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침식 하면서 토벌작전 수행..영남동 시오름위주둔소(시오름윗주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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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침식 하면서 토벌작전 수행..영남동 시오름위주둔소(시오름윗주둔소)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2.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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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라산둘레길 주변이 대부분 작전구역에 해당된다.

영남동 시오름위주둔소(시오름윗주둔소)

위치 ; 영남동 산1번지의 맨 동쪽 지역. 도순동 법정사 터에서 동백길로 들어서서 약 150분 지점. 서호동 시오름의 북서쪽
시대 ; 대한민국(1950년 추정)
유형 ; 방어유적(토벌대주둔소)

영남동_동백길시오름위주둔소 건물벽

 

영남동_동백길시오름위주둔소 동남모서리

 

 

안내판에는 〈동백길 구간의 4·3 주둔소는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로 만들어졌다. 외석은 삼각구조이며 한 면의 길이가 약 20m에 이른다. 내성은 생활공간으로 이용되었으며 약 5m×9m의 장방형 구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외성의 높이는 170㎝ 안팎, 담장 폭은 100㎝ 정도로 현무암을 쌓아올려 겹담구조로 만들었다. 내부 돌담은 홑담으로 쌓아올렸으며, 남아 있는 담장 높이는 1m 안팎이다.

외성 서쪽과 동쪽으로는 감시용으로 만들었던 망루가 일부 무너진 채 남아 있으며, 동쪽 방면으로도 석축 흔적이 있다. 내부로 진입하는 출입구도 뚜렷하다.

이 주둔소는 구축실태로 볼 때 토벌대가 장기주둔하기 위해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 4·3 시기인 1950년대 초반에 창설돼 무장대 토벌에 나섰던 100전투경찰사령부 산하의 토벌대 주둔소로 추정된다.

당시 토벌대는 주둔소를 설치하여 무장대와 지역주민의 연결을 차단하는 한편 토벌대의 근거지로 이용했다. 주둔소를 설치하기 위해 인근 주민들이 동원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성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잠자고 밥 먹는 공간을 건물이나 집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출입구는 남서쪽 끝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앞에는 엄폐벽도 설치되어 있다.

망루의 위치를 동쪽과 서쪽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북쪽과 서남쪽이다. 동남쪽 모서리에는 망루나 초소의 흔적이 없다.

100전투경찰사령부(이하 100사령부)란 1952년 10월에 무장대 섬멸을 위해 창설된 부대이다. 예하에 성읍에 주둔한 101부대, 성산포에 주둔한 102부대, 녹하지에 주둔한 103부대, 다래오름에 주둔한 105부대 등 4개 부대를 두었다.

100사령부의 총 병력은 4개 부대와 본부, 통신, 보급 등을 합해 모두 500여 명으로 편성됐다. 대원들은 카빈·M1 등의 소총과 수류탄 2개로 무장하고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주둔소에서 침식을 하면서 토벌작전을 수행하였다.

작전지역은 대략 해발 500고지 이상을 담당했다. 현재의 한라산둘레길 주변이 대부분 작전구역에 해당된다.

이곳의 해발은 약 750m이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던 곳이라서 건물 벽까지 남아 있다. 안내판에는 이 주둔소 이름이 없다.

시오름의 바로 북쪽에 있으므로 시오름위주둔소(시오름윗주둔소)라고 이름지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시오름주둔소라고 부르던 산록도로(제6산록교) 밑에 있는 주둔소는 시오름알주둔소라고 바꾸고.
《작성 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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