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목축 산업의 중심지..광평리 조가동마을 터(잃어버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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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목축 산업의 중심지..광평리 조가동마을 터(잃어버린마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1.15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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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대나무들이 삶의 터전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광평리 조가동마을 터(잃어버린마을)

위치 ; 안덕면 광평리 82번지 일대
시대 : 조선∼대한민국
유형 : 마을(잃어버린 마을) 터

광평리_조가동

 

광평리_조가동 올레

 

광평리는 서귀포시 안덕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 광평리는 위로는 제주시 애월읍, 남쪽으로는 상천리, 서쪽으로는 동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북쪽에는 파라다이스 골프장이 서부 산업도로를 따라 위치해 있다.

광평리의 옛 이름은 넙은곶, 넙은술[-드르] 또는 넙은드르이다. 일대의 들판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넙은드르마올이라 한 것으로 보이며, 18세기 말부터 한자 차용 표기로 ‘술’, ‘곶’을 표기에서 생략한 광평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종16년(1416) 대정현이 설치될 때 대정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200여 년 전에 조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1914년 제주군 중면 광평리가 되었으며, 1935년 중면이 안덕면으로 개칭되면서 제주도 안덕면 광평리가 되었고,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광평리가 되었다. 1948년에는 4·3 사건으로 완전히 폐동됐다가, 1963년 재건 정책에 따라 다시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의 동쪽에는 이돈이오름[663.2m]이 있고, 서쪽에는 돔박이오름[521.4m], 그 동쪽에 왕이메[612.4m]와 괴수치[558.7m]가 있다.

돔박이오름과 왕이메의 중간 남쪽 지점에는 족은 대비악[541.2m]이 자리하고 있다. 취락은 이 오름들로 둘러싸인 분지에 형성되어 있는데, 해발 500m의 고지대 마을이며, 평평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에서는 가장 높은 지역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로, 중산간 지역의 풍부한 초지 자원을 이용하여 이시돌 목장과 호명 목장이 있어 목축 산업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조가동 마을 입구(조가교 서쪽)에 있는 안내판에는


〈지금부터 300여년 전(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에서는 200년 전이라 하였음) 이곳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르를 잡으면서 마을이 탄생했다. 조가동은 현재 재건마을 동쪽 400m에 위치하며 무성한 대나무들이 삶의 터전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조가동에는 50여 가구가 조씨집성촌을 이루었으나 4·3 때 모두 불타 소실되었다. 광평마을의 설촌지인 이곳에는 대나무와 돼지를 사육하던 축사만 흔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밭으로 변하여 흔적이 사라졌으나 광평리 마을 형성의 시초인 동네로 아직도 당시 지명으로 불려지고 있어 그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옛 흔적으로는 밭 경계와 길가에 가득한 대나무숲과 광평리 84번지 집터로 들어가는 올레가 잡초로 덮인 채 남아 있는 정도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돼지 축사는 광평리 67번지(안덕면 광평로 34-12)에 남아 있는데 이는 4·3 이후인 현대에 설치하였던 시설로 건물과 돼지를 트럭에 싣기 위한 시멘트 구조물 등이다. 조가동에서는 마을 서쪽을 흐르는 창고천에 있는 행기소(마을에서 약 400m 거리)의 물을 먹었다고 한다.
《작성 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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