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법정사 항일 운동 중심인물..외도1동 김상언지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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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법정사 항일 운동 중심인물..외도1동 김상언지사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0.28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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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 참여에 대한 공훈으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외도1동 김상언지사묘

위치 : 외도1동 1131-1번지. 김해김씨 문중묘지 맨 동쪽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묘

외도1동_김상언지사묘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은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마을 주민 등 700여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곤봉과 화승총 등으로 무장하여, 도순리 법정사에서 출발하여 중문리까지 진출하였다.

중문주재소를 습격해 감금됐던 13명의 구금자들을 석방하였으며, 전선과 전신주를 잘라 통신을 끊고,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집단 구타하는 등 일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김상언은 1918년 서귀포 지역의 법정사 항일 운동에서 활약한 항일 운동가이다. 김상언(金商彦)은 본관은 김해, 외도동 1715번지에서 1873년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김용진(金龍辰), 어머니는 한씨, 아들 김춘화가 있고, 김집언(金楫彦)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김상언은 법정사 항일 운동의 중심인물이다. 법정사의 주지로서 교도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하였으며, 1918년 10월 5일, 6일의 법정사 정기 예불에 참석하여 김연일(金蓮日)이 제주도에서 일본인을 쫓아내려한다는 취지의 법정사 항일 운동의 목적을 듣고 이에 동조하여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하였다.

10월 7일 새벽 거사에 참여 법정사를 출발한 34명의 선봉대 중 한 사람으로 거사 당일 각자에게 맡겨진 부서에 따라 대열에 앞장섰다. 행동대장이던 강창규(姜昌奎)를 수행하여 중문 경찰관주재소의 건물과 기구·문서 등을 파괴하고 불태웠으며 또한 강창규의 명령을 받아 전선과 전주를 잘라내었고 일본인을 때리는 데 앞장서 부상을 입혔다.

이 일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 방화죄, 상해죄 그리고 전선과 전주 절단 행위 등의 죄로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아 복역중 1920년 칙령 제120호에 따라 징역 3년으로 감경되었으며, 1938년 칙령 제77호에 의해 복권되었다. 귀향한 후에는 마을 청년들에게 애국사상 및 불교교리를 가르치며 생활하다가 1965년 8월 24일 타계하였다.

김상언은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 참여에 대한 공훈으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004년 서귀포시 도순동에 준공된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戊午法井寺抗日運動發祥址)에 건립된 의열사에 영정이 모셔져 독립운동의 뜻이 기려지고 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제주도보훈청과 광복회 제주도지부는 2013년 2월 제주지역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故 김상언 선생(1873~1965)을 선정했다. 묘의 좌우와 뒤를 돋우어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를 만들었다.
《작성 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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