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군데군데 남아 있는겹담 방호벽 ..도순동 경찰주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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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군데군데 남아 있는겹담 방호벽 ..도순동 경찰주둔소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1.17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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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 기준 전도에 32개(추정)의 주둔소가 있었다.

도순동 경찰주둔소

위치 ; 도순동 산1번지와 도순동 79번지의 경계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4·3 당시 토벌대 경찰주둔소)

 도순동_산1주둔소위치
도순동_산1주둔소

 

제주4·3사건은 1949년 3월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의 귀순작전 등으로 무장대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또한 6월 무장대 총책임자 이덕구가 피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잔여 무장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주민납치 등으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마을습격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에 제주도경찰국은 토벌대의 침식해결과 무장대와 주민들간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제주도 산간 곳곳에 주둔소를 설치하였다.

이 주둔소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무장대의 활동을 제한하고 효율적인 토벌을 위해 각 경찰서별로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1952년 4월 기준 전도에 32개(추정)의 주둔소가 있었다.

주둔소는 마을주민을 동원하여 석축을 쌓고, 경찰 1명과 마을청년 5~6명이 상주하며 경계를 했으며, 토벌대 60명이 동시에 취침 및 식사를 할 수 있을 규모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잔여 무장대의 활동이 왕성해지자 제주도경찰국은 적극적인 무장대 섬멸계획을 세우고, 1952년 11월 4개부대로 구성된 500여 명 규모의 ‘100전투사령부’를 창설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도순동 경찰주둔소의 설치 시기, 주둔 부대 등은 미상이다. 도순동 산1번지의 가장 서남쪽 구간에 해당되며 도순동 79번지의 북동쪽 구간에 해단한다. 목장 안 도로에서 직선 80m 지점이다. 동쪽 330m에는 고지천, 서쪽 800m에는 도순천이 흐른다.

동서로 뻗은 북쪽 성벽(가로) 36m, 남북으로 뻗은 성벽(세로) 25m이며, 성담 밖 1.5m 정도에 높이 1m 이내의 겹담 방호벽이 다소 무너지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남아 있다. 성담의 폭은 1.8m였다.

북벽에는 회곽도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안에서 회곽도까지의 높이는 130㎝이다. 회곽도에 붙은 방호벽의 높이는 90㎝인데 원래의 높이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일 것이다.

외부의 총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면 최소 150㎝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벽 가운데에 약간 낮은 곳이 있고 계단처럼 평평한 돌을 놓은 곳이 있어 출입구로 사용했던 것 같지만 증언에 의하면 출입구는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남쪽 성담은 엄청 큰 자연석 왕돌이 이어진 위에 축조하였다. 남쪽 성담에는 회곽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무장대가 남쪽 즉 아래쪽에서는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보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벽 가운데쯤에는 바위 위에 얹어 놓은 듯한 조그만 규모의 옹성이 붙어 있었다. 성담 밖으로는 테역(잔디)를 쌓아 바람을 막았다는 증언이 있다.

내부에는 북쪽 성벽에서 5.5m 간격을 두고 건물 터가 남아 있지만 건물 흔적은 없다. 건물 터는 동서 길이 12.6m, 남북 길이 7.7m이다.

증언에 의하면 내부는 취사공간, 경찰관 구역(나무 평상), 보조원 구역(풀을 깔았음) 등 3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내부 동쪽에는 별도의 공간이 있는데 지휘관 숙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에 창문이 어떻게 나 있었는지는 미상이다.

7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도 손본 적이 없으니 여러 가지 나무가 성담 옆과 위에서까지 자라고 있었다.
《작성 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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