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오현(五賢), 제주에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13).. 남사록에 실린 최부의 탐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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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오현(五賢), 제주에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13).. 남사록에 실린 최부의 탐라시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3.11.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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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엮음 ‧ 마명(馬鳴) 현행복/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

제주 역사에서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은 많지만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최근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는 현천(賢泉) 소학당(小學堂) 인문학 강의를 통해 이들 오현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이를 집대성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지는 현행복 선생으로부터 이번에 발표한 내용을 긴급입수, 이를 연재하기로 했다. 오현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기 바란다.

한편 오현은 1520년(중종 15년) 충암 김정 (유배), 1534년(중종 29년) 규암 송인수 (제주목사), 1601년(선조 34년) 청음 김상헌 (제주 안무사), 1614년(광해군 6년) 동계 정온 (유배), 1689년(숙종 15년) 우암 송시열 (유배) 등이다.(편집자주)

<그림 ()>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그린 석실서원(石室書院)(*소장처:간송미술관)

 

 

(이어서 계속)

<참고자료> ○ 《남사록》에 실린 <최부(崔溥)의 탐라시(耽羅詩) 35절>

【원문(原文)】

 

【판독(判讀)】

〇溥嘗爲弘文館副校理 時承 命校讎東國輿地勝覽 幾閱歲講究 我海東諸道州府郡縣之地之跡 已瞭然心目 惟濟州一島 邈在海中 距京都數千里 撰以所聞脫漏尤甚思 欲一致身於其地 以質正焉 歲丁未九月 奉命 以採御乘 監牧場 括隱丁 辨良賤 刷流移人口 來使于此 是年仲冬 十有二日 與新牧伯許公熙 同舟于館頭梁 遇便風暫眼間 到泊朝天浦 邑人歎其舟行甚駛也 本州諸官偕迎于海口 又州人若干 皆巨族有物望者

【해석(解釋)】

〇 최부(崔溥)는 일찍이 홍문관(弘文館) 부교리(副校理)였을 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교수(校讎)하라는 어명을 받들어 거의 한 해를 보내는 기간 동안 연구하며 대책을 세워 왔다.

그랬던 터라 우리 해동(海東) 지역의 여러 도(道) · 주(州) · 부(府) · 군(郡) · 현(縣)의 지리적 자취는 이미 마음의 눈으로도 꿰뚫고 있었다.

오직 제주(濟州)란 한 섬만은 멀리 바다 가운데 있어 거리상으로도 경도(京都)에서 수천 리나 되기에 들은 바대로 찬술(撰述)하려고 하니 빼뜨린 부분이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몸소 그 땅에 찾아가 묻고서 바로잡아보고자 했다.

드디어 정미년(丁未年, 1487) 9월에 어명을 받들기를, 어승마(御乘馬)를 고르는 일 · 목장을 감독하는 일 · 숨은 장정을 찾아내는 일 · 양민과 천민을 분별해내는 일 · 떠돌이 백성을 없애는 일 등을 처리하고자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 해 중동(仲冬, 음력 11월) 12일에 새로 부임하는 목사 허희(許熙) 공(公)과 함께 해남의 관두량(館頭梁)에서 같은 배에 올라탔는데, 바람을 편하게 받아 잠깐 사이에 조천포(朝天浦)에 이르러 정박하게 되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로서는 뱃길이 그처럼 빠른 데 대해 모두 감탄해마지 않았다. 본주(本州)의 여러 관리들이 함께 바다 포구로 마중 나와 맞아주었다. 게다가 제주 사람 중 몇몇은 거족(巨族)이면서 물망(物望)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원문(原文)】

 

【판독(判讀)】

以次來謁禮莫愆 因謁聖于鄕校校生百餘輩 亦以禮謁之 衣冠文物粲然可觀 不可以海外少之 退舍所館治事之暇 已前諸人等 或晨昏往來 以破幽寂居七八日 又同許牧伯巡各縣諸官 亦皆具禮以迎 溥於是 周觀山川形勝之襟帶 人物風俗之繁華 土産關防橋梁 館宇祠社古蹟 靡不詳悉 遂欲效州藏舊乘 則爲官府失火所焚 溥竊念此地 舊爲國封星主王子以來 千有餘載 已往沿革遺迹 泯沒無聞良可恨 已因窮搜野史質諸

【해석(解釋)】

그들이 차례로 나와 배알(拜謁)함이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어서 향교(鄕校)를 찾아가 성인(聖人)에게 예를 올렸는데, 마침 그곳의 교생(校生) 백여 명도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을 갖추어 예알(禮謁)하였다.

