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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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43)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10.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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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의 연원에 대한 연구 -2(제20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스무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연원에 대한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이서 계속)

 

Ⅲ. 연원에 대한 고찰

아리랑 노래가 영화 아리랑에서 만들어졌다면 사실 연구할 것이 별로 없다. 소설 속의 허구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10년 후에 나운규가 인터뷰를 한 내용에는 약간 다른 게 있다.

1926년에 들어오면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배우 나운규에게 대본을 부탁하였다. 이때 구상한 작품이 바로 아리랑이다. 주제가로 만들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에 있었던 특별한 기억 때문이다.

問: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 넘겨주오” 하는 이 노래를 누가 지었어요? 한동안은 그것이 벌써 10년은 되었지만 그때 서울이든 시골이든 어디서든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겨 부르던 아리랑을 누가 지었어요?

答: 내가 지었소이다. 나는 국경 회령이 고향으로, 내가 어린 소학교 때에 청진서 회령까지 철도를 놓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롯길 둑을 닦으면서 ‘아리랑 아리랑’ 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 가다 그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었어요. 그러고는 애연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외어 보았답니다. 그러다가 서울 올라와서 나는 이 아리랑 노래를 찾았지요.

그때는 민요로는 겨우 강원도 아리랑이 간혹 들릴 뿐으로 도무지 찾아 들을 길이 없더군요. 기생들도 별로 아는 이 없고 명창들도 즐겨 부르지 않고 … 그래서 내가 예전에 듣던 그 멜로디를 생각해서 가사를 짓고 곡보는 단성사 음악대에 부탁하여 만들었지요(나운규,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 삼천리, 1937.1)

이를 통해 아리랑 노래 4절 가운데 3절에 해당하는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라는 가사는 확실히 나운규가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나머지 가사들은 옛날에 들었던 기억을 살리면서 편집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가사에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악보는 자신이 들었던 멜로디를 영화관 음악대에 알려주어 당시 리듬에 맞도록 일부 편곡하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변형되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인터뷰 기사에 대한 해석을 노래 3절만을 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확대 해석하여 아리랑 전체를 나운규가 지은 것으로 오해하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다른 부분의 가사를 지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영화가사는 어떠한 이유로 아리랑과 다르게 되었을까?

 

영화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가사가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옛날에 들었던 아리랑 노래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 가사가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인데, 그런 부분이 영화 가사에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첫 행의 경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과 동일한 형태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가 된다.

둘째 행의 고개를은 고개로로 바뀐다. 일반적으로 아리랑을 부를 때, 어떤 경우는 고개를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고개로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가사에서 고개로라는 형태를 사용하면서 더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아리랑 고개는 정릉에 있는 바로 그 고개로 넘어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정릉에 있는 아리랑 고개에는 아리랑과 관련된 사연이나 이야기가 없다.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이유 없이 팻말을 아리랑 고개라고 써 붙여 넣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노랫말 속의 아리랑 고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황스러운 일이다.

셋째 행, 아리랑에서는 가시는 님이 되고, 영화에서는 가는 님이 되었다. 이것은 가시는 님, 넘어간다, 발병난다 등에서 사용한 상대방에 대한 경칭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이것을 보정하려고 가는 님으로 수정한 것이다.

또한 당시에 유행하던 문학의 시대적인 영향을 반영하였다. 즉 영화가 나오기 5개월 전인 5월 20일에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이 출판되어 대단한 인기를 얻었는데, 여기에 보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님은 가셨습니다’가 아니라 ‘님은 갔습니다’라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하면 가시는 님에게 존칭을 쓰지 않고 자신과 동등한 처지에 둔다. 이러한 영향을 반영하여 가는 님으로 바뀌게 된다.

넷째 행, ‘발병이 나네’라는 부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발병난다’가 ‘발병이 나네’로 바뀐 것은 서술문으로 되어 있는 가사를 구어체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기존에 있던 가사를 변경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가요계에 일어났던 변화를 알면 쉽게 이해된다.

