 <신(新)아리랑>에서는 2연으로 했고, ‘십리도’가 ‘십리를’로, ‘이 강산 삼천리’가 ‘삼천리 강산’으로 바뀌었으며, 일부의 글자도 한자로 바뀌었다.

한편, 같은 해 7월에 수록된 <신아리랑>은 이전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나중에 나타나는 <신아리랑>이라는 곡명도 모두 이러한 변형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1934년 <최신 아리랑>⋅<마즈막 아리랑>⋅<아리랑 눈물고개>⋅<아리랑 눈물고개> 등의 노래가 레코드로 취입되었다. 강남향⋅고복수⋅이난영은 함께 <신아리랑>을 불렀다.

1930년대 중반에 다양한 종류의 <신아리랑>이 대거 등장하여 유행한 이래,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외에도 <新아리랑>⋅<별조 아리랑>⋅<아리랑 타령>⋅<新아리랑>⋅<新作 아리랑> 등의 형태를 수록하였다.

명명 방법은 지역명이 붙는 아리랑과 관련하여 <{하나 또는 두 개의} 지역명(또는 道) 명칭+아리랑>(타령/打鈴/세상)이라는 형태를 사용하였고, <新아리랑>⋅<별조 아리랑>⋅<아리랑 타령>⋅<아리랑 打鈴>⋅<아리랑 고개>⋅<新作 아리랑> 등과 같은 형태의 명칭도 사용하였다.

<서울아리랑>이라든가 <별조아리랑>도 등장하였는데, 이는 후일에 또 다른 명칭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김지연의 글이 발표된 다음 달에 김재철은 「민요 아리랑에 대하야(3)」(조선일보, 1930.7.13.)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에 불리고 있던 또 따른 형태의 아리랑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노래의 성격과 관련하여, 시대에 대한 반감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풍자적이라는 형태로 시대에 대한 원망(怨望)을 나타내는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경복궁 타령과 같은 동시대에 나온 노래들을 풍자미(諷刺味)가 농후한 반감의 노래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는 『조선풍토가집(朝鮮風土歌集)』(眞人社, 1935)에서 아리랑(アリラン)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에 사용하던 아라랑(アララン)이라는 대신에 아리랑(アリラン)으로 정정하여 표기한 것이다.

1941년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에서 님 웨일즈(Nym Wales)는 아리란(Ariran)으로 표현하였다.

아리랑이 만들어진 시기가 조선시대이며, 노랫말에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없었는데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비밀결사의 노래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이는 1918년 『호박 목걸이』에서 아리랑이 정치적 성격을 띤 암호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참요 성격을 띤 비밀결사의 노래로 외면에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신아리랑>이 과거로부터 연속되며 나아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1959년 성경린⋅장사훈은 <본조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진도 아리랑>, <긴아리랑>, <신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과 같은 명명법을 사용하여 아리랑의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11절로 된 <본조(本調)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이다.

이 명칭이 등장함으로써 후일의 연구자들은 <아리랑>이 <본조아리랑>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명칭을 <본조 아리랑>이라고 한 것은 지방의 아리랑 노래와 구별하기 위하여, 즉 서울 지역의 아리랑을 정의하려는 시도였다.

아리랑에 ‘본조’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별조 아리랑>과 대응되는 다른 의미를 정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리랑>을 <본조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모름지기 연구사 검토를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한편, 1929년 헐버트가 채집한 아리랑은 구전되는 과정 속에서 변형을 거치다가 『조선민요집』에서 <경기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나타난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도깨 방망이로 모도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노다가게 <아리랑(1)>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도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게 <경기 아리랑>

 

내용상으로는 동일하지만 이전에 <아리랑(1)>이라는 이름으로 채보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경기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수록한 것이다. 노래의 명칭을 <경기 아리랑>이라고 한 것은 경기 지방에서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 아리랑은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변형의 과정을 겪기도 하였지만 원형적인 형태로도 남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Ⅳ. 백과사전의 구성

아리랑은 전통적인 노래로 존재하다가 1920년대에 이르러 새롭게 나타난 신민요 아리랑의 영향에 의해 변형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전통아리랑은 기본적으로 변형이 일어나지 않은 원형적 특성이 담긴 노래를 뜻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전통아리랑은 백과사전에 어떠한 내용을 기술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찰해 보기로 한다.

한 예로, 대표적인 백과사전 중의 하나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특정한 용어의 정의를 위해 내용, 현황, 의의와 평가 등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된다.

 

4.1 내용

아리랑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전부터 전해오던 전통아리랑이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다. 1894년 『매천야록』의 기록을 통해 궁궐에서 연행되는 아리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896년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처(Alice Fletcher)는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학생 3명에게 노래를 부탁하여 원통형 음반에 녹음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녹음기록이다. 같은 해, 헐버트는 아리랑 계통의 한 곡을 서양악보로 채보하였다.

1912년 채집된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는 아리랑이 전국에 걸쳐 불리고 있고, 향토민요로서의 <정선 아리랑>에 대한 가사도 나타난다.

