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820여명의 무고(無辜)한 양민 검속..상모리 절간고구마창고 터(예비검속자 구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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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820여명의 무고(無辜)한 양민 검속..상모리 절간고구마창고 터(예비검속자 구금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12.06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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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30만명이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모리 절간고구마창고 터(예비검속자 구금 터)

위치 ; 대정읍 상모리 3939-4번지(상모로290번길27) 현재 정마트 자리
시대 : 대한민국(1950)
유형 : 민간인수용소 터

상모리_절간고구마창고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사흘 후 서울을 점령당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수도를 대전을 거쳐 대구로 옮기면서 6월 29일 각지구 계엄사에 불순분자를 체포 구금할 것을 지시하였다.

정부는 7∼8월에 걸쳐 보도연맹원 등을 대량으로 학살하였다. 전국적으로 30만명이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위 예비검속에 의한 학살사건이다.

제주지역 역시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는 좌익분자들을 색출한다는 미명 아래 820여명의 무고(無辜)한 양민을 검속하였다. 8월 18일 정부는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이 시기에 예비검속자들을 처형하였다.

예비검속자 총살 때의 지휘관은 다음과 같다. 신현준은 해병대 사령관으로 해군본부와 육군본부 제주지구 CIC로부터 명령을 받고 정보참모인 김두찬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제주도내 예비검속된 자들 중 D급과 C급을 총살집행하라는 것이었다.

김두찬(당시 해군 중령)은 예하부대 제주읍 부대장(김동하)과 모슬포 부대장(김윤근)에게 이 명령을 하달하고 일선에서 그 부하들(분대장급)을 시켜 총살을 감행하고 암매장했다.

그리고 10일 후 제주도를 떠나 진해로 출동하였다. 이들은 나중에 5.16쿠데타의 주요 하수인이 되었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계엄군은 당시 남제주군 모슬포경찰서 관내인 한림, 대정, 안덕면 주민 344(347)명을 사상 불순분자로 몰아 한림항 어업창고와 모슬포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한 뒤 같은 해 8월 20일 뚜렷한 법적절차도 없이 이 가운데 252명을 섯알오름 일제강점기 탄약고 터로 끌고 가서 총살하였다.

당시 절간고구마를 보관하던 창고는 대정극장, 대정읍민관 등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정마트가 되었다.
《작성 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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