한국 가요의 역사상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기존에 있던 전통적인 노래는 대부분 신민요라는 형식으로 가사가 일부 개작되고, 리듬도 당시 상황에 맞게 변형된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아리랑 변종을 보면, ‘넘어간다’를 ‘넘어가요’라든지 ‘넘어가네’ 등과 같은 완전 구어체 형태로 바꾼 경우가 많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부 단어를 수정하여 ‘가는 님은’ ‘발병이 나네’ 등으로 바꾼 것이다. 영화 아리랑의 가사는 이렇게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가사의 변형이 영화 아리랑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1912년에 채집된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십리도 못하여 발병이 났네

(한국민요집 Ⅵ-342)

 

어르렁 打令

날 바리고 가는 임은

십리를 못 가서 발병난다

(한국민요집 Ⅵ-364)

 

수심가(愁心歌)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十里 以內에 몽동발이 되지요

(한국민요집 Ⅵ-832)

 

사랑歌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한국민요집 Ⅵ-1125)

 

영화 아리랑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가사들은 노랫말의 변이 과정을 보여준다. 오래전에 만들어져 구전되면서 미세한 변형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는 1917년 조선으로 왔고, 다음해인 1918년 금강산 장안사를 찾아간 늦은 저녁에 운명적인 아리랑 노래를 듣고 기록하게 된다. 영화 아리랑의 2절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Ⅳ. 아리랑의 기록 분석

지금까지 나타나는 아리랑 노랫말의 흔적은 1912년의 자료가 상한선이다. 그렇지만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아리랑의 연원을 고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을 바탕으로 아리랑의 본질적인 성격과 연원을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아리랑 연구는 뜻 모르는 대상으로서의 후렴구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지만 다양한 기록을 검토해 보면 결코 뜻 모르는 노래가 아니다. 아리랑의 뜻은 신뢰할 수 있는 역사 기록에 나오며, 다른 자료와 관련성이 있다.

아리랑이라는 정확한 표현과 함께 가장 이른 기록은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이며, 여성(女性)을 뜻하는 아리랑(阿里娘)이다.

또 다른 기록으로 미국인 헐버트는 「조선의 성악」, '조선 노래 모음집(The Korea Repository)'(1896, 49~50쪽)에서 ‘나는 남편을 사랑해요(I love my husband)’라는 뜻의 한자라고 기록하였다.

조선의 성악에서 아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음식중 주식인 쌀밥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후렴구는 뱃놀이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많다고 보았는데, 아리랑은 물과 관련된 노래라는 이야기가 된다.

둘째, 매천야록에 기록된 타령(打令), 신성염곡(新聲艶曲) 등의 표현을 통해 노래로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에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는 여성의 이름인 아란[阿蘭曲]이라는 형태로도 기록하였는데, 이는 최영년이 거론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중류층 이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슬픈 음조의 노래라는 측면에서 헐버트의 기록과 동일하다. 아리랑은 깊은 감동을 주는 노래로, 이미 조선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

1921년, 와다 텐민[和田天民,, '조선의 향기(朝鮮の匂ひ)', 京城:ウツボヤ書籍店, 1921]은 아리랑의 후정화적 성격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 발생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조선 말기에 궁궐에서 한창 유행하다가 이윽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널리 불리어졌다. 노래는 후정화에 비유될 정도로 애조를 띤 곡조이다.

셋째, 정선 아리랑에서는 충신불사이군의 노래로 이해하고 있다. 노랫말에 그러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른 형태로 숨겨져 있다는 뜻이 된다. 하나의 가사 속에 여러 개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넷째, 님 웨일즈(Nym Wales)가 김산(본명 장지락)과의 인터뷰를 통해 쓴 '아리랑(Song of Ariran)'(1941년)에 의하면, 아리랑이 만들어진 시기는 몇 백 년 전인 조선시대(Li Dynasty)이며,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비밀결사의 노래(secret revolutionary version)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참요 성격을 띤 비밀결사의 노래로 외면에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섯째, '아리랑(Song of Ariran)'(1941년)에 의하면,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의 노래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없는 노래가 원초적 모습에 가깝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구아리랑에서 아리랑으로 재편되었다는 구조상의 개념과도 같다. 구아리랑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아리랑으로 변형되었는지 구조적⋅의미적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여섯째, 1912년에 채집된 자료를 통해 아리랑이 전국에 걸쳐 산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최남선, 김소운 등도 특정한 지역별 아리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민요들과 달리 조선의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노래이다.

