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신선은 가 버렸어도 꽃과 돌은 남아..오등동 방선문 양응상마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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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신선은 가 버렸어도 꽃과 돌은 남아..오등동 방선문 양응상마애명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9.28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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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 1551번지 속칭 섯동네 우마급수용 연못.. 토지 250평 기증한 공덕비 있어

오등동 방선문 양응상마애명 

 

위치 ; 제주시 오등동 방선문(들렁귀) 안 동쪽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마애명

오등동_방선문양응상마애

 

水從瀛海放(수종영해방) 물길은 신선이 사는 바다로 흐르고

門對漢山開(문대한산개) 문은 한라산을 마주하여 열렸네.

仙去留花石(선거유화석) 신선은 가 버렸어도 꽃과 돌은 남아

令人機訪來(영인기방래) 사람들로 하여금 몇 번이고 찾게 만드네.

梁應祥(양응상)

 

轉句와 結句를 오문복은 〈신선이 떠난 자리에 돌이끼만 남았는데 누구를 보러 그리 많이 찾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해석하였다.

乘句의 漢은 沃처럼 보이지만 획이 복잡하여 돌에 새기기 불편할 뿐 아니라 새긴 후에 쉽게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획을 생략하여 쓴 것이다. 沃이면 삐침(丿)을 써야 하지만 이 글자는 한 일(一)자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양응상은 일제강점기 사람으로 제주시 노형리 ᄆᆞ름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호는 松峰이다. 瀛雲 高景晙의 문인이다. 죽헌 김기수의 포창문(褒彰文)을 지었다는 기록, 이응호가 양응상을 시켜 영운문집을 등사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제주인물대사전, 제주도마애명)

화암(禾菴) 신홍석(愼鴻錫. 1850∼1920)의 화암시집 부록에 이 시가 실려 있다고 한다.(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의 숨결)

연동 1551번지 속칭 섯동네 우마급수용 연못에 池鑿斯地 飮之牛馬 公然所惠 歌頌永世 乙亥四月 日 蓮花洞 謹立(이 땅에 연못을 파서 우마들이 먹도록 공이 베푼 은혜를 영원히 노래하리라. 을해년(1935) 4월 연화동 삼가 세움)이라는 學士梁應祥記念碑가 있다. 토지 250평을 기증한 데 따른 공덕비이다. 지금은 신제주사거리에 옮겨져 있다.

《작성 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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