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선인의 개척정신 백년대계 큰 뜻..함덕리 숫두못, 수두못(봉천수연못)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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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선인의 개척정신 백년대계 큰 뜻..함덕리 숫두못, 수두못(봉천수연못)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1.18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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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년 세월 속에 수두못이 매립되어 마을 중앙 사거리로 크게 변화하였다

함덕리 숫두못, 수두못(봉천수연못) 터

위치 ; 함덕리 1446-1번지
시대 : 조선 말기
유형 : 수리시설(봉천수연못) 터

함덕리_수두못터기념비들
함덕리_수두못터

 

함덕리 3구 남쪽 우회도로 북쪽에 빗물을 모아 고이도록 만든 연못이 있었으며 우마급수용으로 쓰였다. 지금은 도로로 변해 있고 일부 주차장으로 쓰이는 구간이다.

Daum지도에서 1446-1번지를 확인해 보니 가로, 세로가 각각 5m 정도인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연못이 있던 인근 마을 이름도 숫두못, 수두못이라고 한다. 못을 만든 이를 기리는 비석 2기가 서 있다.

먼저 만들어진 비석은 〈前主事金彭寬捐金鑿池一鄕是賴〉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고 옆면이나 뒷면에 다른 글자가 없다.

왼쪽에 2016년에 새로 세운 비석에는

〈수두못(慈善碑) // 전주사 무과급제(武科及第) 오위장(五衛將) 경주 김팽관(金彭寬) // 1895년은 서우봉 마장에 가뭄이 극심하여 나라 공출마 200여 마리가 죽었다. 전주사 김팽관은 물이 귀중함을 알고 마을에 생활용수가 없음을 한탄하여 수두못 부지의 땅을 자비로 구입하여 못을 만들었다.

동쪽은 팽나무 그늘 쉼터와 말방앗간, 남쪽은 남녀 목욕탕 두 곳, 서쪽은 우마급수장, 북쪽은 빨래터 열 곳을 각각 만들어 마을에 기부하여 천하대촌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 수두못은 부락민의 생활에 많은 친밀감을 주어 큰 도움이 되었고 향민은 뜻을 모아 표석을 세워 고마움을 표시했다.

2010년 백여년 세월 속에 수두못이 매립되어 마을 중앙 사거리로 크게 변화하였다. 선인의 개척정신은 백년대계의 큰 뜻이 되어 마을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2016년 병신년 함덕리민 일동〉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작성 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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