그러면서 아리랑 고개가 있는 노래와 없는 노래로 구분된다. 이는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변화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비밀결사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그에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불리고 있다. 아리랑에 나타나는 후렴구를 일반화 된 규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곱째, 아리랑이 특정한 시기의 문학 장르적 성격을 갖는다면 그러한 성격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특성들을 또한 만족시킬 수 있다.

한 예로 국문학사를 통하여 가극에서 신성염곡의 노래가 불리는 문학 장르가 있었는데, 노래와 춤을 이용하여 실제로 있었던 고사(故事)를 연출하고,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극의 특성으로 인하여 지방 사투리와 같은 속어를 많이 사용한다.

신성염곡이라는 의미 속에는 남녀 간의 짙은 사랑의 이야기가 등장하여 음가염곡(淫歌艶曲)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사인 변풍으로 표현한 것과 같으며, 문학 장르적 특성에 기인한다.

여덟째, 아리랑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는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아리랑 고개를 넘어 떠나가 버리자 버림받은 여인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십 리를 가기 전에 발병이 나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는 내용이다.

남자가 떠나 버리자 남아있는 여자가 부르는 한(恨)의 노래이다. 황현의 기록에서도 랑(娘)이라는 뜻이 되어야 한의 노래가 되는 개념과도 일치한다.

아리랑은 조선의 산천과 더불어 살아온 조선인의 심성을 닮은 노래이고, 조선의 산천에 동화되어 한을 표현하는 노래이다. 한의 노래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아홉째, 기록된 가사들을 분석해 보면, 아리랑 노래의 가장 본질적인 소재는 물[水]이나 배[船]에 특정한 관련이 있다. 구아리랑에 만경창파 등과 같은 물[水]과 관련된 노랫말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헐버트가 기록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역사 기록을 통해 나타나는 노랫말의 내용을 통해 아리랑의 본질적인 성격과 연원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아리랑의 연원은 근대에 만들어진 신민요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노래가 아니라. 여말선초의 참요로 다중의시 암호문 인 것이다.

나아가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의 사실은 아리랑 해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고건축 장자문의 비례 등과 같은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연구와 실측을 통해 점차적으로 그 신비한 이야기가 규명되고 있기도 하다.

 

Ⅴ. 결론

아리랑은 한민족 집단 정서의 핵심 중에서도 중추신경을 이루고 있는 민족의 노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의 뜻은 물론이고, 노래 전체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지속되어져 왔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아리랑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 영화 아리랑이 만들어진 1926년으로 단정하고 전통민요가 아니라 신민요라는 주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나아가 밀양 아리랑도 유사한 형태의 신민요이고, 진도 아리랑은 영화 아리랑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아리랑 주제가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 노래들은 유행가의 한 종류인 신민요이고, 실제적 사실과는 상관이 없는 허구의 노래라는 뜻이 된다. 아리랑 연구는 기록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한 결과이다.

2002년에 들어오면서 아리랑의 기록을 세밀하게 검토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기록에 나오는 아리랑의 뜻은 여성이며, 애조를 띤 신성염곡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조선 초기에 나온 정치적 방임주의이고, 가극 형태로 연행되며, 충신불사이군이면서 동시에 남녀상열지사, 비밀결사, 생활의 만화경(萬畵鏡),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으며, 한(恨)을 나타내고, 물을 건너는 원초적 모습 등 다양한 특성들을 가진 고전시가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리랑의 원형 재구를 통해 여말선초의 참요를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한 기록을 만족하게 된다.

또한 메리 린리 테일러의 기록이 발견되는 등 아리랑은 영화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밀양 아리랑이나 진도 아리랑 등도 신민요 형태의 리듬으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그 연원이 신민요는 아니다. 후렴구를 통해 원형을 고찰할 수 있게 된다.

아리랑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기록과 대비해 보면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유행가 노래는 아니다. 아리랑은 정선 아리랑의 전설에 나오는 여말선초의 연원에 닿아 있는 다중의시 암호문 참요이다.

앞으로의 아리랑 연구는 기록에 나타나는 다중의시로서의 본질적인 모습을 바탕으로 민족노래로서의 위상을 정립해 나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구를 하여야 할 것이다.(제20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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