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한라산의 옛이름 두모악.. 삼달1리 삼달초등학교터(갤러리 두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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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한라산의 옛이름 두모악.. 삼달1리 삼달초등학교터(갤러리 두모악)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9.01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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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악에는 사진가 김영갑씨가 20년간 제주도에서만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삼달1리 삼달초등학교터(갤러리 두모악)

위치 ; 성산읍 삼달1리 437-5번지
시대 ; 대한민국(1964)
유형 ; 교육기관

삼달1리_삼달국민학교(1994년10월)
 삼달1리_삼달분교장터(디서문)

 

삼달리 학동들은 1909년 개교한 표선국민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1945년 전후에 성읍보통학교에서 운영하는 야학에 다니기도 했다. 1941년 신산국민학교가 개교함에 따라 신산국민학교의 학구가 되었다.

삼달리에는 당콜집서당(1918년), 쵯멜칩서당(1918년), 함백이물서당(1925년)과 무명서당(1920년) 한 곳이 더 있었다. 서당 훈장으로는 康鶴瑞, 金完道, 玄圭七, 康根昌 祖父 등의 이름이 전한다. 1941년에는 康斗瑀 이장 때 향사가 건립되어 문맹퇴치를 위한 야학이 운영되기도 하였다.(1986년 삼달리지)

삼달리는 일주도로를 중심으로 도로변에 삼달2리가 거주해 있고 도로를 벗어나 산간으로 약 1.5km 올라가면 삼달1리가 있으며 삼달1, 2리 합쳐 210여 호의 학구가 신산국민학교의 학구로 되어 있었다.

더구나 삼달1리는 신산리와 거리가 최장 4.5km 이상이 될 뿐 아니라 통학로 중간에는 하천이 두 군데나 있어 비가 많이 내릴 때나 겨울철 폭설이 내리는 시기는 물론 여름철 장마 시에는 통학에 지장이 초래됨은 물론 신체가 허약한 아동의 통학에 불편한 실정으로 학구민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분교를 설립한 동기가 되었다.

분교에서는 4학년까지 수용했고, 5,6학년은 4.5km나 되는 먼 거리에 위치한 본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아동이 자연 증가로 인하여 부득이 분교를 본교로 승격할 필요를 느껴 학구민 및 학부모 기성회에서는 학교설립 위원회를 조직하여 교육청 당국에 진정한 결과 서기 1967년 3월 7일자로 삼달국민학교로 승격하였다.

주요 연혁
· 1964. 08. 20. 신산초등학교 삼달분교장 인가
· 1964. 09. 01. 신산초등학교 삼달분교장 설립인가 개교(2학급)
· 1967. 03. 01. 삼달국민학교 인가
· 1967. 04. 07. 삼달국민학교 개교
· 1970. 02. 17. 제1회 졸업생 배출
· 1973. 03. 01. 6학급 인가(삼달1리, 2리 학구통합)
· 1983. 10. 27. 미술과 과제 시범학교 발표(서귀포시 교육청 지정)
· 1984. 09. 05. 체육부 지정 농촌형 급식학교 설치 운영
· 1988. 08. 17. 4개 교실 개축
· 1994. 03. 01. 5학급 인가
· 1996. 03. 01. 신산초등학교 삼달분교장으로 개편
· 1997. 03. 01. 2학급 인가
· 1998. 03. 01. 신산초등학교로 통합(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

삼달초등학교 터에는 2002년 여름에 사진 갤러리 두모악이 문을 열었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이다. 두모악에는 사진가 김영갑씨가 20년간 제주도에서만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김영갑은 195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 한양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교 때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형으로부터 카메라 한 대를 선물받은 이후,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사진 기술을 익혔다.

이후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꿈꾸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82년 우연히 제주도에 들렀다가 제주의 때묻지 않은 자연에 매료된 뒤, 1985년에는 가족과 인연도 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예 제주에 정착해 사진 찍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그 뒤 제주의 자연을 필름에 담기 위해 사시사철 밤낮 가리지 않고 제주 전역을 샅샅이 훑었고,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절벽에 몸을 매달고 사진을 찍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찍은 필름이 약 30만 컷에 달한다.

그러다 1999년 사진 촬영을 하던 중 조금씩 손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 점점 심각해져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태로 발전하였다. 2001년 병원을 찾았다가 사지의 근육이 점점 위축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질병인 근위축증(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해, 2002년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성산읍 삼달리(三達里)의 초등학교 폐교를 빌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갤러리 부지 면적은 13,200㎡, 전시공간은 990㎡로, 20만 장에 달하는 사진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2005년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어도를 주제로 연 마지막 개인전까지 총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집으로 『마라도』(1995), 『눈·비·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2005)이 있고, 사진 수필집 『섬에 홀려 필름에 홀려』(1996), 『그 섬에 내가 있었네』(2004) 등을 출간하였다. 2003년 이명동사진상 특별상을 받았다. 2005년 병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고 그 후 시설을 재정비하여 2006년 2월 24일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였다.

2006년 5월 28일 김영갑 1주기 추모 행사로 전시 및 추모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2006년 11월 27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 부문에 선정되었고, 2008년 4월 서울 코엑스에서 '국제 영상 기자 제전 초대 김영갑 포스터전'을 개최하였으며, 2012년 개관 10주년 기획전을 개최하였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는 김영갑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전을 제주와 서울에서 꾸준히 열고 있으며, 김영갑이 작업했던 장소를 찾아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보는 ‘내가 본 이어도’ 답사 활동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더불어 갤러리 홍보와 지역민들에게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야외 공연장에서 음악회도 개최하고 있다.

2011년 현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은 폐교의 8개 교실을 이어 김영갑이 20여 년 간 활동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두모악관’·‘하날오름관’에서는 오름·중산간·마라도·해녀 등 제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유품 전시실’에는 고인이 평소에 보던 책과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다.

‘영상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모습과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정원과 무인 찻집은 갤러리를 찾는 방문객을 위한 휴식과 명상의 공간이며 야외 공연장은 지역민을 위한 문화 공연장이 되고 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작성 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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