그 광경의 찬연함이란 바다 밖에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볼만 하였다. 사(舍) · 소(所) · 관(館)에서 처리할 일들을 마치고 물러나 있는 여가에 이미 앞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이 간혹 아침저녁으로 찾아 왔기에 조용하고 적적하지만은 않았다.

7, 8일쯤 지내다가 허(許) 목사와 함께 각 현(縣)을 순시했는데 그곳의 여러 관리들 또한 예를 갖춰 맞아주었다.

최부(崔溥)는, 이리하여 두루 산천(山川)과 형승(形勝)의 험요한 지세와 인물(人物) · 풍속(風俗)의 번화함, 토산(土産) · 관방(關防) · 교량(橋梁) · 관우(館宇) · 사사(祠祀) · 고적(古蹟) 등을 두루 둘러보면서 자세히 알아보지 않음이 없게 되었다.

마침내 이번에는 주(州)에 보관된 옛 사서(史書)를 찾아내어 그 기록을 본받고자 하였더니, 이전에 관부(官府)가 실화(失火)의 피해를 입어 모두 불타서 없어졌다고 했다.

최부(崔溥)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땅은 예로부터 어엿한 나라로서 성주(星主) · 왕자(王子)를 받들어 온 지가 천여 년이나 되건만, 지난날의 연혁(沿革)과 유적(遺蹟)이 망실되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한탄을 자아내게 했다.

궁색한 처지였기에 어쩔 수 없이 야사(野史)나마 찾아보고, 여러 부로(父老)들을 찾아가 질문을 하였다.

【원문(原文)】

 

【판독(判讀)】

父老兼採所覩聞斷以己意表爲此編製耽羅詩三十五絶合爲一篇附於後令州人繕寫成帙藏之本邑以爲後日文獻所徵 成化二十三年丁未十二月日敬差官崔溥書

【해석(解釋)】

겸하여 보고 들은 바를 채록하였고, 자기 뜻밖의 것은 재단(裁斷)하면서 이렇게 <탐라시(耽羅詩) 35절(絶)>을 지어 엮어 모아 1편(篇)을 만들었다.

뒤에 덧붙이길, 주인(州人)을 시켜 잘 베껴 쓰도록 하니 한 질(帙)을 이뤘고, 이를 본읍(本邑)에 보관토록 하니 후일에 징험(徵驗)할 수 있는 문헌이 될 것이다.

성화(成化) 23년(1487) 정미(丁未) 12월 아무 일에, 경차관(敬差官) 최부(崔溥)가 쓰다.”

 

(1)

渤海之南天接水 발해의 남쪽 지역, 하늘은 물과 맞닿았고

鰌潮鼉浪無涯涘 큰 조수와 격렬한 파도, 가없이 넓기만 하구나.

耽羅國在渺茫中 탐라(耽羅)라는 나라, 아득히 먼 곳에 있으니

一點彈丸九百里 한 점 탄환 같이 작은 섬, 구백 리나 떨어졌네.

※ 운자 : 상성(上聲) ‘紙(지)’운 - 水, 涘, 里

 

(2)

中有靑螺駕六鰲 한가운데 푸른 산이 여섯 자라 등에 올라타고

巨靈擘破勢周遭 거령이 손바닥으로 깨뜨린 형세 널리 퍼져있네.

撑天圓嶠無頭處 하늘 떠받친 원교산, 머리 없는 봉우리에

翠壁一里千尺高 푸른 벽이 일리나 되는 천길 높은 낭떠러지라.

※ 운자 : 평성(平聲) ‘豪(호)’운 - 鰲, 遭, 高

 

(3)

誰從壁頂鑿靈沼 그 누가 암벽 정상에 영험한 못 파두어서

㗸蛤幾廻貢貢鳥 공공새 대합조개 물어 몇 번이나 날랐던고.

折峙山房果若然 봉우리 잘라 산방산 된 게 과연 말 그대로라면

奇觀問却知多少 기이한 경관 물음에 도리어 아는 이 몇일까.

※ 운자 : 상성(上聲) ‘篠(소)’운 - 沼, 鳥, 少

 

(4)

蒼松綠竹紫檀香 울창한 솔, 푸른 대, 구상나무 향기롭고

赤栗乳柑橘柚黃 적율 · 유감 · 귤유 과일 누렇게 익었네.

白雪丈餘紅錦樣 한 길 남짓 쌓인 백설 붉은 비단 펼쳐놓은 듯

四時留(得靑春光) 사계절 내내 넘쳐남이 푸른 봄빛이구려!

※ 운자 : 평성(平聲) ‘陽(양)’운 - 香, 黃, 光

※ 이하 <탐라시> (5)절~(35)절의 내용은 생략함.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연재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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