 

아라리 타령을 누가 냈나

장안(長安) 멋아비 내가 냈네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야

아르랑 속에서 노다 가오 <영월군> (『한국민요집 』Ⅵ-638)

 

<아리랑 타령>

아리랑 아라리로구려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로구나

어러렁 어러렁 어러리로구나

어러렁 얼씨구 어러리야

어리랑 고개가 의거리 충단을

몰구서

정든 임 오기를 고대할까 <원주군> (『한국민요집 』Ⅵ-695)

 

강원도 영월군에서 채집된 노랫말에는 아라리 타령이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원주군에서 채집된 가사에는 <아리랑 타령>이라는 곡명도 나타나고, ‘어러리로구나’에서는 ‘어러리’라는 구절도 나타난다.

가사 중에는 물과 관련된 내용들도 있다. 헐버트가 아리랑이 뱃노래의 전통에 기인한다고 한 내용과 관련이 있다.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 띄어라

배 띄어라 (한국민요집Ⅵ–35)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 뜨여라 놀다 가게 (한국민요집Ⅵ–153)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아라랑 철철 배 밀어주게

아라랑 고개다 술막을 짓고

정든 임 오시기를 고대 고대한다 (한국민요집Ⅵ–283)

 

‘배’라든가 ‘배 띄어라’는 표현이 노랫말에 빈번하게 나오기 때문에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형태의 후렴구가 있는 노래는 ‘배를 띄우는’ 내용의 노래와도 관련이 있다. 또한 ‘배’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뜨여라’는 표현이 노랫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1913년에 녹음된 <경셩 아르렁 타령>이 있고, 1916년에는 독일에서 포로가 된 한국인이 부른 것도 있다. 1918년 메리 테일러는 금강산에서 아리랑을 채집하였다.

1929년 『조선민요집』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 지역의 <경기 아리랑>, 북한 서부 지역을 위주로 하는 <서도 아리랑>, 강원도 부근의 <강원 아리랑>, 경남 지역에서 불리는 <영남아리랑> 등이 악보와 함께 소개되었고, 전라도 지역에도 특이한 형태의 아리랑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아리랑은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에 채집되었지만 향토아리랑에 해당한다.

민간에서 전해지던 전통 아리랑은 1920년대에 이르러 곡조와 가사에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26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주제가 <아리랑>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곡명으로서의 <신(新)아리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절정을 이루기도 하지만, 이후에 신민요 아리랑이 퇴색하면서 점진적으로 그 자리를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에게 물려주게 된다.

 

4.2 현황

전통아리랑은 시기적으로 1920년대 이전에 만들어져 불리어온 아리랑을 뜻한다. 헐버트(H. B. Hulbert)가 채보한 <경기 아리랑>(1896년), 앨리스 플레처가 녹음한 아리랑(1896년), 영월군에서 채집된 <아리랑 타령> 등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1912년)에 나오는 전국의 아리랑, <경셩 아르렁 타령>(1913년), 독일에서 포로가 된 한국인이 부른 아리랑(1916년), 메리 테일러가 채보한 아리랑(1918년) 등은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전통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유행하던 전통아리랑이 기록 속에서 존재하는 형태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향토민요적 성격의 아리랑이 있다. 이전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각 지역별로 자생적으로 전승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 일부는 신민요에 편입되었다가 대중가요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4.3 의의와 평가

전통아리랑은 아리랑의 본질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형태이다.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는 다양한 원형적 특질들을 추출함으로써 아리랑의 근원적인 성격을 알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원형적 심성과 공감대를 알아낼 수 있다.

한민족 정신세계의 원형(Archetype)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민족혼(民族魂) 아리랑의 문학 장르적 특성과 텍스트 상황을 밝히는 것은 민족적 자존과 위엄을 찾는 일이며, 그 중심에 전통아리랑이 자리 잡고 있다.

전통아리랑은 역사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문화적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노래라는 차원을 넘어 문학⋅예술⋅공연⋅방송물⋅축제⋅문화콘텐츠 등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있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코리아를 상징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아리랑이 시대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도 근본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국내외 중요 행사 등에서도 전통아리랑이 연행되고 있다.

 

Ⅴ. 결론

전통아리랑이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요로서의 아리랑을 뜻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지만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도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전통적인 아리랑을 뜻한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이전에 발생한 것을 뜻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크게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향토민요적 성격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896년에 헐버트(H. B. Hulbert)가 서양악보로 채집한 아리랑(Ararung)과 앨리스 플레처(Alice Fletcher)가 원통형 음반에 녹음한 아리랑 등이 있다. 또한 1912년에 수집된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 자료나, 1918년의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 나오는 아리랑도 이에 해당한다.

전통 아리랑은 노래가 오래되었다는 측면에서 <구아리랑> 또는 <구조아리랑>이라고도 하며, 가락이 늘어졌다는 측면에서 <긴아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향토민요라는 측면에서는 강원도 정선 일대에서 채집된 3음 음계를 쓰는 <아라리 타령>(1912년) 등과 같은 지역 아리랑을 포함하기도 한다.

전통민요 아리랑은 전래되는 과정 속에서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원래대로 가창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변형이 일어나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다른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1930년대에는 <신(新)아리랑>이라는 형태의 아리랑 곡명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신민요 아리랑에 대한 유행이 약해지면서 현대적인 대중가요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전통아리랑이란 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원래의 모습대로 지속되고 있는 아리랑을 뜻한다. 향후로도 전통아리랑에 대한 정의는 본고를 바탕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제11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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